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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은 객관을 향해, 커리어는 주관을 토대로 쌓기

용기와 신념에 관하여

by UX민수 ㅡ 변민수


실무에서의 객관성 추구


UX 실무는 기본적으로 ‘사용자 중심’의 문제 해결을 지향하기 때문에 객관적인 근거 확보가 핵심이다. 사용자 조사, 데이터 분석, A/B 테스트 등은 모두 객관성을 확보하기 위한 수단이다. 조직 내에서 설득을 해야 하는 경우에도 감이나 개인의 취향보다는 정량적·정성적 근거가 아무래도 유효하다. 특히 대기업과 같이 대규모 인력이 얽혀 움직이는 조직에서는 이러한 객관성이 더욱 절실히 요구된다. 단순한 아이디어가 아닌, 이 아이디어가 왜 필요한가에 대한 객관적인 설명과 그에 대한 정량적 설득이 의사결정을 위해 필수적인 경우가 많다.


커리어 초기에는 뛰어난 아이디어 그 자체로도 설득이 가능할 것이라 생각했던 시절도 있었다. 하지만 실제 업무 현장에서는 '왜 이게 더 나은가'에 대한 데이터적 근거 없이는 그 어떤 제안도 쉽게 채택될 수 없었다. 데이터 또한 당연히 만능키라고 볼 수만도 없었다. 때문에 업무에 있어서는 가능한 한 감정과 주관은 배제하고, 논리와 데이터로 무장하려는 노력이 필요했다.



커리어의 주관적 설계


반면 커리어는 완전히 다른 차원의 선택이다. 아무리 논리적으로 좋다고 해도 본인이 흥미나 성취감을 느끼지 못한다면 오래가기 어렵다. 실제로 UX라는 분야 자체가 다양한 전공과 경험을 가진 사람들이 모이는 융합형 직무이다 보니, 커리어를 설계하는 데 있어서도 당연히 '정답'이란 없다. 어떤 이는 GUI를 통해 시각적 완성도를 추구하고, 또 어떤 이는 리서치 기반의 문제 정의에 몰입하며 자신의 길을 찾아간다. 모두가 답인 것이다.


주니어 땐 UI를 직접적으로 그리고 구성하는 것에 더 관심이 많았지만, 점차 사용자의 문제를 정의하고 해결하는 기획형 UXer 역할에 더 흥미를 느끼게 되었다. 그에 따라 커리어 방향도 자연스럽게 달라질 수 있었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건, 자신이 어떤 일에 흥미를 느끼고 몰입할 수 있는지 끊임없이 성찰하고 실험해 보는 주관적인 시간들이었다. 커리어는 스스로가 설계자이자 실험자여야 한다는 것을 지금까지 몸소 체감해 온 것이다.



두 기준의 충돌과 조화


실무에서는 객관성을, 커리어에서는 주관성을 따를 것이라는 이분법이 사실 실천의 관점에서는 충돌로 다가올 때도 많다. 예를 들어, 조직의 KPI 중심 과제가 주어졌지만 본인은 그것이 UX 측면에서 큰 효용이 없다고 느낄 때, 혹은 실적은 좋지만 정체성이나 흥미가 떨어지는 업무를 맡고 있을 때, 이런 모순은 더욱 도드라진다.


이럴 때 커리어 설계의 기준을 다시 세워볼 수밖에 없었다. 예컨대 실무에서의 객관적 판단은 그대로 유지하되, 그 프로젝트가 나에게 주는 배움이나 성장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주관적으로' 평가하고, 커리어의 이정표로서 남길 수 있는지 자문하는 방식이다. 그렇게 하다 보면 단기적으로는 만족스럽지 않아도, 장기적으로는 나만의 성장곡선을 그릴 수 있게 된다. 성장곡선이 아니더라도 목표를 향해 순항 중인지 본인만 알 수 있는 감각을 계속해서 키울 수 있었다.



커리어 선택의 우선순위


나는 주관적 기준에 따른 커리어 선택 시 두 가지를 우선 고려했다. 첫째는 '흥미'이고, 둘째는 '지속 가능성'이다. 흥미는 몰입을 가능하게 만들고, 지속 가능성은 그것을 커리어로 발전시킬 수 있는 기반이 되기 때문이다. 보통 반대로 생각하는 것 같다. 지속가능성을 먼저 놓다 보니 고용 안정성이나 연봉이나 처우 등의 상황을 따지는 것으로 전개된다. 반대로 생각해야 내가 중심에 놓일 수 있는데 이 주관적 기준을 외면하는 모습을 많이 관찰해 왔다.


특정 도메인이나 툴에 관심이 있다고 해서 바로 방향을 트는 것이 아니라, 그 분야에서 내가 어떤 방식으로 오래 일할 수 있을지를 함께 따져보아야 한다. 예를 들어 Figma 등 툴이 좋아 보여도, '나는 협업 커뮤니케이션을 좋아하나?', '프로토타이핑의 반복적인 디테일 조정에 즐거움을 느끼는가?' 같은 구체적인 질문으로 이어져야 한다. 그래야 엣지를 가진 전문성을 획득하며 커리어가 지속적으로 발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은 객관을, 커리어는 주관을’이라는 말은 단순한 구호가 아니라 실무와 인생의 균형을 잡는 실제적인 원칙이 될 수 있다. 실무에서는 감정을 배제한 논리와 데이터로 문제를 해결하고, 커리어에서는 내면의 성찰을 통해 나에게 맞는 길을 찾아가야 한다. 결국 커리어는 수많은 실무 경험을 통해 끊임없이 수정되는 '주관적 설계도'이다. 처음부터 정답을 찾으려 하기보다는, 시행착오를 감수하며 나만의 기준을 만들어 가는 것이 중요하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용기와 신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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