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업가의 내공
공동창업가와의 지분 협상, 직원과의 연봉 협상, 투자 조건 협상, 총판과의 공급가 협상, 협력사와의 라이센싱 협상, 인수회사와의 가치 협상 등등. 창업의 시작부터 끝까지 창업가는 계속해서 다양한 그룹과 협상(negotiation)을 해야한다. 하지만 많은 초보 창업가들이 협상의 목적(purpose)과 목표(goal), 득과 실(P&L)을 명확히 따지지 않고 임한다. 그러다보니 너무 좋은 기회임에도 불구하고 대응 강도를 유연하게 조절하지 못해 협상이 결렬되거나, 이득이 전혀 없는 제안을 덥석 받아드리는 경우가 많다.
논리적 설득
협상은 기본적으로 설득의 과정을 통해 상호 만족할만한 수준으로의 합의(agreement)에 이르는 과정이다. 이 과정에서 설득은 주관적인 주장의 형태가 아니라 상대방을 논리적으로 납득시키는 형태여야 한다. 통상적인 협상은 대면 상황에서 곧바로 결론이 나지 않는다. 상대 협상자가 개인인 경우는 일정 기간동안 생각할 시간이 주어지고, (제시한 연봉과 제안에 대한 심도있는 고려) 법인의 경우는 프론트 협상자가 내부 의사결정자들을 다시한번 설득하는 과정이 수반된다. 중요한 것은, 이 과정에서 대면 협상시 전달한 정성적인 메시지와 수사적인 포장은 휘발되고 논리적이 내용만이 남는다는 것이다. 따라서, 처음부터 논리적이고 정량적인 정보를 통해 명시적으로 설득하는것이 더 효율적이다.
유연함
10여년전 내가 발명한 특허기술을 S전자에 이전했을 때의 일이다. 당시, 스마트폰에 적용 가능한 인터페이스 특허의 가격을 가지고 양측에 이견이 있는 상황이였다. S전자 측에서는 좋은 기술이긴 한데, 국내 출원 특허 1건을 해당 가격으로 구매한 선례가 없다는 것이였다. 구매가가 높아 담당자 입장에서 부담스러운 계약이라도 했다. 이 상황에서 우리측이 한 대응은 무엇이였을까? 미팅 그 다음날 바로 2건의 새로운 추가 아이디어를 출원해서 내부 담당자의 논리를 맞춰주었다. 즉, 총 3건의 특허를 이전하는 것으로 가격에 대한 문제를 해결한 것이다. 이런 유연함을 통해 구매자는 부담을 덜면서 더 강한 특허를 살수 있게 되었고, 우리는 원하는 가격에 특허를 팔수 있었다.
기본적으로 협상은 상대방이 원하는 것과 우리가 원하는 것을 맞추는 퍼즐이다. 이 퍼즐 게임을 푸는 쉬운 방법은 다양한 모양의 조각을 가지고 유연하게 그림을 맞춰 나가는 것이다. 적은 수의 퍼즐 조각을 가지고 아무리 시도 해봤자 그림을 완성할 수 없다.
상대방이 진짜 원하는것
상대편의 퍼즐조각은 의외의 것일수 있다. M&A 담당 임원의 성과, 협업 담당 MD 의 방송실적, 대응 부서간 정치, 연말 비용 소진 등등. 협상의 첫번째는 상대방의 본질적 목표를 파악하는 것이다.
협상의 우위
협상력은 간절함에 반비례한다. 따라서, 협상은 언제나 하나 이상의 차선책을 만드는 것이 좋다. (생산 공장, 판매채널, 공급채널, 복수 투자자, 포텐셜 바이어 다각화 등등) 그래서 필사적으로, 반드시, 꼭 이뤄야 하는 협상은 언제나 손해가 발생한다.
약자 코스프레
많은 스타트업 창업가 분들이 큰 기업과 협상을 할때 스타트업 약자 코스프레를 활용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기업의 협상은 기본적으로 법인 상호간의 유사한 가치를 서로 교환하는 거래이다. 직원이 5명인 회사와 1만명의 회사가 거래를 하더라도 서로의 가치교환은 동등한 수준일 수 있다. 균형감 있는 첫 거래가 두번째, 세번째 거래를 만든다.
최종 산출물
같은 이야기라도 각자의 관점에서 다르게 이해되기 때문에 기록으로 남기는것이 매우 중요하다. 따라서 협상의 결과는 반드시 기록되어야 하고, 최종 산출물은 계약서를 통해 상호간 서명이 이루어져야 한다. 가끔 법률 서비스를 협상의 전면에 내세워서 비본질에 시간과 비용이 들어가는 경우가 생기는데 (양측 변호사들끼리 작은 문구하나로 무한 핑퐁), 이것은 효율성의 측면에서 바람직하지 않다. 창업가가 기본적으로 딜의 주요 요소와 스트럭처를 명확하게 이해하고 있어야 하고, 이것이 법적 문서로 잘 반영되었는지를 법률 서비스를 통해 지원받는것이 건강하다.
상호관계
협상은 협상의 결과 외에도 한가지를 더 남긴다. 바로 협상 당사자와의 관계이다. 좋은 협상 결과를 만들었지만 당사와의 관계는 더이상 복구 불가능한 수준일 수도 있고, 협상은 결렬 되었지만 언제든 다른 목적으로 협상할수 있는 우군을 만드는 경우도 있다. 특히, 인재를 영입하기 위한 연봉 협상이나 투자사와의 협상은 장기적인 속성을 가지고 있으므로 협상이 결렬되었더라도 우리의 우군으로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협상의 시간
경험상으로 협상이 길어지면 좋지 않은 결과를 만든다. 협의가 길어지면서 초기 협상의 변수가 바뀔수 있기 때문이다. 협상 담당자가 바뀌거나 의사결정자가 바뀔수도 있고, 내부적으로 정치판도가 바뀌거나, 시장상황이 달라질 수 있다. 따라서 협상시에는 최대 협상 시간을 내부적으로 정해두고 진행하는 것이 좋다. 협상이 너무 느려지는 경우, 문제의 난이도를 조절하는 것도 방법이다. 예를 들면, 주관식을 객관식 문제로 바꿔보는 것이다. (1번, 20% 수익쉐어와 2년간독점 판매권. 2번, 15% 수익쉐어와 3년간 독점 판매권.)
협상의 컨텐츠
"배드캅과 굿탑을 둬라." "밀릴때는 반전을 위해 탁자를 탁치고 나가라 (잡스 따라하기)." "탑 다운 방식으로 하나씩 합의를 하라." 등등. 협상과 관련된 다양한 고전적 스킬이 존재한다. 하지만 경험상 협상에서 가장 중요한것은 협상 테이블 위에 올라간 당사자들의 컨텐츠다. 내가 상대방에게 줄수있는 가치와 상대방이 우리에게 줄수 있는 가치가 비슷한 크기이고 명확하다면 어떤 형태로든 산출물은 나오게 되어있다. 따라서, 궁극의 협상력은 화려한 스킬셋이 아니라 교환가능한 가치있는 컨텐츠를 보유한 것으로 만들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