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상 밖의 회사 입사, 그리고 새로운 시선
고등학교 때부터 대학교까지 7년을 관광학 외길 인생으로 걸어왔다.
국내 굴지의 여행사와 리조트 본사에서 인턴을 하며 전공을 살려 커리어를 쌓는 것이 나의 대학시절 목표였다.
하지만 1년간의 길고 지난한 취업 준비 기간, 수많은 자책과 마음고생 끝에 나는 예상치 못한 곳에서 합격 소식을 들었다. 처음 지원했던 계열사의 경영기획직은 떨어졌지만, 이후 회사에서 재요청한 추가 임원 면접을 거쳐 공고에도 없던 중견 물류기업의 지주사 HR 조직의 공채로 합격하게 되었다. 힘들게 얻은 자리인 만큼 애사심도 넘쳤고, 이 모든 것이 운명이라는 생각이 들어 이곳이 나의 평생 직장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영업 중심의 남초회사 답게 15명의 남자 동기들과 나를 포함한 2명의 여자 신입 사원. 그 사이에서 입사 후 나의 꿈은 여성 임원이 되는 것이었다.
지주부문에서 일하며 다양한 계열사의 비즈니스를 접할 기회가 많았다. 핵심인재 및 주재원 양성 업무를 담당하게 되어 사원 신분임에도 해외 출장의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그 당시 회사에서 베트남에 확장하던 비즈니스인 콜드체인에 깊은 관심을 갖게 되었다. 사회주의 국가인 베트남은 토지 임대는 가능하지만 소유는 불가능하다는 특성을 가지고 있었다. 콜드체인 사업은 호텔과 비슷하게 초기 투자자본이 많이 들고, 부동산 가치는 오르지만 건물의 감가상각으로 인해 유지 보수 비용이 계속 발생하는 구조였다. 주어진 공간을 판매하는 방식으로 일일 최대 수익치가 정해져 있기에, 기한 내 손익분기점 (BEP)을 빠르게 달성하고 추가 수익을 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판단했다. 베트남에서는 부동산 소유가 불가능해 부동산 매매 차익으로 이익 실현이 어렵다는 점을 고려, 우리가 가진 자원인 콜드체인을 활용하여 수익을 낼 수 있는 관련 사업 기획안을 제시하기도 하였다. 당시에는 '너무 빠른 아이디어'라는 평을 들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몇 개월 뒤 코로나 팬데믹이 터지면서 내가 제안했던 아이디어가 베트남에서 다른 누군가에 의해 현실이 되는 것을 보았다. 그때부터였을까, 회사에서 내 기획안이 더욱 신뢰받기 위해 '나의 커리어를 키워 누구든 인정하는 사람이 되겠다'고 다짐하게 된 것이...
흔들리는 뿌리, 그리고 나를 위한 발걸음
그렇게 회사 생활과 병행하며, 콜드체인과 신선식품 그리고 미래 식품 산업에 대한 통찰을 바탕으로 국내 대학원의 조리외식경영학과에 진학하였다. 사실 외식경영 관련 경력이 없던 터라 첫 시도에서는 고배를 마셨지만, 심기일전하여 두 번째 도전 만에 합격할 수 있었다. 합격 후 걱정하며 팀장님과 부서 내 임원분께 말씀드리니, 회사의 인재를 양성하는 조직에서 팀원의 성장을 어떻게 저지할 수 있겠냐며 오히려 기뻐하시며 학업 병행을 지원해주겠다고 하였다, 그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 기쁨도 잠시, 애사심 넘치던 회사 생활에 예상치 못한 균열이 생겼다. 정부 정책과 맞물려 급격히 성장한 회사여서 꾸준히 내부 변화가 많았는데, 지주사는 안정적일 것이라 생각했던 나의 예상과 달리 HR 조직이 회사 사정으로 폐합되었고, 나는 원치 않던 계열사의 부서로 발령이 났다. 무엇보다 나를 혼란스럽게 했던 것은, 남자 상사는 책임져야 할 가정이 있다는 이유로 해고 명단에서 제외되었으나 그 누구보다 열심히 일했던 상사가 여자라는 이유로 해고 되는 모습을 보면서였다. 이 사건은 내게 현실을 직시할 수 있게 만든 뼈아픈 경험이었다. '아 회사에서 헌신하다가 헌신짝이 될 수 있는거구나.' 그 순간, 나는 회사를 위해서가 아닌 '내 삶에서 대체될 수 없는 나만의 무언가를 단단하게 만들어야겠다'고 굳게 다짐하였다. 그 다짐은 병행하던 대학원 공부에 대한 폭발적인 열정으로 이어졌다. 시험 기간엔 아침 6시에 출근해서 팀원들이 출근하기 전까지 공부를 했고, 논문을 쓸 땐 새벽 4-5시까지 논문을 쓰다가 샤워만 하고 출근을 하는 삶을 이어갔는데도 이상하게 회사생활보다 버틸만 했다. 그 결과, 학과에서 단 한 명만 받는 우수 졸업상을 받고 논문까지 출간하는 결실을 맺었다.
이 모든 경험은 나를 회사라는 울타리 밖으로, 더 넓은 세상으로 눈 돌리게 만들었다.
그리고 식품에 대한 더 깊은 지식에 대한 갈증도 커졌다.
그렇게 유학이라는 옵션을 본격적으로 고민하기 시작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