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모 브런치에서 ‘인간중심 경험기획’이라는 표현을 본 적이 있다. 언뜻 보면 무언가 정확하고 심도 있게 표현한 것 같아 보이지만, 이게 무슨 말일까? 싶더라. 도대체.
나는 ‘인간중심’이란 표현은 사실 단어를 더 덧붙여서 얻는 효과가 미미하다고 보는 입장이다. 그러니까 언어의 추가로 인해 실질적인 설명력 향상이 별로 일어나지 않는 공갈용어일 수 있단 것이다. 마치 ‘소금에 절인 배추김치’ ‘콩으로 만든 두부조림’처럼 당연한 속성을 다시 말한 셈이랄까. 애당초 ‘인간 중심’이라는 것은 UX의 본질이며, 경험기획도 기본적으로 사용자의 관점에서 설계되는 것이기에 중복 설명이라는 인상을 지울 수 없었다. 다른 무언가와 나를 차별화하고 구분해 내기 위한 방편이 이렇듯 구차해서 되겠는가.
UX 담당자로서 ‘인간중심’이라는 표현이 중요하다고 생각은 하면서도, 굳이 앞에 붙여 내 생각을 차별화했다기보단 다소 의례적인 수식처럼 느껴질 때가 더 많았다. 오히려 그 용어를 쓰는 이유나 배경은, UX 전문성이 흐릿한 윗사람을 향해 메시지를 던질 때 더 명시적으로 강조할 요량 외엔 용도조차도 이젠 없다고 느낀다. 게다가 이젠 윗사람들도 이를 사족으로 받아들일 정도로 만연해진 것 같다. 좋은 현상이면서도 아쉬운 대목이다. UX가 더 이상 특별한 게 아닌 것은 의미 있는 현상이면서도 허탈한 현실이니 말이다. 아니나 다를까 해당 브런치는 지금은 삭제돼 흔적도 사라졌다. 당연한 결과다.
실제 현업에서 ‘인간중심’을 내세우지 않아도, 모든 UX 작업은 궁극적으로 사용자에 대한 이해에서 출발하고 해야 한다. 나는 살아있다 생각하지 않아도 살아있는 것처럼, '인간중심'이란 모토는 UXer에겐 자율신경 같은 것이다.
인터페이스를 기획하든, 서비스를 설계하든, 사용자 페르소나를 그리든. ‘인간중심’이라는 표현을 붙였다고 해서 해당 기획이 더 사용자 친화적이라는 보장은 당연히 없다. 오히려 강조를 하면 할수록, 기존에 그것이 얼마나 결여되어 있었던 것이냐는 역설적 의문을 자아낼 수 있다.
보다 더 정확하게 무언가를 표명한 이러한 표현들이 아이러니하게 덫이 되는 이유는, 말은 그럴싸하지만 정작 그 안에 담긴 실천이나 실행 내용은 평이하거나, 오히려 빈약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용어 자체에 집중하기보다, 실제 기획이 얼마나 사용자의 맥락에 닿아있는가가 훨씬 더 중요하다는 것을 그래서 강조하고 싶다.
그러니 용어는 수단일 뿐 그 목적이 되어선 안 된다. UX 업계에서는 점점 더 다양한 수식어들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사용자경험(UX), 고객경험(CX), 브랜드경험(BX), 제품경험(PX), 인간경험(HX)… 등 나중엔 뭐라고 할지 상상도 안 간다. 각각이 강조하는 방향은 미묘하게 다르지만, 결국은 ‘사람’과 ‘맥락’ 중심의 설계를 전제로 한다는 점에선 대동소이하다. 어떤 영역표시란 인상을 지우기 어렵다.
이럴 때일수록 용어가 아니라 ‘왜 그런 방향을 택했는가’에 대한 논리와 실천이 더 중요하다. 명시적으로 드러나는 게 없더라도 말이다. 멋있지 않더라도 말이다. 보이지 않지만 기여했다면 된 것이다. 어떤 이들은 참 순진하고 순수하다 놀릴는지도 모르겠다. 적어도 이 분야의 대명사가 된 이들에게서 온 반어적 찬사라면 내 달게 받겠다.
현업에서 ‘기획’이라는 단어는 ‘의도’와 ‘구조화’를 의미한다. ‘인간중심 경험기획’이라는 말이 실무적으로 의미가 있으려면, 단순히 사용자를 고려했다는 선언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그 사람을 왜 그렇게 정의했는지, 어떤 데이터나 맥락을 기반으로 어떤 흐름과 구조를 설계했는지, 무엇이 기존과 다르고 왜 더 효과적인지를 명확히 설명할 수 있어야지, 언제까지 저런 용어팔이만 하려고 하는지 답답하다.
근래 ‘제품경험(PX)’이란 표현이 화제가 된 바 있다. 필요성과 역설엔 동감하지만, 주니어들 앞에서 괜한 분열을 조장하는 모습이 마냥 보기 좋진 않게 나는 느낀다. 슬로건은 디자인의 설득력을 높이는 도구로 사용되지만, 구체적인 맥락 없이 반복되면 공허한 표현이 되기 십상이다. 그래서 용어보다 중요한 것은 그것이 실질적으로 구현된 증거이며, 어쩌면 나는 이걸 위해 매일 한 발자국씩 다소 무의미해 보이는 눈덩이를 열심히 던지며 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언젠가 깜찍하게 내게 윙크할 커다란 눈사람을 고대하며 말이다.
‘인간중심 경험기획’이라는 표현은 언어적으로는 틀리지 않지만, UX 분야에서는 이미 그 본질이 포함된 개념이기 때문에 굳이 강조할 필요는 없다. 실무에서는 이처럼 반복적인 수식어보다는,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기획의 맥락과 설계의 이유를 명확히 하는 것이 훨씬 더 의미 있는 접근이다. 그러니 용어에 속지 말자.
이런 용어에 집착하고 추적하다 보면 자연스레 준비에 몰입하게 된다. 내가 모르는 게 많다는 생각에 불안해지기 때문이다. 하나 그 용어가 어떤 배경에서 어떤 맥락으로 나왔는지를 설명할 수 있으면 그만이다. 겁먹지 말자. 손가락이 아니라 달을 보자는 것이다. 용어는 대상을 가리키는 수단일 뿐이며, 용어 자체가 목적이 되는 순간, 그것은 오히려 본질을 가리는 장벽이다. UX에서 중요한 것은 언어의 정교함보다 경험의 실질성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