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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J Mar 25. 2023

[에세이] 미국 G사의 인턴 UX디자이너가 되다.

한국 주니어 디자이너가 미국 G사 UX디자인 인턴이 되기까지

어떻게 미국에 가고 싶은 생각이 들었냐는 질문을 종종 받는다. 큰 물에 나를 한 번 내던져 보고 싶었다. 당시 디자이너라는 타이틀도 어색했던 신입이었기에 그랬을까, 한 치 앞을 예측할 수 없는 하루하루에 용기가 생겼던 것이었을까. 디자이너라는 타이틀로 만 1년을 채우던 즈음, 잘 다니던 디자인 회사를 그만두게 된다. 백수가 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코로나-19가 터지게 된다는 것도 물론 예상치 못한 미래였지만 말이다.





이제이 미국 대학원에 가다


코로나로 휑했던, 이제는 보기 드문 한적한 University of Washington 벛꽃 잔디밭


바쁘게 미국대학원 입시를 치르고, 코로나-19 때문에 미국 입국이 되녜마녜 하며 몇 달을 혼란스럽게 보내다 정신을 차려보니, 다행스럽게도 무사하게 시애틀에 와 있었다. 당시 코로나-19가 막 창궐하던 시기였어서 그런지 기숙사에도 사람이 별로 없었다. 시내에도 많은 식당과 가게들이 문을 닫았던 환경인지라 친구를 만들기는 차치하고 대화할 사람을 찾는 것 만으로도 감사할 정도였다. 게다가 의아할 정도로 매일 흐리고 계속 비가 오는 날씨였는데, 알고보니 시애틀은 연간 아홉 달은 비가 온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비가 자주 오는 곳이었다.


우리 학교는 9월 말에 개강을 했는데, 다음 해 여름 인턴 모집 공고가 벌써부터 나오고 있었다. 나는 처음부터 미국 유학의 일차적 목표가 빅테크 기업 취업이었으므로, 크고 작은 테크 회사들의 인턴 공고들이 계속 나올수록 마음이 조급해졌다. 어디선가 ‘일찍부터 준비하면 좋다’는 조언을 들었어서 늦기 전에 조금씩 지원을 시작해봐야겠다는 생각이었다. 마침 코로나-19로 인해 자의반 타의반 방에 고립되어 취준만을 위해 집중할 수 있는 최적의 작업환경이 조성되었다.





낯선 땅에서 네트워킹 하기 #레퍼럴 #인터뷰


섣불리 지원서를 넣을 수는 없었다. 미국에서 ‘Referral’이라는 당시 나에겐 조금 생소했던 추천인 제도가 있었는데 어느 정도의 노력으로 주어지는 어드밴티지를 포기할 수는 없지 않은가. 당시 미국 기업에 아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고 성격이 막 그렇게 적극적인 성격도 아니었지만, 레퍼럴을 얻기 위해서는 네트워킹을 반드시 해야만 했다. 판데믹으로 인해 대면 네트워킹이 지극히 어려워진 시기에 적극적으로 임하지 않으면 시작부터 꼬일 수도 있겠다 싶었다. 영어로, 심지어 온라인으로 하는 네트워킹의 어색함이라던가 문법의 맞고 틀림은 상관이 없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니 정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고 그게 더 큰 걱정거리였으니까.


입학할 때 즈음 용기내어 연락드렸던 한국인 분이 감사하게도 레퍼럴을 해주셨고, 입학 후 한 달 반쯤 뒤 첫 인터뷰가 잡혔다. 문제는 연습을 제대로 해보기도 전에 대기업 인터뷰가 잡혀버렸다는 점이었다. 열심히 준비했지만 처음이었던만큼 많은 부분이 미흡했고 결국 시원하게 탈락했다. 이후로는 동일한 실수들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 연습을 했다. 그럼에도 낯선 땅에서 또 외국인으로써의 취업 준비는 호락호락하지 않았고 그 뒤로 몇 달간 우울한 인터뷰탈락 대환장시대를 보내게 된다.





세상에서 제일 반가운 메일


6개월 간 100개는 족히 넘는 회사에 지원을 했다. 사실상 학교 수업과 과제는 후순위로 미뤄 두고 취준에 거의 모든 전력을 쏟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대부분 결과조차 전해주지 않았고 그 와중에 도착한 소식들은 연이은 탈락 안내 이메일밖에 없었다. 나름 인터뷰 준비를 열심히 해왔었지만 막상 인터뷰 연습을 하다보면 인터뷰도, 포트폴리오도, 레쥬메도 부족한 부분들이 많았다. 슬프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내 부족한 점에 대한 빠른 인정과 극복, 그리고 무너지는 멘탈에 흔들리지 않고 계속 오픈되는 공고를 찾고 지원하는 것이었다.

정말 힘든 시기였다. 마음을 여러번 다잡아도 좋은 소식이 들리지 않자 우는 날들이 많아졌고 불면증도 심해졌다. 그냥 여기서 다 관두고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그러던 어느 날, 서브웨이에서 줄을 기다리며 친구에게 하소연을 하고 있던 중 이메일 한통을 받았다. G사였다.





드디어 온 기회, 절대 놓치지 않겠어


G사 인턴 지원의 첫 단계는 디자인 과제였다. 일주일 동안 주어진 주제에 대한 디자인 솔루션을 만들어 제출하라는 미션이었다. 가뜩이나 학교에서도 폭풍 과제에 등떠밀려 잠을 못자고 있었기에 일주일이라는 시간이 너무 가혹해보였다. 하지만 지푸라기라도 붙잡고 싶은 심정이었고, 잠을 줄이고 줄여 어찌저찌 과제를 완성해 제출했다. 그리고 한 달 반 뒤 포트폴리오 인터뷰를 보고 이후 팀 매칭 단계의 인터뷰를 보았다. 매니저와 인터뷰한 것이 내 마지막 인터뷰이었고 Behavioral question을 한 15여 개 정도 받았던 것 같다. 그리고 얼마 뒤, 그토록 기다리던 합격 전화를 받게 된다.


감사하게도 G사가 가장 마지막 면접이었고, 매니저가 마지막 인터뷰에서 한 질문들은 모두 6달 내내 질리도록 연습했던 예상 질문 리스트 안에서 나왔다. 그래서 아마도 내가 할 수 있는 대답들 중 가장 자연스럽고 다듬어진 답변을 하지 않았을까 싶기도 한데, 그렇다고 엄청 거창하고 대단한 답변들을 한 인터뷰도 아니었다. 그래도 계속 문을 두드리다보니 언젠가 기회가 오긴 오더라.





문을 여니 또 다른 새로운 문들이


인턴 재택근무 지원금으로 세팅했던 기숙사 오피스


어떻게 합격했을까 마냥 좋다가도 막상 실제로 인턴을 할 생각을 하니 또 다른 막막함이 다가왔다. 똑똑한 사람들이 넘쳐나는 이 큰 회사에서 내가 프로젝트 진행을, 심지어 모국어가 아닌 영어로, 잘 해낼 수 있을까? 이 어려운 시기에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과연 내가 정규직 전환이 될 수 있을까? 코로나로 인해 재택근무하는 것이 불이익이 되지는 않을까? 어렵게 문 하나를 여니 또 다른 새로운 문들이 줄지어 나를 반겨 주었다. 어쩌겠어, 그냥 일단 부딪혀보는 수밖에. 미래의 이제이, 너가 하나하나 한 번 잘 해결해봐라.






이 글과 함께 읽으면 좋은 더 자세한 내용은 저희가 계속 연재 중인 미국 UX디자인 유학취업 가이드 매거진 에서 만나 보실 수 있습니다. 다음 편에서는 또 다른 경험담을 담은 에세이를 가지고 오려고 합니다. 기대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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