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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X는 일종의 ‘맥거핀’이다

UX라는 손가락과 그 끝의 HCI

by UX민수 ㅡ 변민수

UX에 이입한 맥거핀 개념


사람들은 그것을 찾기 위해 목숨을 걸고, 조직은 그것을 쫓으며, 관객은 그것이 무엇인지 궁금해한다. 하지만 끝내 정체는 밝혀지지 않는다. 이야기 속 인물들의 행동을 이끌고, 사건을 촉발시키는 도화선이지만, 정작 그것 자체는 아무 의미가 없을 수도 있다. 영화감독 알프레드 히치콕이 자주 사용한 개념인 ‘맥거핀(MacGuffin)’은 바로 그런 존재이다.


히치콕 영화에서 맥거핀은 이야기의 중심축처럼 등장하지만, 실제로는 줄거리를 전개하기 위한 장치에 불과하다. 예를 들어, 주인공이 목숨 걸고 추적하는 가방이 있다면, 그 안에 무엇이 들었는지는 끝내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그 가방이 이야기의 원동력이 되고, 갈등과 충돌을 불러일으키며 관객의 몰입을 이끈다는 점이다. 맥거핀은 비어 있지만 강력한 기표이며, 실체보다 ‘기능’으로 작동하는 장치이다.


나는 UX라는 개념 역시 이 맥거핀과 닮아 있다고 느낀다. UX는 기업과 조직에서 전략의 중심 개념으로 자주 언급되며, 다양한 직무의 타이틀로 붙는다. 제품의 경쟁력을 설명할 때도, 포트폴리오를 만들 때도, 우리는 습관처럼 ‘사용자 경험’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정작 실무로 들어가 보면, 그 UX는 사람마다 조직마다 전혀 다르게 해석되며, 어떤 경우에는 그 실체조차 명확하지 않다. 이처럼 무언가 굉장히 중요하고 있어 보이지만,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설명하기 어려운 UX의 성격이야말로, 내가 ‘UX는 일종의 맥거핀이다’라고 표현한 이유이다.


이 표현은 UX라는 직무나 개념을 폄하하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UX가 단일한 정의로 묶이기 힘들 정도로 복잡하고 다층적인 영역이라는 것을 드러내고자 한 말이다. 겉으로는 추상적이지만, 그 모호함 속에서 조직을 움직이고 사람을 연결하며, 결국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이 역할이야말로 UX의 진짜 힘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었다.



조직 안에서의 UX 활용 방식


내가 몸담고 있는 조직에서도 UX는 통일된 정의보다는 조직의 구조와 맥락에 따라 다양한 방식으로 작동하는 개념이다. 과거 모바일 UX를 담당할 때는 사용자 플로우를 구성하고 개발과 GUI 담당자 사이에서 여러 조율을 하는 역할이 주를 이루었다. 하지만 자동차 전장 UX 분야로 옮기고 보니, 비슷한 듯 달랐다. 사양 해석, 다양한 디스플레이 고려 및 인터랙션 기기별 정의, 정보 구조 기획 등 사실상 UI 설계가 더 중심이었다. 오히려 팬시해서는 곤란했다. 두 업무 모두 같은 ‘UXer’라는 타이틀로 존재했지만, 역할과 책임은 전혀 다르다.


이러한 경험을 통해 알게 된 것은, UX라는 타이틀이 실무의 역할을 명확히 설명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조직의 전략, 인력 구조, 협업 체계 등에 따라 UX는 그 모습이 유동적으로 바뀐다. 어떤 경우에는 UX가 사용자 리서치를 뜻하고, 어떤 경우에는 제품의 인터페이스 전반을 설계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심지어 디자인(d)을 잘 다룰 줄 모르는 기획자에게도, PM 업무를 겸하는 담당자에게도 UX라는 이름이 쉽게 붙을 수 있다. 문제는 이걸 경험해보지 않고서는 정말 이런 지 와닿지 않는다는 점에 있다.


그러니까 UX라는 용어 자체가 취준생에게 불리한 일종의 족쇄다. 결국 이 직무는 정해진 테두리 안에 갇히지 않는 것이 특징이다. UX는 조직이 필요로 하는 업무를 담당하고 조정하기 위한 기표 즉, 일종의 손가락처럼 작동하며, 그런 점에서 맥거핀처럼 실체보다는 기능에 의해 정의된다고 말할 수 있다. 사실 달은 따로 있다는 것이다.



교육과 실무 간의 간극


예비 UXer들이 자주 겪는 혼란 중 하나는, 교육에서 배운 방법론과 실무의 현실 간의 간극이다. 페르소나, 저니맵, 시나리오 등은 UX의 기본 방법론으로 여겨지며 포트폴리오에서도 자주 접목된다. 틀린 것은 아니다. 하지만 실제 프로젝트에서는 그런 절차를 정석대로 따를 시간이나 여유가 거의 없다. 특히 인하우스 UX 조직에서는 급한 일정과 기술 제약, 타 부서와의 조율 속에서 빠른 판단과 실무 중심의 해결이 요구된다. 실제 전쟁터에서 과연 심호흡을 하며 조준사격을 할 겨를이 얼마나 있겠는가?


내 경험상으로도, 이론과 프로세스를 충실히 따르기보다는 상황에 맞춰 전략적으로 해석하고 응용하는 감각이 훨씬 더 중요했다. 문제를 정확히 진단하고, 기술적 제약 안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의 설계를 도출해 내며, 그 결과를 타 부서에 효과적으로 설명하고 설득하는 일련의 과정들이 핵심이었다. 이걸 잘하는 게 시니어다운 것이라고 느꼈다. 이렇듯 UX는 정형화된 틀보다는 맥락 읽기와 설계적 사고력에 더 가까운 일이다.


그래서 교육에서 배운 도구들이 무의미하다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을 언제, 왜, 어떻게 꺼내 쓸 것인지에 대한 감각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도구보다 더 중요한 것은 문제에 접근하는 나의 태도와 시선이다.



UX의 실체와 HCI의 기반


그렇다면 질문이 생긴다. “UX의 실체란 과연 무엇인가?” 아무리 맥거핀이라지만, 비어 있기만 한 개념이 조직 안에서 어떻게 그렇게 강력한 동력으로 작동할 수 있는가? 그 이유는, UX가 단지 말뿐인 구호가 아니라, 분명한 학문적 기반과 실천적 콘텐츠를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실체는 바로 HCI(Human-Computer Interaction)의 주요 원리들로부터 비롯된다.


UX란 결국 사람과 시스템 간 상호작용을 다루는 HCI의 실천적 구호이며, 여기에 포함되는 개념들은 꽤 명확하다. 정보 구조화(Information Architecture), 인지 부하(Cognitive Load), 피드백과 가시성(Feedback & Visibility), 행동 유도성(Affordance), 에러 방지 및 회복(Error Prevention & Recovery) 등은 HCI에서 다루는 핵심 원리이자, UX 분야에서 실제로 판단의 기준이 되는 요소들이다. 사실 진짜 중요한 이론이란 바로 이것들이다.


결국 UX의 실체는 직무의 경계가 아니라, 이러한 원리를 바탕으로 사용자의 행동을 이해하고, 그에 기반한 설계를 통해 더 나은 상호작용을 만드는 행위 자체에 있다고 정의할 수 있다. 실무에서 UX가 맥거핀처럼 보이는 이유는, 이 원리들이 보이지 않게 녹아들어 있기 때문이며, 그 핵심은 ‘사용자와 시스템 간의 상호작용’이라는 본질에 있다.



다시 맥거핀으로, 그리고 나의 이야기


무엇을 만들거나 멘토링 혹은 인터뷰에 임할 때, 항상 ‘내가 생각하는 UX란 무엇인지’를 나 나름의 언어로써 풀어내려 오랜 기간 노력해 왔다. 이처럼 정의되지 않은 개념일수록, 그 개념에 의미를 부여하는 사람의 언어와 태도가 중요하다. 맥거핀도 결국 아무 의미가 없기 때문에 무의미한 것이 아니라, 누가 그것을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이야기의 동력이 되듯이, UX도 마찬가지이다.


어떤 도구를 썼는지가 아니라, 어떤 문제를 어떤 관점으로 바라보았는지를 중심으로 구성했는지, 리서치를 했다는 사실보다 왜 그 리서치가 필요했고 그 결과로 어떤 인사이트를 도출했는지를 설명하려면 역설적으로 내가 중심에 있어야 구심축이 생겼다. 처음엔 비어 있는 듯하지만, 프로젝트와 조직이라는 현실 속에 들어가면 누군가의 손에서 강력한 의미와 동력으로 작동하는 개념. 여러분도 UX라는 가방 안에 자신의 언어를 채워봤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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