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년 전 번아웃 vs. 9개월 전 번아웃
아래 글은 2022년 2월 1일 쓰인 일기를 조금 편집한 것이다. 괄호 안은 지금 시점에서 추가한 내용이다. 9년 전 번아웃은 대학원 석사생 시절로 거슬러 간다. 대학원은 어쨌든 졸업이라는 것을 하니까 이해관계와 모든 상황 여건이 졸업을 통해 한꺼번에 바뀌는 이벤트다. 그 덕에 나는 번아웃을 벗어났다고 착각했다. 실은 쉼 없이 입사 후 계속해서 많은 일들을 해댔다. 뿐만 아니라 바닥에 들러붙었던 커리어를 일으켜 세워야 했기에 대학원 진학하는 순간까지도 뭔가 제대로 휴식이란 것을 가질 여유가 전혀 없었다. 남들 다 하는 여행조차도 너무 사치 같아 가질 못했다. 정확히는 가지 않았다. 내가 하고 싶은 그 여행에 크게 못 미치는, 기별도 없을 휴가 따위에는 전혀 흥미가 없었기에. 하지만 그런 생각이 거의 10년 이상 지속되면서 당시 가랑비 같았던 작은 사건들이 어느샌가 마음속에 암 같은 병으로 자리 잡게 된 것 같다. 보이지 않는 병마와의 싸움은, 끈질긴 사유로도 처단할 수 있었고 때론 극복도 가능했다. 착각이었다. 이후 운동의 맛을 본 이후 몸과 마음 양면으로 열심히 나를 북돋는 과정에서 나는 나를 다루는 법을 익히고 있다고 생각했다. 분명한 성장도 있었지만 오해가 공존했다. 가장 큰 문제는 문제의 원인을 제거하거나 마주하기보다는 덮듯이 살았다는 것. 심지어 알면서도. 번아웃이란 마치 건물 같다. 월드타워처럼 혼자서 삐죽 솟은 건물이 마음속에 생긴 것이다. 그만큼 다른 건물을 주변에 수놓으면 되겠지, 되겠지, 되겠지, 그러면 그럴수록 그 녀석만 자라났다. 싹을 잘랐어야 했는데 너무 많이 늦어버렸다. 폭파공법으로 부수는 것도 막대한 에너지와 주변 피해가 불가피할 테니 엄두가 나질 않는다. 이런 비유를 들면 안 되겠지만, 내면의 어떤 비행체로 냅다 갖다 박는 정도가 아니고선 효과도 없을 것 같다. 할 수 없다. 그래도 의지가 있다면, 칼을 뽑았다면, 전방위로 다 갈아치우는 것 외에는. 지름길도 없는 것 같다. 몇 개월, 아니 몇 년이 걸릴지 가늠이 잘 가질 않는다. 그러니 같이 살면서 익숙해져 버린 것. 어쩔 수 없다. 내가 아닌 타인은 장기적으로 나를 도울 수 없으니 오롯이 내 몫일뿐. 9년 전에 제대로, 제대로 털어내지 못해 내게 미안하다. 아래의 글을 보면 얼마나 단단히 마음먹고 덤비지 않으면 바뀔 수 없는지를 깨닫게 해 준다. 마치 최근에 쓴 글 같다.
오래 쟁여둔 맥주캔의 도움으로 잠을 청했다. (올해 여러 가지 이유로 가장 괴로웠던 날이다.)
음력설 새해 아침, 눈을 뜨니 이제야 실감이 난다.
어제, 이미 바쁘다는 핑계로 처음으로 부모님 댁에 가질 않겠다 말했다.
그나마 온전히 내 시간을 가질 수 있어 마음은 편했다.
(집필 막바지였다고는 해도 가족 행사나 모임 등을 이렇게 그냥 안 간다고 말한 적은 처음이었다.)
사실 밀린 신문들이 이렇게 요긴할 줄은 몰랐다.
(신문을 몇 개월치 받기만 한 채 읽을 엄두도 못 내고선 그냥 쌓아두고 있었다.)
신문을 읽는 행위가 감정을 최대한 다스릴 수 있게 돕는다는 것을 처음 알 수 있었다.
정확히는 무언가 읽어야 한다는, 글을 약처럼 마셔야 한다는
어떤 본능과도 같은 처방을 스스로에게 내릴 수밖에 없었다.
어젯밤 당근마켓에 올린 나눔 거래를 1건 하고선 곧바로 서점으로 향했다.
설 당일에는 웬만한 서점이 모두 닫았지만 영등포 타임스퀘어는 열었다.
그렇게 목적지인 교보에 들어간다.
오늘은 나를 안아줄 글을 원해서 왔다. 몇 개 봐 뒀던 책을 본다.
그중에 '기분이 태도가 되지 않게'라는 책을 본다.
비수를 찌르는 내용이 이렇게나 많다니
순식간에 책 한 권을 그 자리에서 금세 읽어버렸다.
다른 곳은 도저히 안 되겠어서 쉑쉑버거로 향한다.
루트비어를 정말 오랜만에 마셨는데 오늘은 이게 위로가 됐다.
시간이 좀 남아 다시 서점으로 향했다.
문득 '어-바웃 번-아웃'이란 책에 시선이 머물고
그 책 역시 절반을 후루룩 읽어버렸다.
이 책이 좋았던 점은 번아웃 리터러시 부분이다.
자료에 의하면 40대 검색량이 가장 많다고 한다.
남자는 나이가 들수록 검색량이 대폭 증가했다.
게다가 저녁형 인간일수록 더 많다고 한다.
물론 엄마들의 번아웃과는 다르겠지만
이 책을 읽고 이제는 정말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나는 번아웃이었다.
솔직히 대학원 때 겪은 번아웃은 굉장히 극한 상황에서의 번아웃이었기에
일상적으로 생기는 것과 비교가 어려운 것임을 간과해왔다.
나는 줄곧 그때의 경험을 기준으로 현재의 나를 진단해왔던 것이었다.
그게 오류였다.
이미 많이 번아웃 상태가 됐고 그 시점이 언제부터라고 하기도 어려운 것 같다.
나의 경우 내 성격과 기질도 한몫 하지만 이건 정말 회사에서 하는 일 때문이 맞다.
(떠나보낸 사람이 너무 많은데 나는 아직 남아서 버티듯 일을 하고 있으니 말이다.)
불현듯, 아 나는 '중력이 없는 별'인가 이런 표현이 저절로 떠올랐다.
하지만 찾아보니 이미 이런 표현을 누가 이미 해버려서 좀 그랬다.
얼마 전 너와 몇 안 되는 통화를 하면서 했던 이야기가 생각났다.
나는 그때 정말 도움을 요청했던 것 같다.
그 말을 건넨 것만으로도 후련했기에 '그래, 됐어' 또 이렇게 생각했나 보다.
돌이켜보니 그건 나 좀 살려달라는 외침이었다.
그렇지만 내가 나를 몰라주는데 상대방이 나를 어떻게 알아줄 수 있었을까.
그때 넌,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하지 않겠냐 제안했지만 나는 괜찮다 했다.
실은 그 조차도 내 번아웃의 정체가 드러나는 순간이었지만 나는 알지 못했다.
솔직히 번아웃임을 인정하고 책의 이런저런 내용을 보다 보니까
내가 너무 안쓰럽고 수많은 징후가 내 주변에 가득 널려있음에 왈칵 눈물이 쏟아지지 않을 수 없었다.
어쩌면 정말 나에게는 이직이 아니라 그냥 퇴직이 필요한 것 같다. (원고가 아직 안 끝난 상태)
알지만 용기가 없다고 매번 이야기한다. 영혼은 오래전부터 자유롭게 해외여행 중이면서.
그렇게 집으로 향하면서 괴롭지만 이게 다 선물일 거라 애써 생각하려 해 봤다.
이 소중한 시간을 헛되이 쓰지 않을 것이라 굳은 다짐을 하면서 말이다.
이건 새로운 생각도 전혀 아니다.
아주 전부터 못해온 그 숙제가 곪은 것에 불과할 뿐.
하지만 그땐 번아웃이라는 키워드를 중심에 두지 못한 나였다.
모든 것을 내려놓기 전에 내 삶을 바꿔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