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발한 아이디어와 감각은 분명 UX 업무에서 의미 있는 요소다. 그러나 더 큰 틀에서 보았을 때 UXer에게 핵심이 되는 역량은 감각보다 논리라고 생각한다. UX는 단순히 보기 좋은 결과물을 만드는 직무가 아니라, 복잡한 제약 속에서 최적의 답을 도출하는 문제 해결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감각은 분명 필요하다. 사용자 입장에서 불편함을 직관적으로 감지하고, 인터페이스의 어색함을 빠르게 인지하는 능력은 업무 수행에 도움이 된다. 특히 UI와 밀접한 역할을 수행하는 조직에서는 기본적인 시각적 판단력과 디자인(d) 이해도가 요구된다. 협업 과정에서도 GUI 디자이너와 개발자의 언어를 이해하는 감각은 유리하게 작용한다.
그러나 감각은 개인의 경험과 취향에 기반하는 경우가 많다. 소위 그래픽 디자이너들 사이에서 평균적으로 이게 옳다 저게 별로다 하는 잣대도 전체집합의 관점에서 보면 편향이 섞여 있는 것이다. (물론 혹자는 이런 류의 발언 자체를 불쾌하게 들을 수도 있을 것 같다.)
“이게 더 좋아 보인다”라는 판단은 설득의 근거가 되기 어렵다. 특히 조직에서는 의사결정이 감각이 아니라 설명 가능한 근거 위에서 이루어지곤 한다. 감각만으로는 이해관계자를 설득하기 어렵고, 반복 가능한 기준을 만들기도 어렵다. 문제가 생겼을 경우 방어력이 거의 없다는 것도 맹점이다.
UX는 다양한 제약 조건 속에서 작동한다. 일정, 리소스, 기술적 한계, 비즈니스 목표 등 수많은 변수들이 얽혀 있다. 이 안에서 무엇을 우선하고 무엇을 포기할 것인지 판단하려면 구조화된 사고와 논리가 필요하다. 문제를 정의하고, 가설을 세우고, 근거를 제시하며, 방향성을 설명하는 능력이 핵심이다.
쉽게 말하면, 감각적으로 더 우월하고 미감 면에서도 탁월한 결과물도 경우에 따라서는 채택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 경우를 디자이너(d)로서 무조건 슬퍼하거나 노여워해서는 협업은 고스란히 스트레스 덩이리만 될 뿐이다.
그래서 규모가 있는 조직일수록 '왜'를 설명하는 논리의 중요성은 더욱 커진다. 하나의 화면이나 기능 변경도 여러 부서와 협의해야 하고, 그 과정에서 설득의 과정은 필수적이다. 데이터, 사용자 맥락, 비즈니스 목표와 연결 지어 설명하지 못하면 좋은 아이디어도 채택되기 어렵다.
경험적으로 UX는 감각의 경쟁이 아니라, 논리의 설득 싸움에 더 가깝다. 이것은 감각의 비하나 무시가 아니다.
현업에서는 교과서적인 방법론을 그대로 적용하기 어려운 경우도 정말 많다. 퍼소나나 저니맵을 형식적으로 만드는 것도 물론 중요하나, 그런 틀을 통해 어떤 사고를 할 수 있는지가 더 중요하다. 결국 방법론도 논리를 정리하기 위한 도구에 불과하다. 방법론 그 자체를 잘 정리해 낸 성취감에 빠지지 말아야 한다.
기업이 경력자를 선호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UX는 교육만으로 완성되기 어려운 영역이며, 실제 상황에서 문제를 구조화하고 합리적인 판단을 내려본 경험이 중요하다. 위에서 언급한 좌절 포인트에 대한 현실인식도 이러한 경험을 통해 해소될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즉, 실망도 해본 사람이어야 인정을 받는 셈이다. 논리가 더 우월하다는 의미보다는 마치 영어처럼, 논리가 공용어인 세상이 실무라고 이해한다면 이해가 편하지 않을까 싶다.
나는 UXer에게 감각이 불필요하다고 보지 않다. 다만 감각은 출발점에 가깝고, 논리는 방향을 결정하는 나침반에 가깝다. 무엇이 다른지, 언제 어떤 걸 더 내세워야 하는지 이런 감각은 필요하다. 또한 이러한 감각을 이해관계를 위해 논리로써 설명해 낼 수 있을 때 비로소 조직 안에서 힘을 갖는다.
UX는 번뜩임으로 승부하는 직무라기보다, 제약 속에서 최적해를 찾는 직무다. 결국 더 중요한 것은 얼마나 기발한 아이디어를 냈는가가 아니라, 왜 그 판단이 타당한지 끝까지 설명할 수 있는가에 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