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적인 내 녀석의 눈웃음
책에 대한 비하인드 스토리를 조금씩 푸는 것이 그나마 가장 최소한의 공력으로 이 브런치를 간신히 운영할 묘책이라 여겼거늘. 근데 덥고 추운 이곳을 참 알게 모르게 살피고 가는 이들이 있다는 것도 신기하다. 결과적으로 괜히 브런치만 만들어놓고선 보기 좋게 자기 약속만 번번이 어기는 싸구려 흔적만 쌓자니 답답했지만, 이제는 그리 답답하지도 않다. 포기해서가 아니다.
그 사이, 다섯 번째 위경련이 있었다. 그, 커피한테 미안하다. 저녁 운동 후 먹는 마지막 끼니가 늘 늦어지는데, 피곤은 하니 빨리 잠들다 보니 위가 빡친 것임을, 스트레스가 적인데 커피를 재물로 삼고 말았다. 그저 디카페인을 편애하고, 즐기는 수준으로 모금을 제한하기로 했다. 이제 약 없이도 두렵지 않다. 아직까진.
또한 코시국 이후 첫 해외출장도 무탈하게 다녀왔다. 비록 가까스로 재건해낸 잃어버렸던 루틴을 이 출장이 잠시 망가뜨렸지만, 대체 어디서부터 비롯된 여유였을까. 북미 땅은, 내게 항상 진짜 외로움이 무엇인지를 가르쳐주면서도 동시에 내 안의 숨은 에너지를 일깨워주는 것 같다. 마치 어느 날 겨울옷을 정리하다 안주머니에서 몇 십만 원이 나타났을 때 그 기분처럼 출처를 알 수 없는 여유가 감도는 것 아닌가.
힘들었던 시기와 이를 극복했던 순간들을 모아 보면, 반등이 시작된 것인가 싶기도 하다. 내가 나에게 있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총기'이다. 무기 말고 총명한 기운! 뭐 그 자체가 무기가 될 수도 있겠지만. 번아웃을 운운하며 그토록 모으고 싶었던 에너지의 실체는 바로 '총기'인데, 차오름은 모르겠지만 적어도 밑 빠진 독을 보수해낸 정도 느낌은 든다.
'총기'만 가득하다면 지난 몇 년 간의 아웃풋 따위는 다 바르고도 남을텐데, 이걸 경험한 이들이 희소해서 많은 이들에게 보란듯이 선보이고 싶은 마음뿐이다. 기회가 왔을 때 잡으려면 어쨌든 외부요인만 잠잠하다면 이제부터 내 하기 나름이라고 볼 수 있겠다.
곧 있으면 또 한 살을 강제로 먹게 된다. 동시에 매년 훈장처럼 주어지는 어떤 지혜나 자태가 내년에는 무엇일지 참 궁금하다. 내가 출장기간이라는 불가항력에 대항키보다는 루틴을 스스로 내려놓을 수 있었던 것은 어쩌면 여섯 번째 위경련을 피하고 싶은 조치였던 것 같다. 그러면서 동시에 내가 얼마나 루틴에 대한 열망이 강렬한지도 확인했다, 갓생! 바라옵건대, 잃어버린 '총기'는 내가 갈고닦을 테니 저 루틴을 수호할 강한 무기를 주셨으면 좋겠다.
올초엔 #예쁘게 #재밌게 라는 모토를 세운 바 있었다. 비논리적이지만, 이 둘을 융합하면 '이기심'이 되는 것 같다. 나는 차라리 내가 조금 이기적일 때 그 모습이 타인에게 예뻐 보이고, 또 재밌어 보이는 듯하다. 20대엔 이런 부분을 덕목으로 체화하기에 깜냥이 부족했던 나라 '이기심'을 잘 활용하지 못했다. 늘 내주듯 손해를 봐야 안심이 됐다. 그 모습은,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슬픔이나 분노 혹은 괴로움이 되곤 했다. 예쁘지도, 재미도 없었을테지.
별을 잘 보려면 칠흑 같은 어둠이 있어야 하듯, 진정한 사랑에는 반드시 '이기심'이 필요한 것 같다. 흡사 달고나에 들어가는 베이킹소다처럼. 그래서 매일같이 이 '이기심'이라는 단어를 되뇐다. 친해지려고. 나는 이기적인 사람이 될 거다. 더 예쁘고, 훨 재밌게, 훗!
Cover Image by Squid Game via Netfli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