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로를 너무 좁게 정의하지 않고 준비하는 것은 전략이 아니다
안녕하세요 멘토님! UX 관련 브런치와 멘토님의 책을 읽으며 진로 고민에 조금씩 실마리를 얻고 있는 요즘입니다. 저는 산업디자인을 전공했고, 졸업 전부터 UX 분야로 진로를 잡아 포트폴리오와 툴 학습, UX 관련 사이드 프로젝트까지 준비해왔습니다.
그런데 막상 채용을 시작하려 하니 고민이 됩니다. UX 신입 채용 자체가 많지 않고, 있어도 대부분 경력자 우대이거나 실무 중심의 역량을 요구하더라고요. 그래서 ‘정말 UX만 바라보고 취업을 준비해도 괜찮은 걸까?’, ‘관련 직무(서비스 기획, BX, 리서치 등)로 넓혀 지원해야 하나?’ 하는 고민이 깊어집니다. 저는 UX에 매력을 느끼고 커리어도 그쪽으로 쌓고 싶지만, 지금은 현실적인 방향 설정이 필요해 보여서요.
혹시 멘토님께서 보시기에 신입 UX 지원자가 본인의 진로를 너무 좁게 정의하지 않고 준비하려면 어떤 전략이 좋을까요? 또 UX 관련 직무 확장의 범위를 어디까지 생각해봐야 할지 조언을 듣고 싶습니다.
➥ 멘티님 입장이 되어봤던 저 역시 어떤 입장에서 어떤 관점에서 이같은 질문을 주셨을지 십분 이해가 됩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선 짚고 넘어가야 할 대목은 위에서 주신 다음의 물음입니다.
신입 UX 지원자가 본인의 진로를 너무 좁게 정의하지 않고
준비하려면 어떤 전략이 좋을까요?
이 질문을 이해하기 쉽게 제가 조금 바꿔볼게요. "신임 대한민국 대표팀 감독이 본인의 상대팀을 다음 대전 상대로 너무 좁게 정의하지 않고 준비한다는 것은 어떤 측면에서 좋은 전략일까요?" "기념일에 남자친구 선물을 주고 싶은데 상대를 남자친구로 너무 좁게 정의하지 않고 일반적인 남자로 두고 준비하게 되면 어떤 점에서 전략적으로 이로울까요?"
이제 보이실까요? 진로를 좁히지 않는 것과 '전략'이라는 단어는 어울리지 않습니다. 그러니 둘 중 하나만 취해야 할텐데, 아무래도 전략을 원하실 듯하니 그렇게 되면 진로의 범위를 좁혀야 한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직무의 외연을 넓히려는 고민은, 본질적으로 불확실한 상황에 대한 불안에서 비롯된 자연스러운 반응입니다. 특히 신입 지원자 입장에서는 기회 자체가 적고, 그마저도 경력자 중심의 요구가 많다 보니 'UX만 바라보고 있어도 괜찮을까?'라는 생각이 드는 건 당연한 일입니다. 그래서 종종 더 많은 기회를 얻기 위해 직무의 스펙트럼을 넓혀보려는 시도를 하게 됩니다. 마치 한 마리의 물고기를 위해 낚시대를 드리우기보다, 여러 마리를 한 번에 잡고자 그물을 펼치는 전략과 유사한 심리입니다. 언뜻 보기에 합리적인 선택 같지만, 실제로는 오히려 정교함을 잃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물 전략의 가장 큰 문제는 ‘무엇을 잡으려는지’가 불분명하다는 데 있습니다. 다양한 직무에 지원하는 것은 곧 그만큼 ‘나’라는 사람의 이미지가 모호해질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UX, 서비스 기획, BX, 리서치 등 인접한 영역이라고는 하나, 이들은 각기 다른 역할과 기대치를 가진 영역이며, 기업은 분명한 목적이 있어 특정 직무를 채용하려고 합니다. 결국 범위를 넓힌다는 것은 그 목적에 맞춘 설득력 있는 지원보다는, 단순히 많은 가능성 앞에 나를 풀어놓는 시도가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지원은, 지원자 자신이 어떤 문제를 해결하고 싶은 사람인지조차 전달하지 못한 채 끝나기 쉬운 법입니다.
채용은 결국 사람이 사람을 선택하는 과정입니다. 하지만 그 선택은 단지 ‘좋은 사람’이기 때문이 아니라, ‘필요한 사람’이기 때문에 일어납니다. 그래서 회사는 매우 분명한 문제의식을 갖고 채용 공고를 냅니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특정한 결을 가진 문제 해결자이며, 아무 문제에나 대처할 수 있는 사람보다, 해당 문제를 정확히 이해하고 이미 관심과 준비가 된 사람입니다.
이 맥락에서 ‘취업도 UX처럼 접근해야 한다’는 말이 나옵니다. 회사를 하나의 Persona로 설정하고, 그들이 어떤 페인포인트(pain point)를 갖고 있는지, 어떤 니즈(needs)를 가지고 채용에 나섰는지를 역으로 분석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마치 우리가 UX 리서치를 통해 사용자의 내면을 읽고, 거기에 맞는 솔루션을 제시하듯이, 취업에서도 그 역할을 자신이 해낼 수 있어야 합니다. UX라는 직무 자체가 공감력과 문제해결력, 그리고 설득력의 연장선상에 있는 만큼, 이 직무를 준비하는 사람에게도 취업 전략은 이와 같은 방식으로 설계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많은 이들이 ‘넓게’ 지원하면 기회도 많아질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실제 채용 현장에서는, 범용적인 인재보다 ‘정확히 맞는 사람’이 더 환영받습니다. 기업의 입장에서 ‘이 사람은 우리를 정확히 이해하고 있다’는 확신이 드는 지원자가 훨씬 신뢰를 얻을 수 있습니다. 반대로, UX도 지원하고 서비스 기획도 지원하고 BX도 한다는 메시지는 때로 ‘아직 본인이 무엇을 하고 싶은지 모르는 상태’라는 인상을 줄 수 있습니다.
물론 사람마다 탐색의 시기는 다르고, 처음부터 모든 것이 명확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경험을 통해 방향성을 좁히고, 그 좁혀진 방향 안에서 날을 벼려야 합니다. 즉, 직무 확장이 필요하다면 그것은 '전략적 시도'여야 하지, '불안에 대한 반작용'이어선 안 됩니다. 기회가 닿는 일을 경험하며 확신을 발견하고, 그 확신을 기반으로 설계된 커리어 전략만이 비로소 의미 있는 설득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UX도, 취업도 결국은 '정확한 문제 정의와 맞춤형 해결안'이 핵심입니다. 그물은 넓을 수 있지만, 명확하게 겨냥된 바늘 하나만큼 강한 설득력을 주지는 못합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정답’이 아니라 ‘맥락’입니다. 내가 지금 준비하는 직무, 포지션, 기업군은 어떤 상황과 맥락을 가지고 있는가? 그 안에서 나는 어떤 포인트를 공략해야 설득력이 생길 수 있을까? 이러한 고민은 단지 취업을 위한 전술이 아니라, 장기적으로 나의 UX 커리어를 설계하는 데도 꼭 필요한 전략적 사고이기도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이 시점에서 너무 많은 선택지를 열기보다, 작은 기회를 하나라도 제대로 해석하고, 그 안에서 의미 있는 경험을 쌓아나가길 권합니다. 무언가 하나라도 직접 해보며, 마음이 어느 방향으로 기울어지는지를 체감하고 나면, 그때부터는 자연스럽게 확신이 생기고, 전략은 그 확신을 바탕으로 좁고 깊게 다듬어질 수 있습니다.
UX라는 커리어는 그렇게, 경험을 통해 방향이 정해지고, 방향 속에서 전략이 세워지고, 전략이 기회를 이끌어내는 식으로 움직입니다. 너무 서두르지 않으셔도 됩니다. 방향이 불분명한 상태에서 여러 개의 그물을 던지는 대신, 기회가 닿는 작은 낚시터에서, 나만의 낚싯바늘을 가다듬는 시간. 그것이 지금, 멘티님에게 필요한 여정일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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