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기만과 자기계발 사이에서
공수표라는 말에는 부정적인 뉘앙스가 깔려 있다. 실제로 지켜질 가능성이 적은 약속, 현실을 고려하지 않은 허풍, 혹은 책임지지 않는 발언. 일상에서도 우리는 이런 공수표에 쉽게 노출된다. “이번엔 꼭 연락할게”, “다음에 밥 한 번 먹자”, “그거 내가 알아봐 줄게”라는 말들이 공허하게 들리는 이유는, 그것이 지켜질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걸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말이 반복되면 사람들은 상대방을 신뢰하지 않게 된다. 믿었다가 실망하면, 다음엔 아예 기대조차 하지 않게 된다. 그렇게 관계는 무너진다.
하지만 공수표가 항상 나쁜 것만은 아니다. 공수표의 진짜 의미는 말이 아니라 대상과 맥락에서 갈린다. 똑같은 말도 ‘누구에게, 왜, 어떻게’ 던지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성격을 갖는다. 특히 그 대상이 ‘나 자신’ 일 때, 공수표는 완전히 다른 역할을 하게 된다.
스스로에게 던지는 공수표는 일종의 선언이다. 지금 당장은 할 수 없더라도, 언젠가는 그렇게 하겠다는 의지를 담은 문장. 예를 들어 ,“이번 달에 매일 영어로 일기 쓰기”, “나는 언젠가 TED에서 강연을 할 거야” 같은 말은 누군가에겐 허세처럼 들릴 수도 있지만, 당사자에겐 자신을 움직이게 하는 연료가 된다. 이런 공수표는 꿈이 되기도 하고, 계획이 되기도 하며, 무엇보다도 의지가 된다.
그렇기에 자기계발은 ‘나에게 던지는 공수표’에서 시작된다. 현실 가능성과는 조금 거리가 있더라도, 그런 말을 자꾸 하다 보면 언젠가는 그것에 어울리는 사람이 되어간다. 말에 끌려 움직이고, 움직이다 보면 그 말이 점점 현실로 다가온다. 처음엔 말뿐이었지만, 그 말에 책임을 지려는 노력이 쌓이면, 어느 순간부터 그건 더 이상 공수표가 아니게 된다. 이때부터 공수표는 허세가 아니라 약속이 된다. 자기 자신과 맺은 약속. 나에게 던지는 공수표가 쌓이면 자기를 기만하는 느낌이 들 수 있다. 이건 부작용이 아니다. 이때부터 작용점이 발생하는 시점이다. 나는 그 말을 지키려 움직이기 시작할 것이다. 말을 계속 놓치지 않는 한 생각이 따라올 것이고 어떤 심적 부채감이 나를 가만두지 않을 것이고, 그래야만 한다.
물론 말만 하고 가만히 있다면, 그건 진짜 자기기만이다. 자기를 속이는 공수표는 자존감을 갉아먹는다. 나는 이런 말을 자주 했지만 결국 아무것도 지키지 못했다는 생각은, 자기 신뢰를 무너뜨린다. 신뢰는 남에게만 필요한 게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도 필요한 감정이다. 내가 나를 믿지 못하면, 어떤 계획도 지속될 수 없다. 그래서 자기에게 던진 공수표는 반드시 '행동'이라는 다리를 건너야 한다. 말과 행동이 만나야 자기계발이 완성된다. 자기기만으로 그칠 사람에게는 추천하고 싶지 않다. 그러나 이러한 선언에 영향을 받고 신경을 쓰는 이들에게는 나를 향한 공수표는 유효타다. 실제로 말하는 대로 이루어진다고 하지 않던가. 바로 그거다.
실제로 자기계발을 잘하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바로 이 지점에 있다. 그들은 자기에게 공수표를 던질 줄 알고, 그 공수표를 꾸준하게 실천해 간다. 달성 여부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시도하고, 실패해도 다시 말하고, 다시 해보는 그 과정이고 성장이다. 그런 사람들은 자기 자신과의 신뢰를 계속 쌓아간다. 어제는 못했지만 오늘은 했다. 오늘은 못했지만 내일 다시 해본다. 이 반복 속에서 공수표는 점점 ‘현실적인 계획’으로 변모한다.
결국, 자기계발은 스스로에게 던지는 수많은 공수표로 이루어져 있다. “나는 언젠가 가능할 거야”, “아직은 아니지만, 할 수 있어”, “오늘은 그걸 위한 하루야” 같은 다짐들이 모이고 쌓이며, 점차 현실을 바꿔간다. 그러니 남한테 할 말은 조심하되, 나한테 할 말은 자주, 크게 하자. 어쩌면 가장 중요한 자기계발은, 나한테 ‘말을 거는 일’에서 시작되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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