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일요] 유엑서로 일하고 싶어요 #051

by UX민수 ㅡ 변민수


UX 디자이너(d/D)로 입사했으나, 회사의 조직 상황이나 인력 배치 등으로 인해 점점 시각디자인 업무의 비중이 커지고, 급기야 UX와는 거리가 먼 일만 하게 될까 봐 우려된다는 고민을 가진 주니어들이 실제로 많다. 본인의 노력으로 극복 가능한 부분도 있겠지만, 환경의 영향이 더 크게 다가오다 보니 걱정이 커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조직 구조의 현실과 기대의 간극


경력이 쌓이면 쌓일수록 느끼는 바, 기업 내에서 UX라는 역할이 현실에서 이상적으로 구현되기란 정말 쉽지 않다. 특히 대기업의 경우 조직이 크다 보니 업무는 필연적으로 세분화되고, 개인에게 주어지는 역할 역시 좁아질 수밖에 없다. 이는 특정 회사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적인 한계에 가깝다.


그 결과 ‘UX’라는 타이틀과 달리 실제 업무는 99% UI 설계이거나, 때로는 시각디자인 성격의 작업으로 채워지는 경우도 적지 않다. 중요한 것은 개념에 비해 실제 역할이 상당히 축소된다는 점이다. 사용자 흐름이나 경험 설계와 같은 교과서적 UX는 일부 팀이나 리더 레벨에서만 다뤄지고, 실무자는 이미 정의된 방향을 구체화하는 실행자의 위치에 머무는 경우가 많다. 이 지점에서 이상과 현실의 괴리를 체감하며 실망을 느끼는 이들도 분명 존재한다.



시각디자인의 가치와 선택의 문제


특히 UXer임에도 불구하고 시각디자인 업무만 점점 늘어난다면, 이른바 물경력에 대한 불안이 고개를 드는 것은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이때부터는 단순히 성실함이나 인내의 문제가 아니라, 자신의 커리어를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에 대한 선택의 문제로 넘어가게 된다.


내 경우를 예로 들자면, 시각디자인을 전공했지만 졸업 후 회사에서 그래픽 디자이너로 일해본 적은 없다. 비교적 이른 시점에 방향을 과감하게 틀었다. 처음에는 분명 쉽지 않았고, 주변의 시선 역시 곱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가고자 하는 길이 분명하다는 인식이 있었기에 그 불편함을 감수할 수밖에 없었다. 돌이켜보면 시각디자인 전공자로서 스스로 안전한 선택지를 내려놓은 셈이었다.


만약 본인이 사용자 흐름, 인터뷰, 서비스 설계와 같은 리서치 중심의 UX를 지향하는데 조직에서는 지속적으로 GUI나 비주얼 중심의 역할만 요구한다면, 그것은 개인 역량의 문제가 아니라 경력 방향성의 이탈일 가능성이 크다. 결국 핵심은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이 ‘나중에 되고 싶은 UXer의 모습’과 실제로 연결되고 있는가에 있다.



경력 설계와 전략적 포지셔닝


시각디자인 위주의 업무가 고착화되고 있다는 신호를 느낀다면, 우선은 조직 내부에서 균형을 만들어보려는 시도를 해볼 수 있다. 사용자 조사에 참여하거나, 기획자와의 협업 과정에서 흐름 정의에 의견을 보태는 식이다. 다만 이러한 시도에도 불구하고 UX 자체가 조직적으로 허용되지 않는 구조라면, 장기적으로는 이동을 고려하는 것 역시 충분히 전략적인 판단이다.


UX는 실무 중심의 분야이기 때문에 경험이 곧 경력이 된다. 한 회사에 오래 머무는 것보다, 내가 키우고 싶은 역량을 실제로 쌓을 수 있는 환경을 찾아가는 것이 더 합리적인 선택일 수도 있다. 이직은 도피가 아니라, 방향성을 재정렬하는 하나의 수단이 될 수 있다.



시각 중심과 사용성 중심의 긴장 관계


시각디자인 역량은 분명 프로덕트 디자이너로서 강력한 자산이다. 프로토타입 제작이나 마이크로 인터랙션 설계처럼, 시각적 완성도가 곧 경험의 질로 이어지는 영역에서는 특히 그렇다. Figma 등 툴을 능숙하게 다루는 능력이 실무에서 즉각적인 신뢰로 연결되는 경우도 많다.


다만 동시에 이 강점은 양날의 검이 될 수 있다. 시각적으로 일을 잘한다는 평가는 빠르게 고정관념으로 굳어지기 쉽고, 그 인식은 조직 내에서 역할을 확장하기보다는 오히려 특정 역할에 묶어두는 중력처럼 작용하기도 한다. ‘잘하니까 계속 맡긴다’는 논리는 개인의 성장 방향과는 무관하게 작동할 수 있다. 시각디자인이 장점이 되는 순간, 그것이 나를 다른 영역으로부터 멀어지게 만드는 힘으로 전환될 수 있다는 점을 인지할 필요가 있다.



커리어의 방향성과 자기 인식


결국 모든 판단의 출발점은 ‘나는 어떤 UXer가 되고 싶은가’라는 질문이다. 시각디자인과 UI 설계 자체에 즐거움을 느끼고, 그것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이 스스로에게 자연스럽게 느껴진다면 지금의 역할 역시 충분히 의미 있는 선택일 수 있다. 이 경우 시각적 완성도는 단순한 결과물이 아니라, 경험의 질을 끌어올리는 핵심 역량으로 작동한다.


반대로 리서치 기반의 인사이트 도출이나 사용자 전략 수립, 문제 정의 과정에 더 큰 흥미와 동기를 느낀다면 현재의 업무는 장기적으로 경력 방향과 어긋날 가능성이 크다. 이럴 때는 막연한 불안에 머무르기보다 2년 뒤의 나를 구체적으로 떠올려보고, 그 시점의 내가 지금 무엇을 하지 않은 것을 가장 후회할지를 스스로에게 질문해 보는 것이 필요하다. 그 질문이야말로 다음 선택을 위한 가장 현실적인 기준이 된다.




회사에서 맡은 일이 점점 UX와 멀어지고 있다는 위기감이 든다면, 그것은 단순한 불만이 아니라 변화의 신호일 수 있다. 조직을 탓하거나 자신을 자책하기보다는, 지금의 경험이 어떤 길로 이어질 수 있는지를 냉정하게 해석해 보는 태도가 필요하다.


시각디자인은 분명 강력한 무기이지만, 동시에 방향을 잘못 잡으면 궤도를 고정시켜 버리는 중력이 되기도 한다. 그 양면성을 인식하고 주도적으로 다루는 순간, 비로소 시각디자인은 프로덕트 디자이너로서의 성장을 돕는 진짜 자산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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