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 — 멘티스 쉐어

응원을 건네는 마지막 잔

by UX민수 ㅡ 변민수

다 사라지지 않아, 다행이었던 것들 _ 잊히지 않은 과거는, 누군가에겐 시작이 된다


내 방 한켠에는 여전히 술병들이 놓여 있다.

조주사 자격증을 준비하던 시절,

열심히 모은 리큐르와 스피릿,

이름도 생소했던 병들이 무심한 듯 나란히 서 있다.

뚜껑을 연 적도 없는데,

어느 순간부터 그 안의 술은 조금씩 줄어 있었다.


UX 업계에 발을 들인지도 벌써 9년.

그동안 많은 후배들을 만났다.

디자인이라는 말에 끌려왔지만

막상 현실은 허덕이고,

이론과 실전의 간극에 부딪혀

자신이 뭘 잘못하고 있는지조차 모른 채 지쳐가는 이들.


그들을 볼 때마다

나는 예전의 나를 본다.



지금의 누군가를 향한다 _ 나를 지나온 시간들이, 누군가를 위로할 수 있다면


길에서 맥주 캔을 들고 걷던 날,

골목 어귀에 앉아 하늘을 원망하던 밤,

아무도 응원하지 않는 것 같던 시절의 나.

그 시절의 내가,

지금 누군가에겐 멘토라 불리고 있다는 사실이

가끔은 믿기지 않을 때도 있다.


하지만 분명한 건 있다.

나는 그 시절의 나로 인해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전해줄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



모든 잔은, 지나온 내가 담긴 설계다 _ 지금의 문장은, 나라는 잔을 따라낸 결과다


이 책에 담긴 칵테일들은,

실은 모두 그때의 나를 통과한 잔이다.

그 모든 잔은

나라는 사람을 지나와

지금 이 글에 도달했다.



마시지 않아도, 따라줄 수는 있으니까 _ 견디는 누군가에게, 한 잔의 설계를 건넨다


나는 지금도 술을 거의 마시지 않는다.

하지만 이 글을 통해

그 시절의 나처럼

술은 마시지 않지만, 설계는 하고 싶은 사람들,

무언가를 견디고 있는 사람들,

막연한 감정들을 이름 붙이고 싶은 사람들에게

한 잔을 따르고 싶었다.



천사의 몫을 지나, 이제 멘티의 몫으로 _ 비워낸 잔 위에, 누군가의 시작이 담기길


그래서 이 마지막 잔은,

천사의 몫이 아니라

멘티의 몫,

'멘티스 쉐어'로 남겨두고 싶다.


다 쓴 잔들이,

이제 누군가에겐

시작일 수 있기를.



실체 없는 칵테일에 담긴 가장 진한 마음 _ 말하지 않아도 우러나는 마음이 있다


이 책에 마지막으로 따르고 싶은 한 잔이 있다.

누구에게나 익숙한 이름은 아니지만,

이 책을 끝까지 따라온 당신이라면

이 잔이 어떤 술인지 이미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나는 이 칵테일을 ‘멘티스 쉐어’라고 부른다.

직역하면, ‘멘티의 몫’.

하지만 실은 그보다 조금 더 다정하고 조용한 의미가 담겨 있다.


실제로 이 칵테일은 마실 수 없다.

레시피는 존재하지만, 잔은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며 당신이 느꼈던 감정들,

때로는 고개를 끄덕였던 장면들과,

묘하게 남았던 문장들 사이에

이 잔은 이미 조금씩 우러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멘티스 쉐어는 인내의 농축액으로 시작한다.

말없이 견딘 날들,

버티기 위해 묵묵히 삼킨 생각들이

천천히 증류된 한 모금.

그 위에 조심스레 사려 깊음을 더한다.

사람들과 일 사이,

오해와 이해 사이를 조율하느라 미세하게 진동했던 감정들이다.


가끔은 웃음 뒤에 감춰진 자기비판도 한 방울씩 떨어뜨린다.

회의실 끝자리에서 혼자 끄적인 메모,

‘이건 아닌데’라고 중얼거리며 조용히 닫은 창,

그런 장면들로 추출된, 말 없는 반성의 농도.


그리고 잔을 채우는 건 ‘시간’이다.

쉐이커 없이 흔들지 않고,

긴 시간 동안 우려낸 감정.

흔들지 않았기 때문에 탁하지 않고,

빠르게 섞지 않았기에 맑다.

이 잔은 무르익는 것을 기다릴 줄 안다.


마지막으로, 꼭 말하지 않아도 전해지는 진심 한 방울.

그건 따르는 사람만이 넣을 수 있는 유일한 재료다.


멘티스 쉐어는 마시는 이를 위한 잔이 아니다.

이 잔을 따르는 사람,

건네는 사람,

그리고 그 사람의 조용한 뒷모습을 오래 남긴다.


그래서 이 칵테일은,

내가 과거의 나에게,

그리고 지금의 당신에게

조심스레 내어놓는 보이지 않는 마지막 한 잔이다.


누군가는 이 잔을 마시고

자신만의 레시피를 만들어낼지도 모른다.

그리고 언젠가,

당신 또한 누군가에게

자신의 멘티스 쉐어를 따르게 될지도.


그렇게 이 잔은,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시작이 된다.


짠.



다 마신 뒤, 처음의 온도를 깨닫게 되는 술 _ 가장 조용한 위로는, 가장 나중에 온다


마시지 못해도, 느낄 수 있는 잔.

이건 당신의 이야기를 위하여 따라낸,

가장 조용하고 진한 술 한 잔.



STYLE

논알코올·무가니쉬

감정 숙성형 시그니처 칵테일

따르는 이의 마음이 더 오래 남는 잔



GLASS

기하학 문양을 새긴 소서 글라스

향을 머금는 튤립형 코냑 글라스


INGREDIENTS

30ml 인내의 농축액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날들에서 증류한 마음

20ml 사려 깊음의 정제액
오해와 이해 사이에서 조심스레 걸러낸 태도

10ml 웃음 뒤의 자기비판
익숙한 척 웃으며 견딘 회의실 끝의 짧은 침묵

1 tsp 시간이라는 정제수
오래 둘수록 더 맑아지는 감정의 농도

1 drop 진심
꼭 말하지 않아도 전해지는 마음 한 방울



METHOD

• 쉐이커 없이, 긴 시간과 경험으로 자연 숙성 (No shake)

• 온도는 방 안의 공기, 분위기는 상대의 표정에 맞게



SERVING NOTE

• 마시기 위함보다 건네는 사람의 호의로 서빙된

• 향은 천천히 감돌고, 맛은 기억으로 맴돌며

• 다 마신 뒤에야, 비로소 초심을 부르는 술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