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는 브랜드의 술자리

(crafted 맨해튼)

by UX민수 ㅡ 변민수


언젠가는, 내 이름으로 _ 같은 레시피라도 손끝은 다르다


맨해튼은 오래된 클래식이다.

그만큼 많은 사람이 레시피를 알고 있고,

변주도 많다.


보통은 버번 위스키와 스위트 베르무트를 2:1 비율로 섞고,

앙고스트라 비터 몇 방울, 체리 하나를 떨어뜨린다.

어떤 바는 오렌지 필을,

어떤 바는 차갑게 휘젓고,

어떤 바는 온도 대신 분위기로 맛을 낸다.


하지만 결국,

맨해튼을 완성시키는 건 바텐더의 ‘해석’이다.

같은 재료로 만들어도

각자의 손끝에서 다른 술이 된다.

그건 설계도 마찬가지다.



누군가의 레시피로 시작했다 _ 정답 안에서 해석을 배우는 시간


처음 이 일을 시작했을 땐

정해진 방식이 전부였다.

형광펜으로 강조된 기획안,

이미 수십 번 써온 컴포넌트,

늘 쓰던 폰트와 색상.


물론 그 안에서의 ‘변형’은 허용됐다.

하지만 그것은 언제나

이미 정해진 안에서의 응용이었지,

진짜 나만의 설계는 아니었다.


“이런 경우엔 이렇게 하세요.”

“그건 유저들이 어려워하니까 안 돼요.”

“이게 업계 기준이에요.”


정답은 많았고,

질문은 점점 줄었다.



기준을 안다는 것과, 나를 안다는 것 _ 디자인은 결국, 선택의 말투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정답을 아는 것’이

더 이상 안심이 되지 않기 시작했다.


디자인은 정확한 길이 없다는 걸 알았고,

UX는 결국 해석의 영역이라는 걸 알게 됐다.


같은 문제를 다섯 명에게 주면

다섯 개의 설계가 나온다.

그걸 조율하는 것도,

그 안에서 나를 찾는 것도

모두 기준이 아닌 나의 선택이었다.



시그니처가 되는 것 _ “왜”라고 묻기 시작할 때, 내가 드러난다


그즈음부터 나는

질문을 바꾸기 시작했다.


“어떻게 해야 예쁜가요?”에서

“내가 왜 이렇게 정했는가?”로.


“다들 이렇게 하니까” 대신

“나는 이렇게 하고 싶으니까”로.


물론 위험부담은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나온 결과물에는

언제나 나만의 ‘어조’가 묻어 있었다.


지금 나는 누군가의 작업을 보면

그 사람이 누군지 짐작할 수 있다.

그건 브랜드다.

이름이 아니라, 결의다.



한 잔으로 전해지는 철학 _ 흔적이 남는 UX는, 방식이 있는 UX다


맨해튼을 만드는 사람은 많다.

하지만 어떤 잔은

다 마시고도 기억에 남는다.

레시피는 똑같은데,

그날의 조명과 유리컵,

바텐더의 말투,

그가 체리를 떨어뜨리는 순간까지의 망설임이

한 잔에 녹아 있다.


나는 그런 UX를 만들고 싶다.

누군가의 하루 속,

작지만 명확하게 기억에 남는 경험.

그 안에 ‘나’라는 디자이너의 방식이 남는 설계.



나는 나만의 잔을 빚는다 _ 이름이 아니라, 결의로 남는 설계를 위하여


이 글은,

시그니처를 고민하는 모든 사람에게 바친다.

당장 정체성이 없어도 괜찮다.

처음엔 누구나 따라 하면서 배운다.


하지만 언젠가는,

따라 하는 대신

조율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는,

이름이 아니라

철학으로 설계하는 사람이 될 것이다.



이 잔은

그 시그니처를 찾아가는 당신에게,

천천히 내어놓는

한 잔의 맨해튼이다.


crafted.

with your na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