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용자 조사와 프로토타이핑을 통한 검증 업무를 두고, 그것이 UXer의 예술성과 주관성을 지우는 과정처럼 느껴진다는 관점은 회사 생활을 해본 이라면 충분히 공감할 지점이 있으리라 생각한다.
특히 창작을 출발점으로 디자인(d)을 이해해 온 사람이라면, 끊임없이 가설을 검증하고 데이터를 근거로 수정하는 과정이 스스로의 감각을 부정하는 일처럼 받아들여질 수도 있다. 그러나 내가 지금껏 경험하고 이해해 온 UX는 그와는 조금 다른 결을 가진 분야였다.
UX는 교과서적으로는 사용자 경험을 설계하는 일로 정의되지만, 실제 현업에서는 조직 구조와 역할에 따라 그 범위와 깊이가 매우 다르게 설정되는 영역이다. 어떤 조직에서는 리서치가 중심이 되고, 어떤 조직에서는 UI에 가까운 실무가 중심이 되며, 또 어떤 곳에서는 방법론을 거의 사용하지 않는 구조이기도 하다. 이처럼 UX는 단일한 방식으로 규정되기 어려운 실용 분야이다.
따라서 UX를 순수 예술의 연장선에서 바라보면 필연적으로 충돌이 발생한다. UX는 창작자의 주관을 극대화하는 분야라기보다, 조직 안에서 요구되는 역할에 맞추어 끊임없이 조정되고 재해석되는 분야이기 때문이다. 사용자 조사와 검증은 예술성을 제거하기 위한 절차라기보다, 애초에 출발점이 다른 영역에서 작동하는 기본 전제에 가깝다.
사용자 조사와 프로토타이핑은 자신의 생각을 증명하기 위한 수단이라기보다, 자신의 가설을 시험대 위에 올려놓는 과정이다. UX는 교육만으로 완성되기 어려운 실용 분야이며, 현업 감각은 실제 업무 환경에서 길러진다. 책에서 배운 방법론이나 개인의 감각만으로는 사용자와 시장, 그리고 조직을 설득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조사는 UXer의 주관을 부정하기 위한 절차가 아니다. 오히려 그 주관이 어디까지 유효한지를 확인하는 과정이다. 프로토타이핑 또한 완성된 결과물을 선언하는 단계가 아니라, 빠르게 시도하고 수정하는 반복 구조에 가깝다. 이 과정은 창작의 종결이 아니라 창작을 다듬고 구체화하는 단계이다. 주관을 지우는 것이 아니라, 근거를 더하는 과정이다.
대기업과 같이 업무가 세분화된 조직에서는 개인의 예술적 표현이 전면에 드러날 기회가 많지 않은 구조이다. 실무자는 자신의 영역에 집중하고, 전체 경험을 통합하는 역할은 리더 레벨에서 수행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사용자 조사와 검증은 감성을 드러내는 무대라기보다 협업을 위한 공통 언어로 기능한다.
작은 조직에서 전 과정을 경험해 보는 것이 의미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기획부터 실행, 검증까지 다채롭게 경험해 보아야 UX의 본질을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검증은 창의성을 억누르는 장치가 아니라, 다양한 이해관계자 사이에서 합의를 형성하는 과정이라고 이해해 보자.
순수 예술이 창작자의 내면을 중심에 둔다면, UX는 사용자와 조직, 기술과 비즈니스 사이에서 균형을 설계하는 영역이다. 사용자를 조사하고 프로토타입으로 검증하는 일은 예술성을 지우는 행위가 아니라, 개인의 감각을 사회적 맥락 속에서 조율하는 과정이다.
UXer로서 선택한다는 것은 자신의 감각을 끝까지 밀어붙이는 길이 아니라, 끊임없이 시험하고 수정하는 일이다. 그 반복은 때로 답답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그 과정을 거쳐야만 설득력 있는 결과물이 만들어진다. 예술성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현실 속에서 작동 가능한 형태로 재구성하는 작업이다.
UX는 나를 드러내는 일이 아니라, 나를 매개로 타인과 연결되는 일을 하는 분야이다. 사용자 조사와 검증은 나를 지우는 과정이라기보다, 나의 감각을 더 넓은 맥락 안으로 확장하는 과정이다. 혼자만의 확신에 머무르지 않고, 사용자와 조직, 시장이라는 현실 속에서 끊임없이 조율해 가는 일. 그것이 내가 경험한 UX의 본질이다. 예술성과 주관성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더 단단한 형태로 재정의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