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력자 증후군의 최후
올 10월에만 위경련이 4번 왔다. 난생처음이다.
첫 번째는 자다가 새벽에, 두 번째도 비슷한 시간에, 세 번째는 막 잠이 들자마자, 마지막은 급기야 낮에 운동하는데 헬스장 사이클 위에서 기습적으로 오는 것이다. 주기도 점점 짧아졌다. 상황과 통증이 무언의 메시지처럼 점점 조여왔다. 왜지..?
자다가 번쩍하고 눈이 떴을 때는 막연한 공포 탓에 명치를 어르며 주섬주섬 일단 집 근처 응급실로 가게 되더라. 근데 오히려 마음이 불안하니까 택시 타고 빨리 가기보다는 좀 걸으면서 달래 보며 응급실로 향하게 되었다. 혹시나 그냥 나아졌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을 갖고선 말이다.
그렇게 매번 밤을 걸었다. 20분쯤 지나자 위가 움직이는 느낌이 들었고, 40분쯤 지나니 체기가 다스려지기 시작하는 것 같았으며, 60분쯤 걷다 보면 꽤 괜찮아지거나 약간의 불쾌감만 남기까지 상태가 호전되긴 하였다.
그렇게 3번씩이나 응급실로 향해봤지만 끝내 들어가지 않았다. 응급실 앞에 서있는 번쩍번쩍 앰뷸런스를 보면서 이렇게 고민하는 것 자체가 나는 응급환자는 아닌 것 같았기에—몹쓸 버릇.
첫 통증을 겪은 직후 새벽이 다해서 바로 병원으로 가봤지만 호전되지 않았고, 헬스장에서 또 통증이 온 날엔 좀 걷다가 근처 병원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올초 건강검진도 받았기에 큰일은 아닐 것 같았지만, 끼니마다 뭘 먹기가 이젠 신경이 많이 쓰인다. 처방받은 약을 먹고 5일 동안은 별일 없었다. 그래도 찜찜할 수밖에 없었다. 이제 약 없이 끼니를 대해야 하는데, 또 언제 이 녀석이 나타날지 모른다는 내 생각과 싸우는 중이다.
그렇게 평생의 벗인 카페인과도 생이별했다. 나는 이제 운동에 진심인, 술과 담배는 물론 커피까지도 안 마시는 진짜 재미때가리도 없는 인물로 매듭지어진 듯하다. 일부러 식사를 천천히 할 요량으로, 미봉책이지만 이북이라도 보면서 꼭꼭 씹어 먹어보기로 했다. 그러다 니체에 관한 책을 보게 되었는데 달음에 완독을 해버렸다. 거울에 비친 위장 아니 그 이면의 내 속을 마주한 계기였다.
일련의 사태를 겪다 보니 나의, 나에 대한 측은지심이 가열 돼옴을 직시했다.
사실 사소한 생활 속 여러 구멍으로부터 아주 조금씩 나의 에너지가 유실되고 있었지만 방관했다. 오히려 새로운 에너지원을 탐하며 줄기차게 새로운 일에 매진하며 메꾸듯 살았다. 그렇게 큰 불편까지 야기하지 않는 수준에서 내 삶이 불건강하게 고착화되어 가는 것도 익히 알았지만 습관처럼 미루기만 했다. 그러니 그렇게도 운동만이 제일 절실하고 좋을 수밖에.
내 몸과 마음보다 우위를 두는 것들이 많았다. 정확히, 나는 오-래 묵은 ‘끓는 물속의 개구리(boiling frog)’였다. 밥 대신 책이 걸려 나에게 계속해서 여진을 일으켰다. 그래, 번아웃도 그저 몸과 마음의 눈물이었다. 관계, 이 또한 위선이자 사치일 수밖에. 모든 이벤트들은 그냥 다 전조였다.
길게 보자면 10년이 넘은 못된 버릇, 내 마음속 창고를 순회하자니 기가 막힐 따름이었고, 급기야 멘토링 약속을 까먹는 초유의 사태까지 맞이하게 된다. 나를 향해 있는 대로 욕설을 퍼붓고 패대기치고 싶었지만, 어떠한 더 큰 힘에 의해 급제동이 걸리며 이내 의연해질 수 있었다. 나이가 들면 이럴 때 스스로 제법이란 생각에 흐뭇한 점 하나는 좋더라.
그날 밤은 그렇게 홀연히 내 심연의 여행자로 걷고 또 걸었다.
그 결과, 나는 멘토링도 내려놔야 한다는 생각마저 하기에 이른다. ‘조력자 증후군’이라는 걸 딱 처음 들어본 그 순간, 서둘러 모든 걸 외면하려는 내 내면의 잽싼 요동침이 기억난다. 지금 나는 분명 그때의 벌을 받는 것이라 느낀다. 인정을 해설까. 체기가 더 이상 오지 않길 바래본다.
그렇게 다음날, 또 아무렇지도 않게 강의를 진행한다. 심지어 부족하면 얼마든지 또 질문하라고 연신 말하는 이 인간… 정말인지 이렇게 양심의 가책도 없는 나란, 범죄자 아닌 범죄자가 아닐까 생각하니… 뭐라 표현을 못하겠다.
나도 그저 그런 멘토들처럼 기계적인 답변만 해야겠다. 질문 그 이상 더 퍼주지도 않아야겠다. 그러면서도 오늘 아침 출근 전에 또 답변을 달았지만, 나름 덜 퍼주려고 노력하는 척이라도 계속해보기로 했다.
지난 6년 동안 수백 명의 멘티와 밀도 높은 질의응답을 해왔다. 아직, 아무도 멘토가 되어 활동한다는 이를 만나지 못했다. 그것이 내가 유일하게 바란 대가였음에도 말이다.
애석하다. 어쩌면 멘토란 과거 곤경에 처한 나처럼 스스로를 도우려 한 노력이 만든 근육이 재료였을까. 그렇다면 나는 그들의 근성장을 미연에 저지한 것일 수도 있다. 그러면서 멘토가 되길 바란 셈이다. 실은 그들에게서 멘토가 될 훈련의 기회를 앗았던 건 아닐까 생각하니 마음이 차갑고 쓰렸다. 모든 내 욕심이 자초한 결과잖냐.
질문에도 트렌드가 있다. 책의 여파 일지 알 순 없지만, 더 이상 나라는 멘토가 아니면 안 될 것처럼 매달리는 애정을 다하고픈 이들도 없어졌다. 당장의 취업을 위한 포트폴리오 첨삭과 코앞의 면접을 향한 리허설, 웹 기반 경력에서 고급 UXer가 되고 싶은 이들의 현실 고민으로 질문의 유형이 급격히 단출해진 올해다.
그리고 어느덧 이제 세상에는 많은 멘토들이 눈에 보인다. 단톡방 안에서 실시간으로 응원과 정보도 주고받는다. 나 하나쯤 음소거 한들 티도 안 날 만큼 어떤 큰 시장이 활성 중이다.
작년 이맘때였던 것 같다. ‘아, 나에게도 멘토가 필요하다’는 자각을 처음 할 수 있었다. 정작 날 위한 멘토를 찾는 것은 굉장히 어려웠다. 예나 지금이나 나는 스스로 돕지 않으면 안 되나 보다.
얼마 전 멘토링 2.0을 운운했던 팟캐스트 건도 보류라지만 사라진 것 같다. 여러 정황들을 종합해 보면 싸인이 이젠 명확해 보인다.
여러 사람들로부터 ‘다정하다‘는 피드백을 들었던 그 멘토링 스타일은 이제 멈출 생각이다. 이제부터 만나게 될 멘티들에게는 미리 미안하다. (어차피 이 글을 보지도 않겠지만)
나는 이제 나를 최우선으로 삼고자 한다. 그리고 이 문장을 조금 변형해서 적어보면, 나는 나의 멘토가 되기로 마음먹었다. 이게 진짜 2.0이겠다. 문제도, 그 원인도, 해법도 이미 모두 알고 있다. 귀찮은 설거지와 빨래처럼 미뤄지고 늘어진 날 위한 일들에 매진해야겠다.
멘토가 된 계기가 멘티들로부터 느낀 측은지심이었지만, 그 원인부터 살피자면 궁극적으로는 디자인계와 업계를 향한 문제의식이 주요했다. 차라리 그 본질을 겨낭하겠다. 6년간 멘토로서의 희로애락, 출간된 한 권의 책, 그렇게 얻은 여러 아웃풋들이 내 욕심을 채우기엔 턱없이 부족하지만, 더는 내게 남은 에너지가 이제 정말 없다. 밑 빠진 독부터 보수해서 시간을 들여 에너지를 가득 채우고 훨씬 더 강하고 건강한 창작자로 거듭나리라!
Photo by Artem Kniaz on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