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과 UX를 술래로 둔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현재 2년 차 중소기업 웹기획자로 근무 중인 29살 직장인입니다. 원래는 서비스 전체의 흐름을 설계하는 일에 매력을 느껴 기획 직무를 선택했지만, 일을 하다 보니 사용자 입장에서의 세심한 고민과 인터뷰, 페르소나 설계, 저니맵 제작 등 UX 리서치 과정에 점점 더 재미를 느끼게 되었습니다.
요즘엔 Figma 등 디자인 툴을 조금씩 만져보면서 직접 UI 구성도 해보고 있는데요, 그 과정이 마냥 어렵기보다는 꽤 즐겁더라고요. 그래서 UXer 쪽으로 커리어를 전환하고 싶은 욕심이 생겼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제 경력이 애매하게 기획 중심이라, UX로 완전히 옮기자니 포트폴리오도 부족하고 한편 디자이너(d)로서의 정체성도 뚜렷하지 않다는 점이에요. 주변에선 제 강점이 기획과 전략적인 사고인 만큼 PM으로 가는 게 낫지 않냐는 조언도 종종 듣고요.
멘토님, 저는 지금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까요? 서비스 전체를 보는 기획자로 계속 가는 게 맞을지, 아니면 더 끌리는 UXer로 전환하기 위해 지금부터 어떤 준비를 하면 좋을지 진지하게 고민 중입니다. 혹시 비슷한 고민을 해보셨거나, 현업에서 이런 경로를 선택한 분들이 계시다면 어떤 판단 기준으로 방향을 잡았는지도 궁금해요. 조언 부탁드립니다!
➥ 정답이 없다는 것을 알지만, 목이 마른 당사자 입장에서는 보이는 바닷물이라도 마시고 싶은 심리는 너무나도 당연하고 또 이해가 갑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서비스 기획자라고 하지만 UX 기획이라고 불리거나 실질적으로 UI를 설계하고 구성하는 게 메인인 업을 찾으시는 게 옳지 않나 생각됩니다.
멘티님의 고민은 요약하자면 "서비스 기획자로 계속 갈지, 아니면 UXer로 커리어 전환을 할지"의 기로에 서 있는 상황으로 보입니다. 현재까지의 경력은 기획 중심이지만, 사용자 중심의 리서치와 UI 설계, 디자인(d) 툴을 통한 표현에도 흥미를 느끼고 계신 점이 인상 깊습니다.
우선 멘티님이 경험한 기획 업무는 분명 UX 업무와도 연결고리가 있습니다. 특히 서비스 흐름, 구조, 전략을 고민한 경험은 리서치 기반 UX 기획 혹은 정보구조 설계 영역에서 매우 유용하게 작용할 수 있습니다. 주변에서 PM을 추천하는 이유도 이러한 전략적 사고 능력 때문일 것이며, 이는 UX 조직 내에서도 프로젝트 리딩이나 퍼실리테이션 능력으로 연계될 수 있습니다.
UXer로의 전환이 단순히 디자인(d) 스킬을 익히는 것만으로 이뤄지진 않습니다. 무엇보다 '어떤 UXer가 될 것인지'에 대한 정리가 중요합니다. 디자인(d) 툴을 다루며 UI를 그리는 데 재미를 느끼셨다면 비주얼 설계에 가까운 역할을 목표로 할 수도 있겠고, 사용자 조사, 저니맵, 페르소나 구성 등 리서치 중심의 활동에서 더 큰 흥미를 느꼈다면 UX 리서처나 컨셉 설계 쪽이 더 적합할 수 있습니다. 이 ‘디자이너(d?/D?)’라는 명칭 아래 다양한 역할이 존재하기 때문에, 막연히 커리어를 바꾸기보다는 자신이 흥미와 강점을 느끼는 영역이 무엇인지 파악하는 것이 먼저입니다.
이와 연계하여 경력 전환 과정에서 포트폴리오의 방향성은 매우 중요합니다. 이미 실무에서 기획 경험이 있다면, 이를 기반으로 UX적 사고와 접근을 강조한 포트폴리오를 구성해 보세요. 예를 들어, 프로젝트 중 사용자 관점에서 고민했던 구조 변경 사례나 사용자 흐름을 개선하기 위한 기획적 판단 등을 스토리텔링 방식으로 구성해 볼 수 있습니다. 기획을 하기 위해서는 시장 현황이나 경쟁 분석, 여러 비즈니스 환경이 이유가 되곤 하는데, 그중에서도 사용자를 중심에 두었던 꼭지들 위주로 포트폴리오를 구성해 보는 것입니다. 꼭 고도화된 UI 시안을 포함하지 않더라도 충분히 기획 역량이 돋보이는 UX 포트폴리오가 될 수 있습니다.
누차 강조하고자 하는 바는, 어떤 '디자이너(d?/D?)'인지에 모든 게 달려있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UX 업무는 ‘해봐야 안다’는 점에서, 스펙이나 학습 중심의 접근보다 실무 경험을 통한 탐색이 효과적입니다. 대기업 중심의 UX 조직은 역할이 분업화되어 있어 특정 역량만 요구되는 경우도 많지만, 스타트업이나 에이전시는 오히려 기획부터 조사, 시안 구성까지 넓은 영역을 경험할 수 있어 커리어 전환 초기에는 더 유리할 수 있습니다. 실제 많은 현업 UXer들이 '작은 조직에서의 종합적 실무 경험'을 통해 자신에게 맞는 영역을 찾았다고 이야기합니다. 멘티님처럼 기획을 해본 사람이 UX를 경험하면 조직 내에서 소통과 조율 능력까지 더해진 하이브리드형 인재로 성장할 여지도 많습니다. 지금은 아리송할 수 있어도 경력이 더 쌓이면 분명히 도움이 크게 될 경험임에 틀림없습니다.
UX 리서치와 디자인(d)적 감각 모두에 흥미를 갖고 있다면, 어떤 한 축을 우선 심화시키는 것도 전략이 될 수 있습니다. 당장은 이 넓은 스펙트럼을 다 해내는 역할이 많지 않기 때문이죠. 예컨대, 리서치 기반의 UX기획자로 포지셔닝을 하되, 디자인(d) 표현은 보조 역량으로 키워두는 식입니다. 반대로 시각적 UI 구현에 더 재미를 느낀다면, 그것을 중심으로 하되 리서치나 전략적 사고가 가능하다는 점을 부각해 볼 수 있습니다. 후자의 경우는 디자인(d) 전공자 못지않은 디자인(d) 스킬업이 장차 필요할 순 있겠습니다.
멘티님이 언급한 “PM으로의 추천”은 단순히 현재 역량 기반의 현실적 조언일 수 있지만, PM과 UX는 서로 대립적인 커리어가 아닙니다. 오히려, UX에 대한 깊은 이해를 지닌 PM은 디지털 서비스 조직에서 매우 선호되는 인재상이기도 합니다. 그냥 쉽게 말하면, 멘티님께서 찾으시는 UX와 기획 사이에 있다고 볼 수 있는 직무이긴 합니다. 실무에서는 UX 팀과 협업하며 기획 방향을 설계하고, 사용자 중심의 판단을 내려야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UXer로서 커리어를 시작해 이후 제품 전략에 관심을 갖고 PM으로 전환하는 경우도 종종 있습니다. 따라서 지금 시점에서 중요한 것은 ‘UX 커리어를 시작해 볼 기회’이지, UX냐 PM이냐의 확정이 아닙니다. 커리어는 선형이 아니며, UX로 시작해도 이후 PM, BX, CX, 전략기획 등 다양한 방향으로 전개될 수 있습니다.
제 조언은 일단 보유한 프로젝트와 포트폴리오 경험을 통해 가장 어필이 가능한 방향으로 나 자신을 포지셔닝해서 서비스 기획에서는 조금 벗어나 UX나 PM을 겨냥한 업으로 이직을 해보고 점차 한발 한발 원하는 바를 찾아 진격해 나아가는 방법입니다. 한 번에 다 먹으려 하지 않는다가 포인트입니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처럼 조금씩 조금씩.
정체성이 불분명하다는 멘티님의 고민은 전환기에서 누구나 겪는 당연한 과정입니다. 오히려 ‘무엇을 좋아하는지’ 명확히 느끼고 있다는 점에서 방향은 어느 정도 잡혀 있는 상태라고 볼 수 있습니다. 현업 UXer 중에는 디자인(d) 툴을 잘 다루지 못해도, 사용자 이해와 문제정의, 설득력 있는 스토리텔링으로 승부하는 사람들도 제법 있습니다. 경로는 그만큼 다양합니다.
반대로 훌륭한 비주얼을 구현해 내지만 사용자와의 접점을 깊이 고민하지 않아 어려움을 겪는 이들도 있습니다. 멘티님은 전략적 사고 기반의 기획 역량과 사용자 관점에 대한 관심을 함께 갖춘 상태이므로, 이는 매우 탄탄한 출발점이라 할 수 있습니다.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지금 단계에서는 '디자인(d)적 감각을 조금씩 키워나가되', 자신이 잘하는 기획 능력을 기반으로 포지셔닝하는 전략이 적절해 보입니다. 리서치 인턴, UX 관련 교육 프로젝트, 외주라도 기획 기반의 UX 역할을 수행해 볼 기회를 조금씩 쌓아가세요. 그렇게 만들어진 작은 프로젝트들을 하나의 흐름으로 엮으면 포트폴리오로도, 정체성 확보에도 도움이 될 것입니다.
UXer로의 전환은 충분히 가능한 길이며, 지금의 애매한 경력은 단점이 아니라 확장성 있는 강점이 될 수 있습니다. 제 조언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느리게 가라'입니다.
UX와 접점이 있는 실무를 통해 감각을 익히고, 점차 UX 비중을 키워나가는 방식도 괜찮습니다. 중요한 건, 자신이 UX를 통해 어떤 사용자 경험을 만들고 싶은지, 어떤 가치를 전달하고 싶은지를 계속 질문하며 찾아가는 부지런함입니다. 그 질문을 고민하며 만든 경험의 축적이 곧 멘티님의 UX 정체성이 될 것입니다.
제 답변이 방향 설정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기를 바랍니다. 추가적인 고민이 생기면 언제든 편하게 이야기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