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복잡도의 끝판왕

자동차 UX에 관심있는 이들에게

by UX민수 ㅡ 변민수


복잡성의 총체로서의 자동차 산업


자동차 산업은 그 자체로 제조업의 집약체입니다. 기계, 전기, 전자, 통신, 화학, 심지어 IT 소프트웨어 기술까지 망라되어 있어, 단일 제품임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산업군의 복합적인 협업이 요구됩니다. 여기에 법규, 인증, 안전성 등 생명과 직결된 요소가 강하게 작용하기 때문에, 제품 설계나 검증 과정이 단순할 수가 없습니다.


이러한 구조는 UXer에게도 매우 특별한 조건을 부여합니다. 단순히 눈에 보이는 UI나 사용자 플로우를 설계하는 차원을 넘어서, 물리적 환경과 디지털 인터페이스가 함께 작동하는 복합적인 사용자 경험을 설계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UX 자체가 총체성을 요하는 분야인만큼 자동차는 그 총체성이 드러나는 아주 전형적인 도메인입니다.



산업 구조에서 비롯되는 UX 역할의 복잡도


자동차 산업은 하나의 기업이 모든 것을 직접 만드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협력사와의 연계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다시 말해, 외관은 물론 하나의 UI 화면이 만들어지기까지 수십 개 조직과 수백 명의 담당자가 관여하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UX 담당자는 단순한 디자이너(d/D)의 역할을 넘어, 다양한 이해관계자들과의 소통을 주도하고 중재하는 조정자의 역할까지 수행하게 됩니다.


이러한 특성으로 인해 디자인(d) 감각보다 ‘협업을 설계하는 역량’이 더 중요하게 작동하는 경우가 많고, 같은 맥락에서 커뮤니케이션 방식이나 결과물에 대한 표현 방법도 도메인 특성에 맞춰 조정되어야 합니다. 예를 들어, 감각적인 프로토타입보다는 기능 명세와 검증이 가능한 시나리오 중심의 문서 작업이 더 중요한 경우가 많습니다.


가장 큰 특징은 모바일 분야에서와 같은 패턴이 그다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제각기 다른 사이즈의 화면으로 인해 모바일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한 파편화 현상이 존재합니다. 그러다보니 Hand-held와 같은 특성이 녹아든 어떤 UI 패턴이 성립되기 힘들고 수렴되지도 못하는 상황입니다. 이를 긍정하자면 그만큼 자유도가 높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사용자 안전성과 UX의 긴장 관계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자동차 UX에서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자유도’가 극도로 제한된다는 점입니다.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사용자 경험이 곧 사용자 안전과 직결되기 때문입니다.


버튼 하나의 위치, 텍스트 한 줄의 표현 방식조차도 주행 중 운전자의 행동에 영향을 줄 수 있고, 잘못 설계된 경우 사고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실제 차량이나 고가의 시뮬레이터를 활용한 검증도 이뤄지며, 법적 인증 과정을 통과해야 하는 경우가 상당히 빈번합니다. 때문에 UX 담당자는 자신이 설계한 요소가 사용자 행동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를 항상 고민해야 하고, 직관이나 감각보다는 근거에 기반한 설계가 요구됩니다.


어떤 IT 디바이스도 목숨과 직결성이 발생하는 경우는 잘 없습니다. 모빌리티 도메인만의 고유성까지는 아니겠지만 아주 상징적이로 특징적인 부분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너무 팬시한 디자인(d)은 오히려 지양해야 하는 부분이 되기도 합니다. 자연스레 모바일 등 타 도메인에 비해서 무언가 느리고 경직되게 느껴질 수밖에 없습니다. 개인의 호불호에 따라서는 이러한 업계의 캐릭터 때문에 기피하게 되는 도메인이 되곤 합니다.



스마트 디바이스로서의 자동차와 UX 진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기차, 자율주행차, 커넥티드카 등의 개념이 보편화되면서, 자동차는 이제 이동 수단을 넘어 하나의 스마트 디바이스로 재정의되고 있습니다. 특히 HMI(Human-Machine Interface)는 스마트폰을 잇는 차세대 사용자 접점으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기존의 스마트 디바이스 UX 경험이 자동차 산업에 그대로 투영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어, 스마트폰처럼 직관적이고 반응성 높은 UI가 기대되지만, 자동차는 그 특성상 물리적 제약과 안전 기준을 무시할 수 없습니다. 이로 인해 UXer는 두 개의 세계를 동시에 이해하고 조율해야 합니다. 하이엔드 감성과 실시간성, 안전성과 법규, 감성적 만족과 기능적 완성도 등 전혀 다른 가치들이 충돌하는 지점에서 UX를 설계하게 되는 셈입니다. 이러한 난이도가 누군가에게는 도전의식을 자극하는 재미로, 누군가에게는 복잡한 일을 소화해야 하는 난제로 다가갈 것입니다.



진입장벽과 직무 내성의 현실


이러한 구조적 특성들로 인해 자동차 UX는 진입장벽이 매우 높은 도메인입니다. 단순히 포트폴리오만 잘 만든다고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아니며, 설계 경험을 축적하고 도메인 이해도를 높이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립니다. 당연히 신입이나 일부 경력자들에게서 조차도 이러한 도메인 지식에 대한 큰 기대를 하지 않는 업계 특성이 있습니다.


도메인 자체의 러닝 커브가 높고, 업무 강도와 피드백 루프가 느린 편이기 때문에 빠르게 성과를 내기 어렵고, 이로 인해 내성과 인내심이 필수적인 직무로 여겨지기도 합니다. 특히 타 도메인에서 넘어오는 이들에게는 업무 스타일이나 기대 수준의 차이에서 오는 이질감이 클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과정을 지나면 반대로 어떤 산업에서도 쉽게 흔들리지 않는 UX 역량을 갖출 수 있다는 점에서, ‘극복 이후’의 성장은 매우 크고 견고하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자동차 UX가 드러내는 직무 본질


결과적으로 자동차 UX는 단순히 ‘디자인(d/D)을 잘하는 사람’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복잡한 구조 안에서 문제를 정의하고, 적절한 해결 방식을 찾아가는 ‘문제 해결자’로서의 UX를 요구합니다. 다양한 이해관계자와 협업하고, 비즈니스와 기술의 언어를 동시에 이해하며, 감성과 논리를 오가야 하는 업무입니다.


스마트폰 UX의 논리가 단순화와 직관에 집중되어 있다면, 자동차 UX는 적층성과 조정력, 내구성과 안정성에 더 초점이 맞춰져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UX에 대해 갖고 있는 가치관 자체를 다시 점검하게 되는 계기를 제공해주며, UX라는 직무의 실체를 뚜렷하게 체험해볼 수 있는 도메인이라 생각합니다. 쉽게 말해, UX 버블이 꺼지면 꺼질수록 자동차 UX는 더 선명해지는 분야입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