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더 사랑하기 위해서
행위로만 보면 여행이겠지만, 효과로만 보면 진통제는 아닐까. 수십, 수백 만원짜리 진통제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정도 고통과 병이라면 이미 죽음이 내정된 상황이 아닐까 싶은데. 나는 내 삶을 그렇게 값을 매기기 싫고, 그럴 수도 없고, 때문에 그런 류의 여행이라는 처방이 가당치 않다고 여긴다.
난 여행을 좋아했다. 낯선 풍경, 모르는 골목, 언어가 통하지 않는 소란함까지 모두 좋아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여행을 점점 멀리하게 되었다. 단순히 여유가 없어서도 아니고, 귀찮아서도 아니다. 그보다 더 근본적인 이유가 있었다. 여러 여행을 통해 생겨난 여행에 대한 내 마음가짐과 관점 때문이었다.
언젠가도 홀연히 어딘가로 떠나게 되었다. 겉으로 보면 분명 여행이었다. 기차표를 끊고, 숙소를 살피고, 일정을 파악했다. 하지만 그 행위의 실질적 목적은 종종 어떤 ‘진통제’란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삶의 통증을 잠시 잊기 위해, 현실을 회피하기 위해 떠나는 그 행위란, 마치 병의 원인은 그대로 둔 채 일시적으로 통증만을 가라앉히는 약처럼 느껴졌다.
내가 하는 행위의 단편성을 인식하니까 재미가 다 사라져 버렸다. 물론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나에겐 그게 불편하게 느껴졌다. 수십, 수백만 원짜리 진통제라니. 그 돈을 들여야만 잠깐 숨 돌릴 수 있는 삶이라면, 애초에 그 삶 자체에 무언가 심각한 병이 든 건 아니었을까. 그보다 심각한 것은 그런 삶으로 다시 돌아오는 것이 고스란히 고통처럼 느껴진다면 이게 증거가 아니고 무엇이었겠는가.
그런 삶을 이런 걸 ‘여행’이라는 말로 포장하는 건 어쩐지 내 삶에 애써 값을 붙이는 행위처럼 느껴졌다. 나는 내 삶을 금액으로 저울질하고 싶지 않았고, 값어치가 있길 원했다. 그러니 그 돈이 아까워지더라.
여행이 진정한 의미를 가지려면, 그것은 삶을 대하는 하나의 처방이란 방편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피로한 나를 억지로 치유하기 위한 위장된 도피가 아니라, 정말 ‘여.행.’이어야 한다고 말이다. 정처 없이 떠돌다가, 우연히 마주한 무엇과의 조우. 예상하지 못한 감정의 파동. 예컨대, 길가에 핀 이름 모를 꽃이 문득 마음을 건드릴 때. 비 오는 어느 도시의 버스 정류장에서 말없이 지나가는 사람들의 얼굴을 바라볼 때. 그런 것이 나에게는 여행이다. 나 여기 왔다는 신남보다 더 큰 희열을 필요했다.
그리고 그런 여행은 사실, 꼭 비행기를 타지 않아도 된다. 일상 속에서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길을 살짝 바꿔 걷는 것만으로도, 익숙한 공간에서 낯선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그렇기에 나는, ‘삶을 잠시 잊기 위한 여행’이 아니라 ‘삶을 더 깊이 느끼기 위한 여행’을 원한다. 그렇게 한동안 세속적인 여행과는 담을 쌓을 수밖에 없었다. 그게 내가 지금 여행을 멀리하고 있는 이유다. 지금도.
하지만 조금씩 이 조차 고집이라 느껴지면서 바꿔보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나의 궁극적인 목표는 내 삶이 여행이 되고, 여행이 삶이 되는 것에 있다. 여행 같은 삶을 산다면 굳이 여행이 로망일 이유가 없다. 오히려 삶이 여행이 된다면 다른 곳을 가보고 그곳 사람들의 삶을 어 잘 이해하게 되지 않을까?
어쩌다 이런 이상을 품게 되었나 싶지만, 결국 추구하는 목적은 ‘자유’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