feat. 전쟁 같은 6학기
바헤닝언 대학교 석사 과정에 발을 들인 지 어느덧 1년이 흘렀다.
그야말로 전쟁 같았던 6학기를 무사히 마친 지금, 그 시간들을 조용히 되짚어 보고자 글을 쓴다.
유학을 결심했을 때가 서른 하나였고, 입학을 하니 서른둘, 일 년이 끝나가니 서른셋이 되었다.
늦은 나이에 시작하는 만큼, 시간 낭비 없이 기한 내에 졸업하고 싶다는 열망이 컸다.
그래서 출국 전, 나름의 목표들을 세웠는데 그중 가장 중요했던 건 '수업 낙제는 절대 하지 않기'였다.
머릿속으로만 생각하는 것보단 직접 적거나 말로 표현해야 목표가 더 와닿는 법이니까.
출국 직전 One Step Away라는 전시회에 들렀을 때, 네덜란드에서 '다 부숴버리겠다'는 비장한 마음으로 내 목표들을 적은 종이를 직접 갈아버렸다. 그리고 그렇게, 갈려진 것은 나였다 하하.
석사 과정 커리큘럼
바헤닝언 대학교 석사 과정은 일반적인 학기제와 조금 다른 구성이다.
2년 과정 중 1년 동안 수업을 몰아 듣게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총 6학기 (기간별로 2개월 / 2개월 / 1개월 / 1개월 / 2개월 / 2개월)로 빡빡하게 이루어져 있다. 겨울 방학은 따로 없고, 재시험이 없다면 이주일이 채 안 되는 짧은 크리스마스 휴가가 전부. 각 학기가 끝날 때마다 어김없이 시험이 기다리고 있으니, 사실상 한두 달에 한, 두 과목 씩 시험을 치르는 셈이다.
여기에 모든 과목마다 주어지는 강도 높은 조별 과제는 숨 쉴 틈조차 주지 않았다. 한국에서 경험했던 조별 과제보다 훨씬 밀도 높게 구성되어 있었고, 그야말로 쉬는 시간이라는 개념 자체가 사라지는 강행군의 연속이었다.
수업에 따라가는가, 딸려가는가 (?!)
예상했던 만큼 쉬운 싸움은 아니었다. 가뜩이나 원어민 영어를 100% 이해하기도 어려운데, 수업마다 강사가 계속 바뀌면서 더치 잉글리시, 이탈리안 잉글리시, 루마니안 잉글리시 등 다양한 악센트의 영어를 알아듣는 데 애를 먹었다. 특히 더치라는 언어를 살면서 처음 듣다 보니 교수님이 영어로 말을 하는 건지 더치로 말을 하는 건지 6개월 간은 바로바로 알아채기가 어려웠다. 녹화를 지원해 주는 수업도 있었지만, 그렇지 않은 수업은 늘 앞자리에 앉아 클로바노트로 녹음을 떠야 했다. (그.저.빛 네이버 클로바노트)
수업이 끝나면 바로 조별 과제 미팅이 이어졌고, 도서관에 가거나 집에 돌아와서는 녹화된 수업 내용을 다시 들으며 복습했다. 자동 워딩이 되더라도 발음 문제로 문맥에 뜬금없는 단어로 잘못 인식되어 있는 경우가 허다했기에, 듣고 다시 듣기를 반복하며 끝까지 이해하려 노력하거나, 그래도 안 되면 ChatGPT의 도움을 받았다. (G.O.D)
이후 강의 노트를 만드는 작업만 수업 시간의 2배가 걸렸고, 이어서 조별 과제와 개인 과제까지 끝내면 아침 7시에 시작한 하루가 새벽 1-2시에야 겨우 마무리되곤 했다. 가끔 과제 피드백을 받아 수정할 분량이 많거나 하루에 수업이 2개 있는 날에는 밤을 거의 꼬박 새우는 날도 있었다. 특히 사회과학만 공부해 온 내가 물류통계, Sensory 등 수학, 화학 기반의 수업을 들을 때는 그야말로 멘붕 수준이어서 이해하는 데만 3배 이상의 시간이 소요되기도 했다. (증말로 인생에서 손꼽는 공부만 한 시기)
시간에 Knock-down 된 나날들
사실, 개인적인 사교 활동은 거의 안 했다 (못한 거임 ㅎ). 밥이나 샌드위치를 해 먹는 시간조차 아깝고 낭비되는 것처럼 느껴져 매일 시리얼이나 과자로 끼니를 때우며 노트 필기를 하거나 과제를 하곤 했다 (일 년 동안 건강은 버린다고 스스로와 타협). 식품을 공부한다는 사람이 엄마한테 등짝 맞을 snackification 하며 역행적으로 살아감. 운동은 그야말로 '사치'였지만, 시험 기간을 제외하고는 일주일에 최소 한 번은 하려고 (살려고) 노력했다.
MBTI가 J인 사람으로서 나는 늘 하루 스케줄을 대략이라도 짜놓는 편인데, 일 년 동안은 이게 무용지물이었다. 몇 시쯤 과제가 끝나고 몇 시쯤 수업 리테이킹이 끝날지 계획을 세워도, 항상 예상보다 시간이 늘어져 계획이 틀어지기 일쑤였다. 한국에서 회사와 대학원을 병행할 때도 정신없다고 느꼈지만, 그때는 내가 대략적이라도 시간을 컨트롤할 수 있었다면 바헤닝언 입학 후에는 정말 말 그대로 시간이 내 머리끄덩이를 붙잡고 끌고 가는 것 같았다. 한두 달 뒤의 계획을 세우는 것조차 무리였고, 그저 하루 견디고 하루 살아내는 과정의 연속이었다.
잊지 못할 조별 과제 대환장 파티
이 1년간의 과정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바로 조별 과제 경험이다.
네덜란드는 우리나라보다 대학 졸업을 일찍 하는 편이라 그런지, 대학원에 진학하는 학생들의 나이가 대부분 21-22살 (한국 나이로 22-23살 정도다. 그러니까 나보다 10살 정도 어린 친구들과 과제를 해야 했다. 그래,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니까 괜찮았다.
이 수업의 조별 과제는 더치 학생 2명, 그리스 학생 1명, 중국 학생 2명, 그리고 나 (일단 우리 과에 한국인이 나밖에 없었음) 이렇게 총 6명으로 구성된 조였다. 문제는 더치 학생들이었다. 일을 제대로 하지 않으려 할 뿐만 아니라, 인터내셔널 학생들을 무시하는 듯한 태도로 더치어로만 대화하고, 코치가 더치인이 아니면 무시하는 경향이 있었다. 한 번은 코치가 피드백을 주었는데, 수정하기 싫다며 피드백이 잘못됐다고 한 시간 동안 코치와 싸우기까지 하더라. 유교사상에 절여져 있던 나 포함 중국애들은 벙쪄 있었고, 그리스 친구는 화가 머리끝까지 나서 "우리에게 점수를 주는 코치에게 어떻게 그렇게 무례하게 구느냐"며 분통을 터뜨렸다.
보통 조별 과제를 하면 더치 학생들이 파워가 세다. 아무래도 모국이고, 교수님들과도 네덜란드어로 편하게 소통할 수 있으며, 문화 자체가 다이렉트한 소통 문화이다 보니 그런 것 같달까. 또한, 더치학생들이 네덜란드의 교육 시스템에 대해서도 가장 잘 체화하고 있으니까 보통 인터내셔널 학생들은 의견을 따라가는 편인데 , 우리 조는 팀워크가 시작부터 완전히 깨져 소통이 전혀 되지 않았고, 결국 최하위 점수를 받았다. 나중에 코치가 "너희 합격할 점수 아니었다, 팀워크 좀 봐라, 소통은 하느냐"며 질책할 정도였다. 조에서 열심히 하던 나와 그리스 친구는 엄청나게 화가 났었다.
게다가 이 수업은 2학기 연속으로 이어지는 과목이라, 3개월 동안 이 조에서 같이 작업하고 점수도 두 번이나 받아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두 번째 이어지는 수업에서는 그리스 친구와 내가 서로 힘들었던 이야기를 나누며 어떻게 해야 이 더치 친구들과의 팀워크를 개선하고 과제 작업물을 개선할 수 있을까 진지하게 대화하기 시작했다. 중국 친구들은 수업과 과제 자체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서 그리스 친구랑 내가 거의 다 고쳐줬기 때문에 제외하고.. 이 과정에서 그리스 친구와의 사이가 오히려 돈독해졌다.
나는 파워 J답게 우리 조에서 리서치하던 토픽의 전문가를 미리 섭외하고 인터뷰 동의서, 프레임 등 모두 만들어 배포하니 다른 조원들도 따라왔다. 그리스 친구가 협업 툴인 트렐로를 써서 개인별 맡은 과제의 진척도를 체크하자고 제안했고 나는 즈어어엉엉말! 좋은 아이디어라며 흔쾌히 관리 역할을 맡았다. (왜냐하면 누가 해야 할지 안정해진 부분은 아무도 하지 않아 결국 내가 다 했었으므로 ㅎ...)
결과적으로 우리 조는 과목 평가 점수를 첫 번째 때보다 두 단계나 상승하여 받았다. 코치도 그리스 친구와 내가 조별 분위기를 끌어올리고 소통하려고 노력한 것을 비로소 알아주는 것 같았다. 이 경험이 내 대학원 1년 중 가장 스트레스받고 힘들었지만, 동시에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이기도 하다. 이후 그리스 친구와는 지나가다 만나도 괜스레 반갑고, 서로 껴안으며 기쁘게 인사를 주고받는 사이 (a.k.a 동지애)가 되었다.
한국에서도 조별 과제 때문에 발암하는 경우가 많아 결국 내가 다 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서른 넘어 유학에 와서도 내가 레포트 스트럭처와 콘텐츠 짜기, 인트로덕션 및 클로징 쓰기, 어펜딕스 만들기 등 아무도 하지 않는 작업을 모든 과제에서 도맡아 할 줄은 몰랐다 ^^...(내 병인 듯 ㅎ) 이게 하는 건 문제가 안되는데 시간이 갈수록 내가 담당하고 고쳐야 할 부분이 점점 많아져서 학기가 끝나 갈수록 눈덩이 굴리듯 과제의 양이 늘어나는 것이 문제였다. 그 덕분인지, 목에 담이 와 목을 며칠간 움직이지 못하는가 하면, 두 번이나 대상포진이 찾아와 고열과 구토와 싸워가며 과제와 공부를 해야 했다. 이 와중에 현타가 온 것 같긴 한데(?) 그걸 생각할 겨를조차 없어 미처 인지하지 못하고 넘어간 듯하다. 그래도 어떻게, 고난과 역경의 시간들이 지나가긴 했네 하하.
그리고 이룬 성과, 낙제는 없다!
입학 전 세웠던 가장 중요한 목표처럼, 6학기 동안 들은 과목 중 단 한 과목도 과락 없이 모두 통과했다.
네덜란드 교육 시스템은 우리나라와 달라서, 내가 봤을 때는 '성의가 없어 보이는 답변' 또는 '시험 질문에 태클을 거는 듯한' 답변을 하는 학생들이 오히려 더 높은 점수를 받는 것을 보고 의아함을 금치 못했다. 내가 너무 주입식 교육에 뇌가 절여져 있는 걸까 ㅎ....
분명 명확한 그레이딩 루브릭을 나눠줌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그 기준을 정확히 이해하지 못한다.
성실하게 모든 이론을 적용하려 노력한 아시안 학생들보다, 몇 줄 안 쓰고 성의 없어 보이는 답안을 낸 더치 학생들이 점수가 더 높은 걸 보고, 나는 영영 더치 교육 시스템을 이해하지 못할 것 같지만.. 어쨌든 통과했다! 는 기묘한 뿌듯함을 느낀다 궁디팡팡!.
남은 과제들, 그리고 전화위복을 꿈꾸며
이제 내게 남은 과제는 논문과 인턴십이다.
얼마 전 논문은 1순위 희망으로 제출했던 토픽에서 떨어졌다.
관련 업무 경력도 있고 논문 퍼블리싱 경험도 있어서 내가 될 거라 생각했는데, 학사 졸업하자마자 바로 석사를 밟는 친구가 그 토픽을 맡게 되었다. 그 친구가 좀 더 럭키했고 내가 조금 덜 럭키했나 보다. 그래도 진심으로 축하해 주었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나는 늘 무엇이든 한 번에 되는 일이 없고 돌고 돌아 지칠 대로 지쳐서 목적지에 도달하는 것 같다. 대학 입시도, 취업도, 자격증 취득도, 심지어 유학까지도. 하지만 그래서 역설적으로, 어렵게 이룬 것에 대해 더 큰 감사와 성취감을 느낄 수 있는지도 모르겠다.
1순위 토픽에서 떨어져 내가 직접 논문 주제를 정하게 되었다.
지금 대략적인 큰 그림과 주제를 잡았고 꽤나 연구 가치가 있을 거라고 생각된다 (부디 제발).
얼마 남지 않은 방학 동안 선행 연구 리뷰를 하면서 세부적인 연구 범위를 좁혀나갈 계획이다.
이렇게 우당탕탕 좌충우돌한 과정에서 선정된 나의 새로운 논문 토픽이 언젠가 내게 더 큰 기회를 안겨줄 것이라고 믿으면서 2025년 하반기도, 다시 한번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