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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을 주는 법

일에는 반드시 ___이 따라야 한다

by UX민수 ㅡ 변민수

일을 맡긴다는 것은 어떤 의미여야 할까? 누군가에게 일을 주는 순간, 우리는 안심하고 싶어 한다. ‘이제 내 할 일은 끝났다’는 착각 속에서, 정작 일을 받는 사람은 홀로 남는다. 그 사이에서 일이란 단어는 점점 무게를 잃고, 의무만 남는다.


사람은 일을 통해 성장하지만, 일은 사람을 마냥 버티게 해주지 않는다. 일은 언제나 이것과 함께 움직여야 한다. 이것 없이는 일이란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일을 주는 법’은 곧 ‘이것을 다루는 법’이다. 이것에 대해 알아보자.




일만 주는 사람들


일만 주는 건 흡사 왕이나 대통령 혼자 돌아다니는 것과 같다. 수행비서도, 경호원도, 심지어 기자단도 없이 혼자 외출한 대통령을 상상해 보라. 겉보기에는 자유로워 보이지만, 실상은 위험하고 비효율적이다. 현장은 언제나 혼자 감당할 수 있는 무대가 아니기 때문이다.


일도 마찬가지다. 사람에게 일을 준다는 것은 “이걸 해라”라는 명령이 아니라, 그 일을 수행할 수 있는 맥락과 자원, 시간과 권한을 함께 세트로 넘겨주는 총체적 의미가 돼야 한다. 이것들이 한 세트로 움직일 때 비로소 일은 ‘가능’해진다.


그러나 우리는 종종 그중 하나만 던지고 나머지는 나중 일로 미루곤 한다. 인력은 부족하고, 리소스는 모호하며, 심지어 마감 조차도 애매한 경우가 있다. 그럼에도 “일을 줬다”는 사실만으로 책임을 다했다고 착각한다. 그 순간, 일은 사람에게 주어진 것이 아니라 사람 위에 얹히는 짐이 된다.



계약의 본질은 ‘자원과 지원의 약속’


계약서에 서명하는 건 “이 일을 하겠다”는 단순한 선언이 아니다. 그것은 “이 일에 필요한 자원을 이렇게 나누겠다”는 합의의 증거이자, 일의 작동 방식을 명시하는 설계도다. 계약은 신뢰의 증표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시스템을 작동시키기 위한 지원을 약속하는 행위다.


무엇을 줄 테니, 무엇을 내달라 — 이 문장은 거래이면서도 운용에의 합의다. 마감일, 투입 인원, 예산, 승인 절차, 협업 도구까지. 이 모든 제약을 명시하는 이유는, 그 제약이 곧 ‘일의 생태계’를 구성하기 때문이다. 일은 언제나 사람과 도구, 시간과 권한의 관계망 속에서만 굴러간다. 그 관계를 조율하지 않은 채 계약만 맺는다면, 일은 처음부터 균형을 잃는다.


우리는 흔히 계약을 ‘책임의 문서’로만 인식하지만, 사실 그것은 자원의 이동을 공식화한 제도적 약속이다. 이 약속이 무너질 때마다, 일은 언제나 가장 낮은 곳으로 떨어진다. 그리고 그 자리는 대부분, 실무자의 책상이



일은 주는 것이 아니라 세팅하는 것


우리는 너무 쉽게 “일을 줬다”고 말한다. 하지만 정말 일을 줄 줄 아는 사람은 드물다고 생각한다. 나 역시도 어렵다. 그만큼 어렵다. 대부분은 일을 ‘던진다.’ 일은 던지는 순간 무게를 잃고, 방향을 잃고, 의미를 잃는다. 일을 주는 사람이라면, 그 일을 받을 사람이 그 무게를 감당할 수 있을지를 함께 계산해야 한다.


일을 ‘주는 법’을 아는 사람은 일의 크기만이 아니라 그 일이 굴러가기 위한 조건을 안다. 그 조건이란 예산일 수도 있고, 협업 파이프라인일 수도 있고, 심지어는 정서적 지지나 동료의 신뢰일 수도 있다. 일의 조건을 세팅하지 않으면, 그 일은 곧 고립된다. 혼자 버티는 일은 효율이 아니라 착취가 된다.


좋은 리더는 일을 나누기보단 조건을 나누는 것에 가까워 보인다. 그 조건이 바로 일의 안전망이다. 조건이 빠진 일은 과제이고, 조건이 붙은 일은 책임이다. 전자는 시키면 되고, 후자는 맡겨야 한다. 그래서 진짜 일을 주는 사람은 ‘지시자’가 아니라 ‘설계자’다.



그래서 우리는 왜 일만 주는가


조직은 효율이라는 이름으로 자원을 통제한다. 리더는 예산을 쥐고, 실무자는 시간을 쥐고, 각자는 서로의 리소스를 감시한다. 그 결과, ‘일만 남는다.’ 일의 무게는 그대로인데 자원은 축소되고, 사람은 점점 더 외로워진다. 누구에게도 충분하지 않은 일, 누구에게도 완성되지 못한 일. 그런 일들이 쌓일수록 조직은 피로해지고, 일의 본질은 점점 사라진다.


하지만 그건 맡긴 게 아니다. 던진 거다. 맡기는 일은 조건을 세워 함께 책임지는 일이고, 던지는 일은 조건 없이 넘겨버리는 일이다. 우리는 그 둘을 구분하지 못한 채, ‘맡겼다’는 착각 속에서 서로의 신뢰를 조금씩 소모하고 있다.




좋은 일은 세트로 움직인다. 명확한 목표, 적정한 리소스, 합리적인 시간, 그리고 권한. 이 네 가지가 균형을 이루어야 일은 굴러간다. 그중 하나라도 빠지면, 일은 무너진다. 목표가 없으면 방향을 잃고, 자원이 없으면 추진력을 잃고, 시간이 없으면 품질을 잃고, 권한이 없으면 책임을 잃는다.


리더라면 일을 주기 전에 세트를 설계해야 한다. 사람을 먼저 보고, 그 사람의 시간을 보고, 그 시간이 버틸 수 있는 리소스를 본 뒤에 일을 건네야 한다. 일의 세트를 함께 만드는 과정이 곧 신뢰의 시작이다.


고로, 일을 잘 주는 사람은 사람을 부리는 사람이 아니라 시스템을 만드는 사람이다. 일은 개인의 능력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언제나, 세트로 움직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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