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많이 만들수록 더 잘 살고 있다는 착각
우리는 늘 ‘얼마나 했는가’로 하루를 정산한다. 오늘 몇 장을 썼는지, 몇 개의 안건을 처리했는지, 몇 시간이나 일했는지. 체크리스트가 길어질수록 스스로에게 면죄부를 준다. 바빴으니까, 성실했으니까, 최선을 다했으니까. 그런데 묘하게도 그렇게 바쁜 날일수록 삶은 잘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다. 무언가를 많이 만들었는데도, 정작 남은 것은 피로와 허탈감뿐이다.
그때서야 눈치챈다. 나는 무언가를 생산하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단지 소모하고 있었음을. 에너지를, 시간을, 주의를. 생산은 있었지만 생산성은 없었다는 사실을.
생산은 흔적이다. 파일 하나, 문서 하나, 결과물 하나.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고, 보고서에 적히는 것들이다. 반면 생산성은 방향이다. 내가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지, 이 일이 다음 일을 어떻게 바꿔놓는지, 이 선택이 미래의 나를 조금이라도 가볍게 만드는지에 대한 감각이다.
그래서 생산은 늘 즉각적인 보상을 준다. 체크 표시 하나, 완료 알림 하나, 칭찬 한 마디. 하지만 생산성은 보상이 늦다. 때로는 아예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 대신 생산성은 누적된다. 눈에 띄지 않게, 조용히, 그러나 되돌릴 수 없게 삶의 궤도를 바꾼다.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는 보상이 빠른 쪽을 더 열심히 한다. 그래서 더 많이 만들수록, 더 바쁠수록, 오히려 잘못된 방향으로 더 빠르게 가속하는 일이 벌어진다.
바쁘다는 말은 언제부턴가 자기소개처럼 쓰인다. “요즘 너무 바빠요.” 그 말에는 은근한 자부심이 섞여 있다. 중요한 사람이 된 것 같은 느낌, 필요한 사람이 된 것 같은 착각. 하지만 조금만 냉정하게 보면 바쁨은 대부분 설계 실패의 증상이다. 일이 많아서가 아니라, 일이 엉켜 있어서 바쁘다. 우선순위가 없어서, 기준이 없어서, 거절을 못 해서 바쁘다.
생산성의 관점에서 보면 바쁨은 거의 항상 위험 신호다. 중요한 일을 하고 있기 때문에 바쁜 경우는 생각보다 드물다. 대부분은 중요하지 않은 일을 너무 성실하게 하고 있기 때문에 바쁘다.
생산성을 높이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더 열심히 하는 것이 아니라, 어쩌면 덜 하는 것이다. 정확히 말하면, 덜 만들고 덜 움직이고 덜 반응해도 될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다.
이건 근성의 문제가 아니라 용기의 문제다. 공적으론 이 회의를 안 가도 되는가, 이 요청을 거절해도 되는가, 이 아이디어를 지금 안 해도 되는가는 물론 사적 영역까지. 생산성은 언제나 선택의 흔적이다. 하지 않은 것들의 목록이 곧 그 사람의 생산성을 증명한다.
그래서 생산성 높은 사람들의 일정표는 이상할 정도로 비어 있다. 그리고 그 빈 공간에서 진짜 중요한 일들이 자란다.
사람들은 생산성을 의지력의 문제로 오해한다. 더 집중해야지, 더 부지런해져야지, 더 아껴 써야지. 하지만 생산성은 거의 항상 시스템의 문제다. 무엇을 측정하는지, 무엇을 보상하는지, 무엇을 당연하게 여기는지에 따라 생산성은 자동으로 결정된다.
‘빨리’가 보상되는 구조에서는 언제나 졸속이 양산된다. ‘많이’가 보상되는 구조에서는 언제나 덜 떨어진 결과물이 섞인다. 반대로 ‘다음 단계를 열어주는가’가 보상되는 구조에서는 사람들의 행동 자체가 달라진다.
그래서 개인의 생산성을 높이고 싶다면 먼저 환경부터 바꿔야 한다. 알아도 안 해서 문제지만. 할 일 목록이 아니라 하지 않을 일 목록을 만들고, 성과 지표가 아니라 방향 지표를 세우고, 바쁨을 칭찬하는 문화부터 끊어야 한다. 나도 올해는 좀 그러려고 한다.
하루가 끝날 때 묻는 질문을 바꿔야 한다. “오늘 나는 무엇을 만들었는가?”가 아니라 “오늘 나는 무엇을 가능하게 했는가?”라고.
이 문서가 내일의 나를 덜 바쁘게 만드는가. 이 결정이 다음 선택을 더 단순하게 만드는가. 이 거절이 더 큰 예스를 위한 공간을 만들었는가. 이 질문들에 ‘그렇다’고 답할 수 있다면, 그날은 생산적인 날이다. 아무것도 만들지 않았어도 말이다.
생산은 오늘을 채운다. 생산성은 내일을 연다. 우리는 그동안 오늘을 채우는 데 너무 많은 에너지를 써왔다. 그래서 내일은 늘 빚진 얼굴로 맞이했다.
이제는 반대로 가야 한다. 오늘을 조금 비워서 내일을 가볍게 만드는 쪽으로. 더 많이 만드는 사람이 아니라, 더 멀리 가는 사람이 되는 쪽으로.
생산보다는 생산성. 그건 일하는 방식의 문제가 아니라, 사는 방식의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