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자는 ‘UX학’이라는 이름을 단 학과명이나 과목명으로 UX가 분과로 존재한다고 말하기도 한다. 실체가 있다면 그걸로 예외가 존재하니 있다고 하는 게 과연 틀린 말도 아닐 것이라고 생각은 한다. 하지만 엄밀히 UX 세상은 마치 우산처럼 생긴 것으로, 이것을 단일 학문(예: 심리학, 경영학)처럼 하나의 ‘학’으로 놓는 것은 아직까진 넌센스다.
이 점에서 혼란을 느끼는 경우가 분명 많겠지만, 이는 오히려 UX라는 분야의 본질과 강점이자 특수성을 보여주는 예일 것이다. UX는 그 자체로 하나의 전공보다는 디자인, 공학, 경영, 인문사회 등 다양한 분야의 지식과 방법론이 융합된 다학제적(interdisciplinary) 성격을 지닌 영역이다.
때문에 UX 석사 과정이라고 해도 결과적으로는 디자인학, 산업공학, 심리학, HCI 등 기존 학문 체계 안에서의 학위가 수여되는 구조를 가진다. 즉, UX라는 이름을 내걸고 있지만 실제로는 해당 대학원의 교육 지향점 혹은 지도교수의 배경에 따라 학위명도 상이하다.
내가 진학한 대학원은 결과적으로 디자인, IT, 경영이 결합된 융합전공으로, 세부전공으로 UX연구실을 선택했지만 학위로만 놓고 보면 MIS(Management Information System)였다. 학위명에는 UX가 직접적으로 언급되어 있지 않다. 아마 다른 곳들도 상황을 비슷할 것이다.
연구실의 성격에 따라 어디는 리서치 중심일 수도 있고, 인터랙션 중심일 수도 있으며, 공학적 구현을 중시하는 곳도 있을 수 있겠다. 심리학 기반의 실험적 UX를 다루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단순히 ‘어느 과에 소속되어 있느냐’보다 ‘어떤 연구실에서 어떤 관점의 UX를 다루고 있느냐’가 훨씬 중요한 판단 기준이 될 수밖에 없다. 예비 석사생들조차도 이러한 상황을 전혀 모르고 임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결과적으로 ‘나는 UX학 석사입니다’라고 말할 수 있다 손 치더라도, 졸업장에는 경영학, 디자인학, 산업공학 등 기존 학문명으로 기재되는 경우가 많을 것이니, 최종 학력에 어떤 학위가 붙는지 궁합을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한편 이러한 학문적 방향성을 고민하는 이에게 꼭 전하고픈 말은, 전공이나 학위명 자체에 너무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것도 있다. 내가 받을 학위가 뭔지 알아야 한다는 것이 곧 궁합이 측면에서 심사숙고의 대상이란 말과는 괴리가 있기 때문이다. 실제 UX 분야의 취업이나 커리어 패스를 설계하는 데 있어, ‘UX 전공자’로 인정받는 데 필요한 것은 전공 명칭보다는 단연 직접적인 경험과 프로젝트 수행 능력, 그리고 사고방식이다.
UX는 실용적이며 문제해결 중심의 분야이기 때문에, 어떤 도메인에서 문제를 정의하고 해결해 본 경험이 있는지가 가장 강력한 증거가 된다. 결국 UX를 잘하려면 ‘사람’을 관찰하고 이해하며, 그에 맞는 서비스를 설계할 수 있는 감각과 훈련이 필요하고, 이는 어떤 전공이냐와는 별개로 만들어질 수 있다. 학교에서 무엇을 전공했느냐보다 어떤 프로젝트를 했고, 어떤 사고방식을 길러왔는지가 나를 뽑을 이들의 판단에는 더 중요하게 작용한다.
따라서 UX 대학원을 고려할 때는 학위명뿐만 아니라 연구실의 성격과 지도교수의 배경, 그리고 해당 랩이 어떤 도메인에 강점을 갖고 있는지를 먼저 살펴보는 것이 현명하다. 예를 들어, 디지털 기기 인터페이스에 강한 연구실과, 사회적 맥락에서의 사용자 경험을 중시하는 연구실은 선호하는 연구 방법이나 접근 방식이 다를 수밖에 없다. 이 차이는 곧 커리큘럼, 프로젝트 주제, 포트폴리오 구성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또한 국내 UX 석박사 커뮤니티는 비교적 좁은 편이고, 연구실 단위로의 평판이 실제 취업 시 네트워크로 연결되기도 한다. HCI 분야에서는 어느 랩 출신인지, 어떤 학회에서 어떤 도메인의 논문을 다뤘는지가 더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마치 꼬리표처럼 이러한 연구 이력은 계속 나를 따라올 수밖에 없기에 연구실 선택은 신중해야 한다. 때문에 학교에서도 전공을 전환할 기회를 제한적이지만 주는 등의 제도가 있는 것이다. ‘학문’보다 ‘실천’이 중요한 분야이지만, 석사부터는 그 실천의 기반이 되는 연구 경험과 인맥도 무시할 수는 없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을 위해 꼭 필요한 것은 연구실의 현재와 미래다. 과거의 정보는 참고가 되지 않아야 옳다. 내가 졸업할 시점 받을 학위와 나의 시너지가 배출될 사회에서 어떻게 해석하고 받아들일지에 가장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 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오직 발품 외엔 알 길이 없다. 따라서 대학원 선택 시 가장 중요한 것은 단연 정보력이다.
그리고 UX 대학원을 졸업했다고 해서 현업 UX 실무에서 환대를 받으리란 생각은 환상이다. 실무 UX는 문제 해결의 속도가 중요하고, 조직 내 커뮤니케이션 능력과 실행력이 요구된다. 반면 대학원 UX는 연구 설계, 사용자 인터뷰, 데이터 분석 등 보다 탐색적이고 느린 과정에 익숙해져야 하기에 이 둘은 결이 꽤 다르다.
나의 경우에도 풀타임으로 석사과정을 이수하며 많은 리서치를 수행했고, 이 과정이 실무에서는 곧장 적용되기보다는 사고의 틀을 넓혀주는 데 큰 도움을 주었다. 취업을 열어준 기회는 산학 프로젝트가 주요했고, 이를 통해 준임직원이 될 수 있으면서 나의 취업 가치가 동반상승하게 되었다. 그러니 대학원은 날개가 아니다. 이를 통해 얻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 연구 중심인지 실무 역량 확보인지 명확히 한 후에 진학 여부를 결정하는 것이 필요한 이유다.
정리하자면, UX는 하나의 단일 학문이라기보다 융합형 실용 분야로, 대학원에서도 UX학이라는 명칭보다는 기존 전공 틀 안에서 UX 관련 연구를 수행하는 방식이 일반적이다. 결국 중요한 것은 학위의 명칭이 아니라 어떤 맥락에서 어떤 경험을 쌓았느냐이며, 본인의 커리어 방향에 맞는 연구실, 프로젝트, 멘토를 찾는 것이다. 궁극적으로 UX라는 분야는 경계를 명확히 구분하는 데에 익숙하지 않다. 오히려 그 모호함을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자신만의 관점과 도메인을 설정해 가는 것이 이 분야에서 성장하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