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이야기를 꺼내면 종종 오해가 생길까 우려된다. 마치 이런 구조를 정당화하거나 옹호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여기서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어떤 방식이 옳고 그른지를 판단하자는 것이 아니다. 실제 업계에는 서로 다른 방식의 일 구조가 동시에 존재한다는 사실, 그리고 UXer에게 필요한 것은 그 사이를 이해하는 균형감이라는 점이다.
디자인(d/D)을 배우기 시작한 많은 사람들이 한 번쯤 이런 질문을 한다.
나는 어디까지 할 줄 알아야 하는가
화면을 설계하는 능력만으로 충분한지, 아니면 기획 이해나 개발 지식까지 갖추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이다. 특히 작은 회사나 초기 단계의 조직을 바라보고 있다면 이 질문은 더욱 현실적인 문제가 된다. 채용 공고를 보면 ‘웹디자이너’라는 직무 아래에 서비스 기획 이해, 퍼블리싱, 때로는 간단한 구현 능력까지 요구하는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초기 단계의 조직이나 규모가 작은 팀에서는 자연스럽게 역할의 경계가 넓어진다. 이유는 비교적 단순하다. 제한된 인력 안에서 서비스를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규모가 큰 조직에서는 역할이 비교적 명확하게 나뉜다. 서비스 기획자가 사용자 흐름과 기능 구조를 설계하고, UXer는 경험 구조와 인터페이스를 설계하며, 퍼블리셔와 개발자가 이를 구현한다. 각 역할은 전문성을 중심으로 분화되어 있다.
하지만 작은 조직에서는 이런 구조를 그대로 유지하기 어렵다. 인력이 제한적이기 때문에 한 사람이 여러 영역을 이해하고 연결하는 방식으로 일이 돌아가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UXer에게도 기획 맥락을 이해하는 능력이나 퍼블리싱 지식 같은 역량이 함께 요구되곤 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것이 반드시 이상적인 구조라는 뜻은 아니라는 점이다. 다만 조직의 규모와 단계에 따라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운영 방식일 뿐이다.
문제는 많은 UXer들이 특정한 환경에서만 일을 경험한 상태로 업계를 바라본다는 점이다.
작은 조직에서만 일해 본 경우에는 역할이 명확하게 분리된 협업 구조가 쉽게 그려지지 않는다. 서비스 기획, UX 설계, UI 디자인(D), GUI, 퍼블리싱, 개발이 어떤 방식으로 나뉘고 협력하는지 감을 잡기 어려운 경우도 있다.
반대로 큰 조직의 분업 구조에 익숙한 경우에는 역할 경계가 유연한 환경이 낯설게 느껴지기도 한다. 기획과 디자인(D)의 경계가 겹치거나, UXer가 구현 단계까지 관여하는 구조를 보면 비효율적으로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현실의 업계는 한 가지 방식으로만 움직이지 않는다. 서비스의 규모, 조직의 성장 단계, 팀 구성에 따라 일하는 방식은 계속 달라진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특정한 구조를 기준으로 삼아 다른 환경을 평가하는 일이 아니다. UXer에게 더 중요한 것은 각 조직의 맥락 속에서 역할이 어떻게 형성되는지를 이해하는 시각이다. 어떤 조직에서는 넓은 역할 범위 속에서 문제 해결 능력이 요구될 수 있다. 반대로 어떤 조직에서는 특정 영역에 대한 깊은 전문성이 중요해질 수도 있다. 이른바 제너럴리스트와 스페셜리스트다.
이 두 방식은 서로 우열의 문제가 아니다. 조직이 처한 상황과 서비스의 단계에 따라 선택되는 서로 다른 협업 구조에 가깝다. UXer의 커리어 역시 이런 다양한 환경 속에서 만들어진다. 어떤 시기에는 역할의 범위가 넓어지고, 어떤 시기에는 전문성이 더 깊어지기도 한다. 중요한 것은 이 경험들을 하나의 기준으로 단순화하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스스로에게 이런 질문을 던져보면 좋겠다. 지금 내가 일하고 있는 환경에서는 왜 이런 방식으로 역할이 구성되어 있을까. 이 질문을 이해하기 시작하면 역할이 넓은 조직도, 역할이 세분화된 조직도 조금 더 입체적으로 보이기 시작한다.
그리고 UXer에게 남는 중요한 기준은 하나이다. 어떤 환경에 있더라도 그 구조의 맥락을 이해하고 자신의 역할을 해석할 수 있는가. 그 균형감을 갖추는 순간, 조직의 방식이 달라지더라도 커리어의 방향은 쉽게 흔들리지 않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