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요한 건 UX가 아니라 사용자 혹은 고객이니까
안녕하세요. 저는 디자인(d) 비전공자이며 현재 졸업을 앞둔 27살 취준생입니다. 그동안 UX에 관심이 생겨 관련 강의도 듣고, Figma 등 툴도 익히며 포트폴리오를 천천히 준비해 왔습니다. 그런데 요즘엔 취업 시장을 보다 보니 “UX가 나랑 진짜 잘 맞는 일일까?”라는 고민이 점점 커지고 있어요. 아무래도 실무 경험이 없다 보니 상상만으로 직무를 판단하는 게 어렵기도 하고요. UX 외에도 브랜드 디자인이나 마케팅 직무에도 약간의 흥미가 있어서 이도저도 아닌 상황이 지속되고 있습니다.
멘토님 책을 읽으며 ‘문제를 정의하고 해결하려는 자세’가 UX의 핵심이라는 것이 와닿았데요, 막상 현실의 벽 앞에서는 그 자세만으로 부족한 느낌도 들어요. 지금은 무엇을 선택해도 확신이 없을 것 같은데, 이렇게 명확하지 않은 상태에서 어떤 기준으로 직무를 결정하고 취업 전략을 세우면 좋을까요? 제 상태로 봤을 때 어떤 접근이 도움이 될지 조언 부탁드립니다!
➥ UX를 중심으로 취업을 준비해 오셨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확신은 줄고 막막함이 커진다는 말씀, 충분히 공감이 됩니다. 특히 디자인(d) 비전공자로서 스스로의 적합성을 검증할 기회도 적고, 포트폴리오를 꾸려나가는 과정도 버거울 수밖에 없겠지요. 질문의 본질은 ‘UX를 계속 붙잡고 가야 할까’에 대한 갈등이자, 다른 길이 더 잘 맞을 수도 있지 않겠느냐는 자문이라 느껴졌습니다. 이 고민에 대해 경험자의 입장에서 솔직히 드릴 수 있는 말씀들을 정리해 보겠습니다.
지금 단계에서 확신이 없다는 건 아주 자연스러운 상태입니다. UX든 아니든, 대부분의 직무는 경험을 해보지 않으면 본질을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준비를 하면서도 이게 진짜 나랑 맞는 일인지 자꾸만 마음이 흔들린다면, 그것은 어쩌면 본능적으로 나 자신에게 계속해서 ‘적합성’을 검토하고 있다는 의미일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UX가 아닌 것 같다’는 감정이 곧 포기해야 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오히려 이 시점에서 중요한 건, 직무 자체에 대한 집착보다는 나에게 잘 맞는 일의 조건이 무엇인지 하나씩 실험해 보는 자세입니다. UX가 아니더라도, 비슷한 역량을 요구하는 브랜드 디자인이나 마케팅과 같은 직무에 잠시 발을 들여보는 것도 유의미한 과정이 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회사 그 자체보다도 마치 옷처럼 일을 한 번 입어본다는 마음가짐으로 경험을 할 수 있으셨으면 좋겠어요. 그럴 수 있는 기회조차 어렵기에 보이는 주저 말고 도전하시길 조언드립니다.
UX는 ‘분야’이기보다는 ‘접근 방식’에 가깝다고 볼 수 있습니다. 때문에 실제 업무로 들어가면 예상과 달리 굉장히 다양한 일을 하게 됩니다. 어떤 조직에서는 리서치만 담당하기도 하고, 어떤 조직에서는 UI 작업까지 다 하기도 하며, 일부 조직에서는 마케팅이나 기획과 밀접한 연결을 가지기도 합니다. 즉, UX라는 이름 아래 있지만 실제로는 수많은 스펙트럼이 존재하고, 그래서 처음 입문자들이 혼란을 겪는 것도 당연한 현상입니다.
그렇기에 UX가 아니라면 안 된다고 생각할 필요는 없습니다. 본인의 관심사나 강점이 리서치보다는 콘텐츠 기획에 가깝거나, 시각적 브랜딩에 더 큰 흥미가 있다면, 이들을 동일선 상에서 전략적으로 보다 명확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직무를 우선 시도해 보는 것이 더 나은 선택이 될 수도 있습니다. 쉽게 말해 찍먹이어도 좋다는 것입니다.
제가 가장 강조하고 싶은 부분은, “직접 해보기 전까진 절대 모른다”는 것입니다. UX에 대한 공부나 툴 사용, 강의 수강은 입문에 좋은 자양분이 되지만, 실무와는 너무나도 다릅니다. 실무를 경험해 본 순간, 어떤 일은 생각보다 잘 맞고, 어떤 일은 도무지 감정이 동하지 않으며, 어떤 역할은 나의 장점을 잘 살릴 수 있는 통로가 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지금처럼 갈피가 잡히지 않을 땐, 스타트업이나 작은 조직에서라도 짧게라도 실무 경험을 해보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브랜드 디자인, 마케팅 기획, 콘텐츠 운영 등 관심 있는 다른 직무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경험이든 지금 시점에서는 ‘맞는지 아닌지’를 확인할 수 있는 실험 재료가 됩니다. 이렇게 경험을 쌓다 보면, 생각보다 빨리 나와 맞는 일에 대한 감이 생깁니다.
막말로 UX가 아니어도 괜찮습니다. 실제로 UXer로 시작했다가 마케터가 된 분도 있고, 브랜드 기획 쪽으로 넘어간 분도 있고, 콘텐츠 디자인 쪽에서 본인의 영역을 확장해 나가는 분들도 많습니다. UX에서 익힌 관점과 사고방식은 의외로 다양한 직무에서 환영받습니다. 문제를 정의하고 사용자 중심으로 생각하는 역량은 브랜드 전략에도, 콘텐츠 기획에도, 심지어 비즈니스 모델 설계에서도 유효하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처음부터 마케팅으로 진입했다가, 사용자 관점의 기획에 강점을 발견해 다시 UX로 돌아오는 분도 있습니다. 그냥 개발자 분이 모종의 기회를 타고 UX로 넘어오기도 합니다. 중요한 것은 직무명보다, 어떤 맥락과 문제 안에서 나의 강점이 살아나는지를 파악하는 것입니다. 그걸 위해서는 두세 번의 우회도 얼마든지 허용해도 괜찮습니다.
취업 준비가 막막하고 불안할수록, 본능적으로 ‘정답’처럼 보이는 길을 찾고 싶어 집니다. 그러나 현실은 누구에게도 똑같은 정답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UX가 잘 맞는 사람도, 그 안에서도 또 다양한 갈래로 흩어지고 있고, 마케팅도 디자인도 각자 그 속에서 자기만의 방식으로 경로를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지금은 그 모든 가능성에 스스로를 열어두는 것이 필요합니다. 처음부터 ‘딱 떨어지는 확신’은 오지 않을 수 있습니다. 대신 조금씩, 단기 인턴이든 프리랜서 경험이든, 협업 프로젝트든 무엇이든 시도하면서 나의 반응을 관찰해 보세요. 무엇을 할 때 시간이 빨리 가고, 어떤 피드백을 받을 때 가장 즐겁고, 어떤 포인트에서 스트레스를 받는지. 그런 감정의 흐름이 진짜 커리어의 방향을 알려주는 나침반이 되어줄 것입니다.
조금씩 해보며 감을 잡아가되, 너무 빠르게 결론 내려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현실이 녹록지 않다면 UX가 아니어도 괜찮습니다. 오히려 UX 덕분에 더 다양한 가능성을 본 것이라면, 그 자체로 이미 유의미한 탐색의 과정이었을 겁니다. 멘티님의 고민은 지금 아주 자연스럽고, 동시에 아주 건강한 고민입니다. 언제든 또 물어보세요. 함께 길을 찾아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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