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니까 청춘, 국경을 넘은 타인의 온기

인도네시아 민간요법으로 나은 후기

by UVINO

근 몇 주간 지독하게 아팠다.

시작은 열을 동반한 독감이었다. 며칠을 앓았고, 기침 때문에 눕지도 못해 며칠을 꼬박 앉아서 잠들어야 했다. 겨우 몸을 뉘일 수 있게 되었을 때, 곧바로 대상포진이 찾아왔다. 신경을 타고 넘어오는 통증이 기침과 만나며 한동안 몸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



낯선 의료 시스템, 무의미한 진료


한국에서라면 곧바로 전문의를 예약 없이 찾아가 필요한 약을 처방받았을 텐데, 네덜란드에서는 무조건 가정의 (GP, General Practitioner)를 사전에 지정해야 하며, 일반의를 만나기 위해 예약하는 것조차 쉽지 않은 경우가 많다. 게다가, 전문의를 만나는 것은 GP의 소견 없이는 거의 불가능하다.


더욱 답답한 것은 어렵게 진료를 본다 하더라도, 대부분의 경우 처방해 주는 것은 이부프로펜, 나프록센 같은 진통제가 전부라는 점이다. 항생제나 안티바이러스제 같은 약물의 남용을 극도로 경계하는 문화 때문에 의사를 찾아가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게 느껴질 때가 많다.


아파도 죽지 않을 정도의 수준이라면 학교와 회사에 가는 것이 당연한 한국인으로서, 처음에는 더치들이 조금만 아파도 쉽게 병가를 내는 것을 보고 꾀병이 심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의사를 찾아가도 결국 약 없이 집에서 쉬라는 진단만 내려지는 경우가 흔하니, 차라리 아픈 초기에 집에서 쉬며 빠르게 호전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러한 의료 제도의 차이가 문화 차이로 이어지 것 같다. 특히 네덜란드에서 세 번째 맞이하는 대상포진 중에서도 이번 통증이 가장 심했는데 병원을 갈 생각조차 하지 않은 이유가 한국과 달리 이곳에서는 대상포진이 뭔지 모르는 사람이 꽤나 많고 GP도 60살 이상이 아니면 항바이러스제를 처방해주지 않고 그냥 집에서 쉬라고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는 72시간 안에 약을 먹지 않으면 엄청 큰일 날 것처럼 교육받은 나는 처음엔 혼란스러웠지만 그냥 내 젊음을 믿어보기로..



고립을 통해 마주한 뜻밖의 은인들


한국에서 자취하면서 혼자 아플 때도 서럽긴 매한가지였지만, 병원이라도 갈 수 있고 심해지면 링겔이라도 맞을 수 있다는 희망 내지는 믿을 구석이라도 있었다. 하지만 여기선 어쨌든 혼자 약 없이 겪어내야 하고, 엎친데 덮친 격으로 학교 프로젝트 마감 기한과 미팅이 겹쳐서 그야말로 최악이었다. 침대에 앉아 핑핑 도는 머리로 노트북을 붙잡고 읽히지도 않는 영어 논문을 써야만 했다.


사실 누군가에게 아프다고 했을 때 말로만 통증을 공감해 주고 약이라도 필요하냐고 물어봐 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일이고, 한국인들은 대개 상대방이 귀찮아 할 수도 있으니 말로만 위로를 건네는 편인 것 같다. 물론 나도 거기에 포함되고. 하지만, 뜻밖에도 직접 나를 간호해 준 건 기대도 하지 않았던 인도네시아 친구들이었다.


그들은 매일매일 우리 집으로 찾아왔다. 아침에 내가 죽었는지 살았는지 확인하듯 문을 두드리고, 따뜻한 밥과 차를 만들어서 가져다주고, 비타민을 먹어야 한다며 과일을 바리바리 싸다 주고, 본인들이 가지고 있는 약을 나눠주었다. 처음에는 타인에게 신세를 지는 것이 부담이었지만, 매일 와서 말동무가 되어주고 돌봐주는 그들의 행동에 나는 감동을 넘어서 나의 이전 태도에 반성을 하게 되었다. 사람이 나약할 때 호의를 받으면 더 크게 와닿는 것처럼, 이들은 내 인생의 은인이 되었다.



인도네시아 민간요법의 놀라운 힘


한 친구의 도움으로 인도네시아 전통 민간요법에 대한 깊은 신뢰가 생겼다.

첫 번째는 톨라캉인 (Tolakangin)이라는 물약이다 (인도네시아 가면 꼭 사 오시길.. 강추). 우리나라의 위생천이나 쌍화탕처럼 전통 약재와 꿀이 섞인 액체인데, 강한 멘톨맛이 속의 열감을 내려주고 기운을 북돋아주는 효과가 있었다.


© Kerokan by Google

하지만 나를 가장 놀라게 한 것은 끄로깐 (Kerokan)이라는 동전 마사지였다. 내가 두통으로 눈도 뜨지 못하고 괴로워 하자, 친구가 등에 오일을 바르고 동전으로 마사지를 해주었다. 이 요법은 몸에 쌓인 찬 바람 (한국의 담이나 몸살과 유사)을 빼낸다고 믿어지는 전통 치료법이라고 한다. 신기하게도 마사지를 받은 후 2~3시간 동안 두통이 완화되어 겨우 논문 진도를 낼 수 있었다. 몸이 안 좋을수록 등에 멍자국처럼 검붉은 생체가 심하게 남는데, 내 등은 꽤나 검붉었다. 인도네시아 자바섬 여성들 사이에서 가족과 친구들을 포함한 서로의 몸 상태를 확인하고 돌봐주는 전통적인 민간요법으로 전해져 내려오기 때문에 대부분의 이 지역 여성들은 동전 마사지를 할 수 있다고 한다. 인도네시아는 아직까지 서양 의학보다는 민간요법에 의존하는 경향이 큰 것 같다. 직접 먹고 받아보기 전에는 의심이 들었지만, 나에게 양약보다 훨씬 효과적인 트리트먼트였다.


꽤나 오래 아팠지만, 이번 경험은 단순히 아픈 것을 넘어 인도네시아 친구들의 따뜻한 인간애를 느낄 수 있었고, 나 스스로도 주변사람들에게 더 잘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된 소중한 계기가 되었다. 아프니까 청춘이고, 그 아픔 속에서 비로소 진정한 은인들을 마주할 수 있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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