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 넘어 결심한 유학, 나의 오디세이

새로운 꿈을 찾아 떠난 늦깎이 도전

by UVINO



서른 넘어 유학이라는 인생의 변곡점을 택한 이유


국내 대학원에서 식품에 대한 지식의 갈증을 해소했지만, 공부를 하면 할수록 미래 식품 산업에 대한 통찰은 더욱 깊어졌다. 특히 지속 가능한 식품과 푸드테크 분야는 내가 반드시 전문성을 키워야 할 영역이라고 확신하였다. 논문을 써가면 써갈수록 미래 식품 산업과 소비자를 잇는 브릿지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러한 전문가가 되기 위해서는, 한국에서 박사 과정을 바로 밟는 것보다 테크놀로지적인 지식을 더 쌓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이 들었고, 그 해답은 유학에 있었다.


cc7ddf21-12f7-4600-93a0-e6879236f23e_WageningenCampus.jpg © Wageningen Univeristy

답은 나왔지만 확신은 없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유학을 갈 만한 대학원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식품으로 유명한 대학이 어디지?' '미국의 코넬대, 덴마크의 코펜하겐 대학, 그리고 네덜란드의 바헤닝언 대학교...?!' 다른 학교들은 워낙 유명해서 들어 본적이 있었지만 난생처음 들어보는 바헤닝언 대학이 저 저명한 대학들을 제치고 왜 농업 분야 세계 1위에 식품으로 유명한 학교인지 궁금해졌다. 학교를 찾아보고 나서는 코트라 (Kotra) 보고서를 통해 각 국가의 주요 산업을 찾아보고 식품 연구에 투자하는 비용도 알아보았다. '어라? 네덜란드가 유럽에서 가장 큰 육류 수출국 중 하나이며, 미국 다음으로 두 번째로 큰 농산물 수출국이었네? 땅이 작은데 어떻게 가능하지? 푸드테크를 이용한 것이구나! 게다가 물류까지 강국이 아닌가?! 한국과 비슷한 환경인데?' 이러한 발견에 나는 흥분했다. '네덜란드로 가면 내 지식적 관심사뿐만 아니라 커리어까지 살려서 식품+푸드테크+물류까지 한 번에 배울 수 있겠어!' 학과의 커리큘럼까지 딱 내가 배우고 싶은 부분으로 세분화되어 잘 짜져 있었던 바헤닝언은 그렇게 마음속 1순위의 학교가 되어있었고 유학에 대한 갈증을 더 고조시켰다.





c0f28a102626c5d8a9b21d54e5c2d0f3.jpg © Pinterest

내적 갈등, 사회적 통념과의 싸움


1순위 학교를 정했다고 한들 마음의 결심이 선 것은 아니었다. 퇴근 후에는 논문을 쓰고 주말에는 깨작깨작 IELTS 공부를 했지만, 마음 한 켠에는 서른이 넘은 나이, 주변 친구들의 결혼/육아 분위기 속에서 (나름) 안정적인 직장 (월급은 꼬박 꼬박 나오니까)을 포기하고 유학을 떠나는 것에 대한 무모함과 사회 통념에 대한 깊은 내적 갈등이 계속 되었다. 하지만 계속해서 불안하게 만드는 회사의 조직 발령과 호봉제가 아닌 연봉제임에도 군대를 다녀오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업무 평가와 상관없이 1년 밀려버린 승진 (입사 때 군대를 다녀온 남자 동기들의 연봉이 높은 것은 그들의 노고에 감사하며 그러려니 했다.), 어느 순간 목적성 없이 일하는 회사 선배들을 보며 내 미래는 내가 결정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이 들었다. 결국 '10년 후 어떤 결정을 한 내가 더 행복할까?'를 생각 했을 때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한 나'라는 결심에 이르게 된 것이다. 한 번 마음 속 결정을 하니 그 이후는 쉬웠다. 그렇게 회사에서 제안하는 좋은 오퍼들을 거절하고 6년간 잘(?) 다니던 회사를 퇴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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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적 역경, 영어와의 고군분투


대학 시절 1년 어학연수를 다녀왔다 치더라도 순수 한국파로서 해외 대학원에서 영어로 에세이를 써야하는 것과 프레젠테이션을 해야한다는 것은 공포로 다가왔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입학 전 아카데믹 잉글리시를 배우고 나 자신을 영어 환경에 더 빠르게 노출시키기 위해 캐나다 워홀을 신청해 놓았다. 이후 하루 17시간씩 IELTS 공부에 매달렸던 지옥 같은 과정을 보냈다. 사실 회사다니면서 깨작깨작 공부할 때 이미 모의시험에서 점수가 나왔어서 원하는 점수를 만드는 건 어렵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유학 준비를 하겠다고 큰소리치고 퇴사를 했고.. 지원 기한 전까지 점수를 만들어야 한다는 시간과 정신적 압박이 너무 힘들었다. 영어 지문을 읽을 때마다 갑자기 있지도 않던 영어 난독증이 찾아온 탓에 잠도 못 자고 식욕도 잃어 그렇게 빠지지 않던 살까지 빠지며 신체적으로도 멘탈적으로도 무너져 버렸다. 특히 친한 친구의 너무나도 행복해 보이는 결혼식을 다녀오며 '그냥 결혼이나 해버렸어야 하는게 아닌가.. (대체 누구랑?)'하는 생각까지 들었지만 포기하고 싶어도 울면서 공부했다. 참, 죽으란 법은 없다고 기한 내 목표 점수가 달성이 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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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바헤닝언에 지원한지 일주일도 안되서 1지망 학과 합격 레터가 날아온 극적인 에피소드를 경험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2지망 학과까지 합격. 그리고 이 모든 과정이 지금의 청춘 오디세이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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