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저는 디자인(d) 전공 후 이제 막 스타트업에서 UX 관련 업무를 시작한 1년 차 주니어입니다. 실무에 뛰어든 지 얼마 되지 않아 매일매일이 새롭고 배우는 재미도 크지만, 동시에 제가 UX 프로세스를 피상적으로만 이해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 하는 고민도 커져가고 있어요.
사용자 리서치를 해도 결과를 어떻게 해석하고 활용해야 할지 막막하고, 와이어프레임이나 플로우를 그릴 때도 사용자의 맥락보다는 “예쁘게”만 신경 쓰고 있는 건 아닌지 스스로 자주 돌아보게 됩니다. UX는 단순한 디자인(d)이 아니라 문제를 정의하고 해결하는 과정이라고 알고 있는데, 실제 업무에서는 종종 '디자인(d) 결과물' 중심으로만 흘러가는 듯해요.
멘토님께서는 실무에서 초보 UXer가 자주 빠지는 실수들이 있다면 어떤 것들이 있었는지, 그리고 그런 시행착오를 어떻게 인지하고 극복해 나가야 할지 조언을 얻고 싶습니다. 혹시 실무 초기에 그런 감각을 어떻게 키우셨는지도 궁금합니다! 감사합니다 :)
➥ UX에 막 입문한 이라면 누구나 초기에는 비슷한 실수들을 반복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이런 말이 있어요, 훌륭한 전문가란 그 분야에서 할 수 있는 모든 실수를 전부 해본 이라고요. 그러니 실수를 안 하면야 더 좋겠지마 어떻게 개선해 나아가는지가 더 중요하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이에 대해 제 경험과 주변에 들은 여러 조언을 바탕으로 실질적인 사례와 개선 방안을 정리해 드립니다.
초보 UXer들이 자주 저지르는 첫 번째 실수는 UX 방법론에 과도하게 의존하는 것입니다. Persona, Journey Map, User Scenario 작성 등 학습한 다양한 툴과 기법을 무조건 프로젝트에 적용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실제 업무는 제한된 시간과 자원 안에서 해결책을 빠르게 도출해야 하며, 이 과정에서 일부 방법론은 생략되거나 요약될 수밖에 없습니다.
방법론을 무조건 배척하라는 것은 물론 아닙니다. 다만, 현업에서는 문제를 빠르게 파악하고 최소한의 도구로도 본질을 잡아내는 감각이 중요합니다. 개선을 위해서는 방법론 자체보다 ‘왜 이걸 쓰는가’, 즉 목적과 상황의 맥락을 이해하고 유연하게 적용하는 태도를 갖춰야 합니다. 다양한 케이스를 통해 방법론의 쓰임새를 익히되, 꼭 필요한 순간에만 꺼내 쓰는 전략이 필요합니다.
제 경우는 그때그때 여러 방법론을 응용해서 당시 진행 중인 프로젝트에 맞게 프레임워크를 재설정합니다. 패션쇼에는 매번 새로운 옷이 올라가듯 매번 바꿉니다.
두 번째는, 디자인(d) 결과물에 집착하는 태도입니다. 특히 시각디자인을 전공한 분들일수록 ‘예쁘게 보여줘야 한다’는 강박을 갖기 쉽습니다. 실제로는 비주얼보다 ‘무엇을 해결했는가’가 더 중요한 요소임에도 불구하고 말이죠.
저도 시각디자인을 전공했지만, 오랜 시간에 걸쳐서 이 물을 빼는 작업을 했습니다. 이게 참 진짜 쉽지 않은, 정말 어려운 일입니다. 과격하게는 몸에 피를 다 빼서 전혀 다른 혈액형의 피를 다시 채워 넣는 과정 같다고까지 저는 표현합니다.
너무 많은 장식이나 그래픽 요소는 오히려 핵심 메시지를 가리는 방해물이 되기도 합니다. 프로덕트 디자이너라면 몰라도 GUI와의 경계가 명확한 현업 UXer라면 화면도 물론 중요하지만 때론 ‘문제를 어떻게 해결했는가’를 중심으로 스토리텔링을 할 줄 알아야 합니다. 맥락에 따라서 디자이너(d)가 아니라 ‘문제 해결자’로서 사고하는 습관이 필요합니다.
초보 UXer들 중엔 종종 자신이 배운 UX 지식이나 방법론을 절대적인 기준처럼 여기며, 조직의 맥락이나 현실적인 제약을 무시하는 실수를 하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왜 이 회사는 사용자 조사를 제대로 하지 않지?’ 혹은 ‘이런 기능이 UX적으로 말이 돼?’고 판단하고 반감을 가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반감을 가지는 것은 어쩌면 올바른 본능일 순 있습니다. 그러나 그리 프로페셔널 같아 보이진 않습니다.
조직마다 UX를 정의하고 활용하는 방식은 매우 다르고, 현실은 다양한 제약 속에서 돌아갑니다. 그 맥락을 이해하지 못하면 오히려 현업 적응이 어려워집니다. 개선 방안은 ‘비판’보다 ‘이해’를 먼저 하는 태도입니다. 현업에서의 UX란 도대체 무엇이며, 그 조직은 왜 그런 방식으로 일을 하는지를 이해해 맥락에 걸맞게 움직이는 것이 중요합니다. 만약 결코 와닿지 않는다면, 이직을 통해 여러 회사들을 다 다녀보시면 됩니다.
스타트업 인턴, 산학 프로젝트, 교육기관 실습 등을 통해 ‘실무 경험’을 쌓았다고 생각하지만, 실제 인하우스 UX팀의 리듬과는 매우 다릅니다. 실무는 복잡한 조직 내 이해관계와 업무 흐름을 이해해야 비로소 제대로 된 UX 설계가 가능합니다.
제가 자주 하는 비유는 훈련소와 전쟁터가 차이입니다. 훈련소에서는 고정된, 예정된 적과 전투를 어떻게 보면 예행연습합니다. 하지만 전쟁터는 알 수 없는 상대방 작전에 의한 각본 없는 인터랙션이 난무하게 됩니다. 무언가를 잘 외우고 숙달했다고 해서 베테랑이 될 수 없는 것이죠. 다른 멘토들은 물론이며, 조금 일을 경험해 본 주니어들도 하나같이 입을 모아 이야기합니다. “막상 입사하고 나니 하늘과 땅 차이더라.”
따라서 실무를 겪기 전에는 스스로의 ‘경험’을 과대평가하지 말고, 현업에 들어가면 새로 배워야 할 게 많다는 점을 인정해야 합니다. 실무를 ‘학습의 장’으로 여기며 겸손하게 태도를 유지하는 것이 성장의 속도를 높이는 방법입니다.
UX 취업을 준비하면서 공부와 포트폴리오 제작에만 매달리고, 정작 ‘실행’은 미루는 경향도 흔한 실수입니다. 포트폴리오를 완벽하게 만들기 위해 시간을 너무 오래 들이다 보면 실전 감각이 무뎌지고, 기회도 지나쳐버릴 수 있습니다. 또 시간이 지날수록 조급함이 커지고 불안감에 휘둘리기 쉽습니다. 훈련소에서 1년과 전쟁터에서 1년을 두고 실질적인 경험치를 비교한다는 건 해보지 않아도 무의미할 것입니다.
“공부보다도 경험이 중요”합니다. 가볍게라도 조직에 소속되어 보는 경험이 실제 UX를 이해하는 데 가장 빠른 길입니다. UX가 적성에 맞는지도 실무를 겪어봐야 알 수 있고, 조직의 리듬도 몸으로 겪어봐야 비로소 체화됩니다.
초보 UXer의 실수는 자연스러운 과정이며, 누구나 겪는 시행착오입니다. 중요한 것은 그 실수를 얼마나 빠르게 인식하고 개선하는가입니다. 방법론은 수단일 뿐이며, 문제 해결에 집중하는 사고, 조직의 맥락을 이해하는 유연성, 비주얼보다 구조를 중시하는 실용주의적 접근, 그리고 경험을 통해 배우려는 실행 중심의 태도가 필요합니다.
UX는 결국 사람과 사람 사이의 문제를 푸는 일이기에, 감각적인 통찰과 공감, 그리고 열린 자세가 더욱 중요합니다. 실수를 두려워하지 말고, 매 순간 ‘배움’의 기회로 삼으시길 바랍니다. UX라는 직무는 시행착오를 통해 단단해지는 길이기도 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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