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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로 가도 유엑서

by UX민수 ㅡ 변민수

돌아가는 길이 만들어낸 감각들


사람은 누구나 곧게 걷고 싶어 한다. 직선은 효율의 상징이고, 정답을 향해 곧장 나아가는 태도는 늘 찬사를 받는다. 그러나 실제 삶은 좀처럼 직선이 되어주지 않는다. 전공은 맞지 않았고, 첫 직장은 어쩌다 들어갔으며, 다음 커리어는 생각보다 엉뚱한 방향에서 나타난다. 그러다가 이상하게도 어느 순간, ‘사용자 경험’이라는 단어와 대면하게 된다. 그리고 미묘한 친숙함을 느끼며 깨닫는다. 돌이켜 보면 나의 삶은 늘 무언가의 맥락을 만들고, 누군가의 감정을 읽고, 사소한 불편을 낮추기 위해 스스로 길을 고쳐 걷는 과정이었다는 사실을.

정면 승부를 하지 못해 돌아서 간 길에는 이상한 감각이 남는다. 겉보기엔 시행착오지만, 안쪽에는 관찰이 쌓인다. 누가 어떻게 일하고, 어떤 말투가 사람을 움츠리게 하고, 어떤 흐름이 협업을 막는지 자연스럽게 감지하게 된다. 오래된 우회도로를 외우듯 정식 루트에 없는 디테일들이 길 위에 떠다니며 축적된다. 이 감각은 훗날 유엑서가 되었을 때 사람들의 행동을 해석하는 중요한 기초 체력이 된다. 결국 ‘가장 빠른 길’을 아는 사람보다 ‘돌아서 가며 보인 모든 것’을 기억하는 사람이 더 단단해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커리어가 비틀릴수록 읽히는 마음의 디테일


유엑서가 되는 과정은 종종 의도보다 우연의 비중이 더 크다. 물론 정확한 통계에 기반한 것은 아니다. 어쨌든 누군가는 디자인(D)을 하다 서비스 전략으로 가고, 누군가는 개발자로 시작해 사용자 흐름을 이해하는 쪽으로 옮겨온다. 또 누군가는 영업을 하다 고객의 언어를 해독하는 재능을 발견하고 서비스 기획에 들어오기도 한다. 어느 경로든 결국 필요한 것은 똑같다. 타인의 감정을 해석하는 기술, 논리를 감정에 얹어 전달하는 태도, 복잡함을 단순함으로 환원하는 집요함. 이 역치는 누구에게나 어느 순간 찾아오고, 대부분 그 순간은 ‘정식 코스’가 아니라 우회하던 길 한복판에서 조용히 열린다.

유엑서라는 직업의 중심에는 ‘사람이 어떻게 느끼는가’라는 공통된 질문이 있다. 이 질문은 직선으로는 도달하기 어렵다. 오히려 지름길로 달릴 때는 보이지 않는다. 그에 비해 돌아서 걷는 사람은 작은 끊김을 더 잘 감지한다. 앱이 천천히 켜질 때의 초조, 고객센터 연결 대기 중 새어 나가는 감정, 문이 무겁게 닫힐 때의 작디작은 패배감. 이런 감정의 미립자는 곁눈질하면서 걷는 사람만이 더 잘 모을 수 있다.

모로 가는 길은 단점이 아니라 특성 그 자체가 된다. 우회 경험이 많을수록 예측력은 높아지고, 한 번 겪어본 낯섦은 새로운 사용성을 발견하는 직감으로 변한다. 유엑서는 결국 ‘사람이 어떻게 반응할지’를 미세하게 짐작해야 하는 사람이다. 이 직감은 삶의 옆길에서 태어난다.



결국 닿는 자리의 이름


결국 핵심은 단순하다. 유엑서는 기술자이기 전에 사람을 다루는 해석자다. 이 해석은 학교가 주지 않고, 직선 경로가 주지 않는다. 오히려 돌아가는 길, 엉뚱한 경험, 실패와 머뭇거림 속에서 만들어진다. 그래서 모로 가도 유엑서면 충분하다. 그저 이유는 단 하나, 유엑서는 언제나 ‘사람에게 닿는 일’을 선택하는 존재한다. 경로는 달라도 종착지는 같다. 사람들이 왜 그렇게 느끼는지, 어떻게 더 나아질 수 있는지, 어떤 방식이 삶을 조금이라도 덜 아프게 만들 수 있는지 묻는 태도. 그 질문을 품은 한, 어떤 경로로든 결국 그 자리에 도착할 확률이 높다.

돌아서 온 사람의 세계관은 아무래도 다르다. 직선은 효율을 만들지만, 우회는 의미를 만들기 때문이다. 직선은 빠르게 닿지만, 우회는 깊게 닿는다. UX의 본질은 깊이 닿는 쪽에 있다. 누군가의 불편을 진심으로 이해하려면 스스로 불편한 길을 걸어본 사람이 유리하다. 누군가의 감정선을 존중하려면 자기 내면을 들여다본 시간이 필요하다.

그래서 결국 알게 된다. 돌아가는 길은 결코 실패가 아니었다는 것을. 그 길에서 모은 감정의 조각들이야말로 유엑서라는 직업의 핵심이었음을. 모로 가도 결국 유엑서, 이 말은 방향의 승리가 아니라 감각의 진화에 대한 선언이다. 어느 길로 와도 괜찮다. 중요한 건 결국 사람에게 닿는 일이며, 그 자리는 당신을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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