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학을 결심하고 퇴사에 대한 마음이 섰을 때, 나는 가장 먼저 워킹홀리데이 비자를 신청했다. 10년 전 어학연수를 다녀왔다 해도, 그 당시 처참했던 영어실력과 별반 다를 게 없고.. 정규 교육 과정을 모두 한국에서 밟아온 내가 해외 대학원에서 영어로 프레젠테이션, 에세이, 논문 작성을 해낼 수 있을지 솔직히 자신이 없었다. 하지만 '뭐라도 되겠지' 하는 막연한 자신감으로 대학원에 합격하면 바로 해외로 나가 영어에 나를 던져버리자고 생각했다. 다시 생각해 보면 피식 웃음이 나온다. 참 무모했다.
해외 체류 비자를 얻기 가장 빠르고 쉬운 선택지였던 워킹홀리데이.
내 나이에 지원 가능했던 나라는 단 2 곳, 호주와 캐나다. 호주에는 지인들이 있어 힘든 상황이 닥치면 내가 의지하게 되고 나약해질 것 같았다. 그렇게 본연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혈혈단신으로 캐나다에 가는 것으로 결심했다.
하늘도 막았던 캐나다행
대학원 합격 통보를 받자마자 바로 한 달 뒤 출국 할 비행기 티켓을 구매했다. 대학원 입학 준비를 하면서 마음고생을 많이 했던 터라 남은 올해는 꽃길만 걸으면 될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 대학원 입학하면 더 고생하게 될 테니 캐나다에서는 조금 릴랙스 하자.' 그 다짐이 무색해질 만큼 캐나다로 향하는 길은 결코 순탄치 않았다.
100만 원이 넘는 룸 렌트 사기를 당했다. 작다면 작고 크다면 큰돈. 앞으로 나갈 돈이 많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나에겐 큰돈이었다. 태어나 처음 겪는 사기에 한 달 동안 밥도 못 먹고 잠도 못 자며 경찰서까지 들락거렸다. 얼마나 스스로를 자책했는지 모른다. 죽으라는 법은 없는지 다행히 나와 같은 피해자를 알게되어 그들의 도움으로 출국 직전에 사기꾼으로부터 돈을 돌려받을 수 있었다. 한숨 돌리나 싶었는데 캐나다 가는 당일에는 LA에서 밴쿠버로 가는 비행기가 무려 8번이나 지연돼서 공항 미아가 된 채 연말에 혼자 영화 터미널을 찍었다. 캐나다 땅을 밟아보기도 전에 나는 이미 지쳐있었다.
영어, 자신감을 얻다
'그래도 할 건 해야지' 하는 마음으로 밴쿠버에서 가장 커리큘럼이 빡세다는 어학원에 등록했던 참이었다. 8주 동안 정말 교우관계는 최소한으로 하고 학업에만 매달렸다. 이미 IELTS를 공부하고 가서인지, 최고 레벨 반에 배정받았는데도 수업이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영어는 내게 아킬레스 건 같은 존재였는데 난생처음 영어로 우등생도 되어봤다. 선생님도 반친구들도 모두 우호적으로 대해주니 영어에 자신감도 얻게 되었지만, 한편으로는 '영어가 얼마나 늘었을까?' 하는 의문도 들었다. 그래도 매일 쏟아지는 프레젠테이션과 라이팅 과제를 성실히 해냈다.
돌이켜 생각해 봐도 결코 내가 영어를 잘했던 건 아니었다. 아무래도 어학원에 온 친구들은 나이도 어리고 목적도 나와 다르기에 그런 게 아닐까 싶다. 하지만, 이를 통해 완벽한 영어를 구사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소통하려는 용기와 자신감이라는 것을 깨달은 값진 시간이었다.
다사다난한 정착기, 그 속에서 찾은 즐거움
오기까지는 힘들었지만, 막상 도착한 캐나다는 따뜻했다. 운 좋게 좋은 집과 좋은 룸메이트들을 만나 정을 쌓았고, 저녁에는 함께 요리해서 나눠먹고 아침에는 집 앞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하루를 시작했다. 또, 일자리도 곧바로 구해 포케바에서 일할 수 있었다. Foodsafety 자격증도 전공과 관련이 있던 터에 쉽게 합격할 수 있었고, 실제 근무하며 식재료 품질 및 위생 관리와 Asian healthy franchise에 대한 소비자 인식 및 트렌드도 분석하며 해외 시장 아이디어도 구상할 기회도 얻었다.
하지만 반년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캐나다 생활이 마냥 평화롭지만은 않았다. 길거리의 노숙자와 마약 중독자들 때문에 치안에 긴장을 늦출 수 없었고, 아르바이트 트레이닝 중에는 노숙자가 의자에 똥을 싸는 기상천외한 경험도 했다. 하필 그날 청소 당번이어서 '내가 지금 이 나이에, 여기서 무엇을 하는가.'에 대한 현타도 왔지만, 그마저도 타지에서만 겪을 수 있는 특별한 경험이라 생각하며 툴툴 털고 일어났다.
새로운 곳에 적응하는 내 방식은 언제나 음식이었다. 밴쿠버 곳곳을 누비며 맛있는 음식과 맛집을 찾아다녔고, 그 과정에서 캐나다에 정을 붙였다. 각국 친구들의 고향 음식을 맛보며 터키, 브라질 같은 생소한 음식과, 관련된 인문학에 대한 견문을 넓혔고, 룸메이트들과 떠난 빅토리아 여행에서는 본고장인 영국과 아일랜드보다 맛있는 '레드피쉬 블루피쉬'의 피시앤칩스를 맛보며 잊지 못할 추억도 만들었다. 특히 와인을 좋아하는 나에게 킬로나의 와이너리 투어는 무엇보다 특별했다. 바이오다이내믹 농법으로 재배된 와인부터 생소했던 포도 품종까지, 지식과 미식의 즐거움을 동시에 누릴 수 있었다.
언제 또다시 볼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짧은 시간 동안 만난 소중한 인연들과 넓어진 식품에 대한 견문은 나를 한층 더 풍요롭게 만들었다. 이 모든 것이 앞으로 펼쳐질 인생의 소중한 페이지가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