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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그레이스 호퍼 & 마거릿 해밀턴 ― 신뢰의 설계

by UX민수 ㅡ 변민수

* AI로 연출된 이미지입니다.


기술의 역사를 들춰보면 늘 가장 앞줄에 적힌 이름보다 그 뒤에서 조용히 방향을 바꿔놓은 사람들이 있었다. 화려한 혁신의 순간은 종종 한 번의 발견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수많은 작은 배려와 눈에 보이지 않는 설계의 층위가 쌓인 끝에 탄생한다.


그 변화의 핵심에는 언제나 ‘사람을 위해 기술이 어떻게 달라져야 하는가’를 묻는 시선이 있었고, 그 시선은 시대를 초월해 몇몇 이들의 손에서 더욱 선명한 형체를 갖추었다. 그레이스 호퍼와 마거릿 해밀턴이 걸어간 길은 바로 그 질문의 최전선에 놓여 있었다.




기계를 믿을 만하다는 확신 만들기


1940년대 후반, 초기 전자식 컴퓨터는 거대한 금속 덩어리 속에서 불규칙하게 숨 쉬는 괴물 같았고 사람들은 그 앞에서 언제나 조심스러운 거리를 두었다. 조금만 잘못 다루면 폭주할 것 같은 공포가 기술에 대한 상식처럼 자리 잡아가던 시절, 그레이스 호퍼는 질문을 바꾸었다. 기계가 사람을 두렵게 만드는 대신, 사람이 기계를 믿을 수 있게 만들면 어떨까. 컴퓨터를 전문가만의 도구로 머물게 하지 않고 누구나 다가갈 수 있는 세계로 옮기려면 무엇을 바꿔야 하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이었다.

호퍼는 1950년대 초, 인간이 쓰는 언어로 프로그램을 작성하려는 전례 없는 시도를 시작했다. 당시 전문가들은 기계 언어가 가장 정확하고 인간의 언어는 모호하기 때문에 컴퓨터에 적합하지 않다고 말했지만, 호퍼는 오히려 그 모호함 속에 ‘사용자 친화성’이라는 새로운 질서를 보았다.


그녀가 설계한 FLOW-MATIC은 기술자의 전문 기호로만 통하던 코드를 사람의 문장처럼 읽히게 만들었고, 이 철학은 이후 COBOL의 탄생(1959)으로 이어졌다. COBOL은 단순한 언어가 아니었다. 기술과 인간 사이에 놓인 난해함의 벽을 부드럽게 낮춘, 신뢰를 위한 첫 번째 인터페이스였다. 누군가는 COBOL을 두고 “너무 쉬운 언어”라고 비웃었지만, 그 쉬움이 바로 호퍼가 바라본 미래의 문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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