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at 올드 패션드)
╱
바에 앉아 올드 패션드를 주문하면
바텐더는 몇 가지를 묻지 않는다.
잔은 당연히 온더락 잔이고,
얼음은 대게 큼직한 한 덩어리다.
어떤 취향이냐고 묻기보다
그 사람이 이 술을 고른 이유를
조용히 감아내는 술이다.
단맛과 쓴맛,
그리고 위스키 본연의 향이 섞이는 이 술은
자극적이지 않다.
그렇다고 평범하지도 않다.
덜어냈기에 깊어진다.
그건 UX도, 인생도 마찬가지다.
╱
UX를 설계할 때 종종 겪는 유혹이 있다.
기능을 하나라도 더 넣고 싶고,
사용자를 감동시킬 무언가를 더 얹고 싶어진다.
이펙트를 더하고,
현란한 애니메이션을 입히고,
모든 상황에 대응하는 상세 조건을 만들다 보면
어느새 화면은 무거워지고,
경험은 지쳐버린다.
“더 많이”는 종종 “더 복잡하게”로 연결되고,
“더 좋게”는 오히려
사용자가 떠나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
내가 어떤 프로젝트에서
딱 한 가지 중요한 메시지만 남기기로 했을 때
몇몇은 걱정했다.
“이거 너무 밋밋하지 않을까?”
“그냥 하나만 보여줘도 돼요?”
나는 말했다.
“그래도 이 메시지는,
확실하게 기억에 남을 거예요.”
솔직히 결과를 정확히 알 순 없었다.
그러나 그 한 줄은 분명,
단순했던 그 인터페이스는
결국 팀의 환영을 받았다.
UX는, 무언가를
‘선택하지 않는’ 선택을 통해
깊어질 수 있는 무언가다.
╱
사실 커리어도 마찬가지다.
처음 UX 업계에 들어왔을 땐
‘많이 아는 사람’이 멋있어 보였다.
툴을 다룰 줄 알고, 코드도 조금 알고,
기획서도 잘 쓰고, 컨설팅도 하고,
모든 걸 다 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정확히 뭘 하지 않는 사람’이
멋있어 보이기 시작했다.
욕심을 부리지 않고,
할 수 있어도 하지 않고,
때로는 침묵으로
자신의 깊이를 드러내는 사람들.
그건 어쩌면
주량을 넘기지 않는 용기일지도 모른다.
╱
올드 패션드는 단순하다.
위스키, 앙고스트라 비터, 설탕 시럽, 얼음.
그 단출하고 극소량의 조합의 틈에서
수백 가지 뉘앙스가 탄생한다.
UX도 그런 것 같다.
많이 넣는다고 풍부해지지 않고,
덜어낼수록 명확해진다.
그리고 그 명확함은
깊게 남는다.
╱
이 글은
과하지 않은 설계를 하고 싶은 사람에게 바친다.
감동 대신 균형을,
강조 대신 여운을 택한 사람들에게.
침묵도 설계의 일부가 될 수 있음을 믿는 사람에게.
UX는 마치 한 잔의 올드 패션드 같다.
뜨겁지도, 시끄럽지도 않지만
천천히, 확실히
몸에 들어오는 설계.
우리는
그런 잔을 만들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잔을 만들기 위해
주량을 넘기지 않는 용기가
가장 먼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