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12지 UXers 11화

닭 — 명확성과 질서

질서는 예측 가능성을 만들고, 명확성은 신뢰를 만든다

by UX민수 ㅡ 변민수


닭은 왜 시간을 알리는 존재가 되었는가


닭은 매일 새벽 같은 시간에 울었다. 아직 해가 뜨지 않아도, 그는 어김없이 아침을 알렸다. 동양에서는 닭을 ‘예지’의 상징으로 여겼고, 12간지에서는 ‘질서’와 ‘규율’을 나타내는 동물로 해석한다. 닭의 울음은 ‘시작의 신호’이자, 하루의 리듬을 정돈하는 질서의 출발점이었다.


UXer가 설계하는 사용자 경험에서도 이 ‘리듬과 신호’는 매우 중요하다. 어디서 시작하고, 어디로 가야 하며, 지금 어디에 있는지를 사용자가 명확하게 파악할 수 있어야 한다. 사용자가 길을 잃지 않도록 도와주는 구조, 정보의 질서 있는 배열, 일관된 패턴. 이러한 감각이 바로 UX의 닭이다.



명확성은 사용자의 불안을 줄인다


서비스가 복잡해질수록, 사용자는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불안을 느낀다. 이 불안은 이탈로 이어진다. UXer는 명확한 흐름과 선택지를 통해 사용자의 불안을 해소해야 한다. 닭의 울음소리가 하루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였다면, 명확한 UX는 사용자의 다음 행동을 알려주는 길잡이다.


사용자가 예측할 수 없는 UX는 혼란을 유발한다. 반대로 흐름이 예측 가능할수록 사용자는 스스로를 신뢰하며 다음 단계를 이어갈 수 있다. 예측 가능성은 단지 결과를 아는 것이 아니라, 흐름을 감각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설계하는 일이다.



Predictability — 질서 있는 구조는 보이지 않는 안내선이다


UX에서 질서란 단지 예쁘게 정돈된 화면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사용자의 흐름을 예측 가능하게 만드는 안내선이고, 사용자가 헤매지 않게 도와주는 은밀한 나침반이다. 정보가 어디에 있고, 무엇을 먼저 보고, 어떤 순서로 행동해야 하는지. 모든 것이 흐름에 따라 배치되어야 한다.


질서 있는 UX는 화면에서뿐 아니라 행동의 순서에서도 드러난다. 회원가입, 탐색, 구매, 설정, 탈퇴. 각 여정의 단계가 명확히 구분되고, 연결되어야 한다. UXer는 이 흐름을 디자인하는 사람이다. 닭처럼 매일 같은 시간에 울 수 있는 정직함과, 그 울음이 모든 것을 깨우는 명료함을 함께 갖춰야 한다.



Cognitive Anchoring — 기준점이 있기에 길을 잃지 않는다


닭의 울음은 사람들에게 하루의 기준점을 제공했다. 그것은 단순한 신호가 아니라, 시간 속에 고정된 정서적 앵커였다. UX에서도 마찬가지다. 사용자는 새로운 화면에 들어섰을 때,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앞으로 무엇이 펼쳐질지를 감지하고 싶어 한다. 이때 필요한 것은 복잡한 안내가 아니라, 하나의 기준점이다.


UXer는 반복적이고 예측 가능한 기준 요소들을 화면 곳곳에 배치함으로써 사용자의 방향 감각을 돕는다. 예를 들어 항상 같은 자리에 위치한 홈 버튼, 반복되는 카드 구조, 주요 네비게이션이 놓이는 익숙한 위치. 이러한 앵커들은 정보 과부하 속에서도 사용자의 흐름을 붙잡아 준다. Cognitive Anchoring은 기능이 아니라 감각의 좌표다. 닭이 매일 제자리를 지켰던 것처럼, UX는 사용자에게 감각적으로 ‘길을 잃지 않을 수 있는 기준’을 제공해야 한다.



기준점이 있기에 길을 잃지 않는다


예측 가능성은 반복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사용자는 정보를 일일이 기억하지 않아도, 익숙한 기준점을 통해 흐름을 감각적으로 이어간다. 이는 일종의 ‘인지적 정박(Cognitive Anchoring)’이다. 닭이 언제나 같은 시간, 같은 자리에서 울며 하루의 출발점을 만들었듯이, UX도 사용자 감각 안에 위치와 방향의 기준점을 심어야 한다.


홈 버튼이 항상 같은 자리에 있는 이유, 주요 기능이 일정한 레이아웃에 반복적으로 배치되는 이유는 바로 이 기준점 때문이다. 이러한 앵커는 사용자가 화면을 읽지 않고도 행동을 예측하게 만들며, 불확실한 흐름 속에서도 중심을 잡도록 돕는다. UXer는 이 기준을 설계하는 사람이다. 사용자에게 ‘지금 어디에 있고, 어디로 가야 할지’를 말없이 알려주는 구조. 그것이 닭이 주는 UX의 신호다.



[사례] 조용한 반복이 UX를 단단하게 만든다


반복성과 예측 가능성은 눈에 띄지 않게 UX를 안정시킨다. 사용자가 불편함 없이 매일 사용하는 서비스, 피로감 없이 시간을 보내는 앱. 그런 경험의 뒤에는 반드시 일관된 리듬이 있다. 다음 사례들은 흐름의 질서를 UX로 구현한 대표적인 예들이다.



Google Calendar — 일정이 아닌 시간을 정돈하다


Google Calendar는 단순히 일정을 기록하는 도구를 넘어서, 사용자의 하루를 ‘질서 있게 나누는’ 시스템이다. 시간 블록, 색상 구분, 반복 설정, 알림의 흐름 등은 사용자가 무의식적으로 하루를 구조화할 수 있게 도와준다.


UX는 단지 기능이 아니라 ‘시간의 흐름’을 시각화하는 도구가 된다. 닭처럼 하루의 리듬을 만들어주는 UX의 전형이다. 각 요소는 조용하지만 명확하게 사용자 행동을 유도하고, 반복되는 일상을 부드럽게 정돈한다.



Apple iOS 설정 — 정보 구조의 정석


iOS의 설정 앱은 정보량이 많은데도 불구하고 사용자가 길을 잃지 않는다. 그 이유는 ‘정보의 계층화’와 ‘카테고리화’ 덕분이다. 항목별로 묶인 구조, 반복되는 인터페이스 패턴, 검색 기능과의 조화는 사용자에게 일관된 방향성을 제공한다.


UXer가 어떻게 질서를 시각적으로 설계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대표 사례다. 사용자는 스스로 어느 카테고리에 어떤 항목이 있을지를 감각적으로 인지하며, 그 질서에 따라 다음 행동을 예측한다. 이것이 명확성과 예측 가능성이 UX 흐름을 강화하는 방식이다.



[사례] Medium — 텍스트의 흐름을 해치지 않는 질서


Medium은 글을 중심으로 한 플랫폼이지만, 디자인이 글을 방해하지 않는다. 헤더, 본문, 인용, 캡션, 댓글까지 모든 텍스트가 명확히 구분되면서도 시각적으로 흐름을 유지한다.


흰 여백과 글자 크기의 미묘한 조절로 사용자의 읽기 리듬을 방해하지 않는다. 질서를 통해 몰입을 이끌어내는 설계다. 닭의 울음처럼, 보이지 않지만 구조가 전체 경험을 이끄는 UX다. 무언가 특별히 눈에 띄지 않아도, 그 질서는 감각에 남는다.



[개인] AI 시대, 명확성과 질서는 더욱 귀해진다


I는 많은 정보를 빠르게 보여줄 수 있다. 하지만 정보가 많을수록 사용자는 방향을 잃기 쉽다. 예측 불가능한 흐름, 눈앞에 쏟아지는 결과들, 불투명한 인터페이스는 혼란을 가중시킨다.


UXer는 이런 복잡함 속에서 명확함을 만드는 사람이다. 정보를 덜어내고, 구조를 명확히 하며, 사용자의 다음 행동을 도와주는 길잡이. AI가 복잡함을 만들 때, 인간은 질서를 만들어야 한다. 사용자 경험의 중심에는 언제나 사람의 감각이 있다.



[조직] 실무에서 닭처럼 일한다는 것


닭처럼 일한다는 건, 정해진 시간에 울고, 사람들이 방향을 잃지 않게 도와주는 존재가 되는 일이다. 정보구조(IA)를 설계하고, 인터페이스에 일관된 규칙을 적용하며, 사용자의 흐름을 미리 상상하는 감각.


브랜딩이나 비주얼보다는, 사용자 흐름이 끊기지 않도록 다듬는 정교한 조율자. 반복되는 테스트와 사용자 피드백을 통해 구조를 안정시키고, 언제나 제자리에 있는 듯한 UX를 만드는 사람. 그는 단단하고 조용하게 일한다. 그의 리듬이 사용자 여정 전체를 이끈다.



흐름은 명확할수록 더 멀리 간다


UX의 역할은 사용자를 인도하는 것이다. 닭은 늘 제시간에 울었고, 사람들은 그 울음을 듣고 하루를 시작했다. 그처럼 UXer는 화면을 설계하는 사람 이전에, 경험의 리듬을 설계하는 사람이다.


정보의 정돈, 흐름의 예측 가능성, 일관된 사용성. 그것이 신뢰를 만든다. 디자인의 빛나는 한 컷보다, 사용자의 머릿속에 흐름이 남는 UX. 그 중심에 닭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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