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어봐야만 알 수 있는 것들에 관하여
쇼핑몰에서 옷을 고르다 보면, 마음에 쏙 드는 스타일이 눈에 딱 들어왔지만 하필 내 사이즈가 없을 때가 간혹 있다. 허탈해서 고민도 해보지만 안 맞는 사이즈를 살 수는 없다. 이런 일이 잦다고 맞춤옷만 입을 수도 없다. 행여 내게 맞는 사이즈가 없다는 이유로 거리를 알몸으로 나선다면 그날의 뉴스감이 될 것이다. 일반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어느 정도의 타협을 한다. 어쩔 수 없이 다른 옷을 고르거나, 일단 맞는 걸 입는다. 그것이 현실이다.
UX 취업도 그렇다. 하고 싶은 게 있는데, 나에게 맞는 딱 포지션이 없는 것 같다. 스펙이 좀 안 맞는 것 같고, 경력도 어필하기 다소 애매하다. 그렇다고 해서 사회로의 진출 자체를 포기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사회적으로 우리는 알몸을 금기시한다. 그래서 입는다. 조금 크든, 좀 작든, 때론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일단 걸쳐야 집 밖을 나설 수 있다. 이상적인 옷을 찾기 전에 사회적 맥락에서 통용되는 형태를 갖추는 것, 그게 먼저고기본이다.
주니어들은 커리어 초반부터 완벽하게 ‘자기다움’을 표현하고 싶어 한다. 나 또한 그랬다. 그래서 나를 가장 잘 나타낼 수 있는 직업, 가장 창의적일 수 있는 환경, 가장 몰입할 수 있는 분야를 찾고 또 찾는다. 그러나 그런 일은 처음부터 주어지지 않는다. 마치 첫 옷이 런웨이용 코디일 수 없듯, 첫 직업도 인생의 완성형일 수 없다.
대부분의 패션 감각은 뭐라도 입어보는 데서 시작될 것이다. 처음엔 누구나 ‘멋’이 아닌 ‘기능’에 가까운 걸 입을 것이다. 몸을 가리고, 활동을 가능하게 하고, 계절에 맞게 대응할 수 있는 그런 옷들. 취업 역시 마찬가지다. 내가 진짜 원하는 일을 발견하기 전, 일단은 세상과 연결될 수 있게 최소한의 형식부터 필요하다. 이걸 아쉬워하지 않아야 한다.
입기 전엔 늘 상상 속의 나만 있다. 머릿속에는 근사한 옷을 입은 내가 있고, 당당한 커리어를 쌓는 내가 있다. 하지만 상상은 현실을 통과하지 않으면 실체가 될 수 없다. 내게 어울리는 핏이 무엇인지, 어떤 재질이 나를 더 편하게 하는지, 어떤 색이 내 표정을 살리는지는 입어보기 전에는 알 수 없다. 경험을 통해서만 내게 맞는 옷을 알 수 있고, 마찬가지로 어떤 일이 나를 살리는지도 몸으로 겪어봐야 감이 온다.
우리가 옷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만들어가듯, 커리어 역시 경험을 통해 비로소 스타일을 갖춘다. 스타일은 취향이자 선택 같지만 사실은 시간과 누적의 결과다. 내가 지나온 길, 몸에 익힌 감각, 어울리지 않았던 것들까지 포함한 총체적 경험과 서사가 하나의 정체성으로 녹아서 만들어진다. 그러니 처음엔 어울리지 않을 수도 있다. 처음 입은 옷이 나를 돋보이게 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건 당연한 일이다. 오히려 그런 어색함을 통과하면서 나는 조금씩 나를 알아간다. 취업도 이와 다를 바가 없다.
자꾸 입다 보면, 더 잘 입을 수 있게 된다. 한 번 어울리지 않는 옷을 경험하면, 다음엔 덜 실수한다. 그렇게 나만의 스타일에 대한 이해가 차츰 쌓여 간다. 커리어도 그렇게 구축된다. 처음엔 어색했던 일이 시간이 지나며 익숙해지고, 나에게 맞는 형태로 주름 잡힌다. 내게 맞는 옷은 이렇듯 시간 또한 필요하다. 입을수록 내 몸을 기억하고, 나의 움직임을 따른다. 일도 그렇다. 처음부터 나와 딱 맞는 일이란 없다. 하지만 오래 하다 보면 나만의 방식으로 그 일을 해내게 된다. 일이 나에게 맞아지는 것도 있겠지만, 내가 그 일을 길들이는 셈이다. 가죽 구두처럼 말이다.
자기 계발이 유행하며 갓생이란 말도 나온 지 오래다. 영어, 자격증, 포트폴리오, 코딩, 심지어 퍼스널 브랜딩까지. 사람들은 열심히 스스로를 갈고닦는다. 마치 근육을 만들듯, 스스로를 탄탄하게 단련한다. 그건 분명 멋진 일이다. 하지만 보디빌딩 그 자체가 패션은 아니듯, 자기 계발이 곧 사회적 표현이 되지는 않는다. 아무리 멋진 근육을 만들어도 알몸으로는 밖에 나갈 수 없다. 그 위에 옷을 입어야 한다. 마찬가지로, 아무리 실력이 좋아도 그것이 드러나는 문법과 문맥, 즉 취업이라는 형식을 입혀내지 않게 되면 세상은 나를 알지 못한다.
많은 사람들이 “실력만 있으면 된다”라고 말하지만, 실력은 결국 어떠한 형태를 필요로 한다. 보이게 하는 포장, 전해지는 방식, 해석 가능한 문맥이 없다면 아무리 훌륭한 실력도 사회적으로는 무형의 상태로 남는다. 나는 이걸 연출이라고 표현한다. 내가 실력을 갖췄다면, 그 실력을 입고 밖으로 나가야 한다.
이 모든 게 취업이다. 그게 커리어다. 옷을 고르는 감각은 면접관의 몫이다. 그러다 지원자는 옷맵시를 이해해 자신다운 스타일링을 할 줄 아는 이어야 하는 것이다.
혼자 입는 옷은 자기만족만으르 충분하겠지만, 사람들의 시선이 얽힌 곳에서의 옷차림은 TPO라고 하는 사회적 규칙을 따른다. 그런 가운데 스타일을 챙기고자 한다면, 너무 튀지 않되 나를 드러낼 수 있어야 하고, 적당히 튀되 나를 감싸야한다. 그래서 혼자 입는 데는 한계가 있다. 누군가는 조언을 해주고, 누군가는 피드백을 주어야 더 나은 스타일을 취할 수 있다.
이런 조언 또한 옷을 입어본 사람만이 의미 있는 조언을 얻을 수 있다. 아무것도 입지 않으면 누구도 말을 걸기 어렵고 스타일에 관해 해 줄 조언도 모호할 수밖에 없다. 취업도 마찬가지다. 일단 회사라는 곳에 들어가야 경험이 생기고, 관계가 열리고, 방향이 바뀔 수 있다. 시작이 반인 것이다.
완벽한 옷을 고르려는 대신, 입을 줄 아는 사람이 되자. 패션은 입는 데서 시작된다. 커리어도 그렇다. 입기 전엔 알 수 없다. 어울릴지, 불편할지, 나를 드러낼지, 나를 가릴지. 알기 위해선 자꾸 입어봐야 한다. 스타일은 선택이 아니라 경험의 누적이다. 그러니 너무 오래 벗고 있지 말자. 나중에 잘 어울리는 옷을 만나기 위해서라도, 지금은 뭐라도 걸치고 또 걸치는 편이 낫다.
그러니 부지런히 회사를, 직무를, 입어보자. 어색하고 낯설더라도. 걸쳐야 길이 생기고, 움직여야 감각이 생긴다. 커리어는 마음속에서 완성되는 게 아니라, 몸으로 살아낸 경험 속에서 완성된다. 내가 입은 옷이 나를 보여주듯, 내가 살아낸 일이 나를 설명해 준다. 결국 내가 입는 것, 입어보는 것이 곧 나와 내 커리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