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여생이란 반란을 완성시킬 자 vs. 내 여생에 반란으로 제압하는 자
삶이라는 여정 속에서, 우리는 종종 두 부류의 사람을 만난다. 그들은 모두 ‘반란’이라는 단어를 공유하지만, 그 의미와 방향은 정반대다. 한쪽은 반란에 반대하며 기존의 질서를 지키려 하고, 다른 한쪽은 반란에 반해 새로운 가능성에 몸을 던진다. 그리고 우리는 그들 사이, 혹은 그들 안에 있는 자기 자신과 마주하게 된다.
이 글은 어쩌면, ‘파트너’에 관한 이야기다. 연인의 의미로서의 반려자일 수도 있고, 함께 창업한 공동 창업자일 수도 있으며, 긴 시간을 함께 보낸 친구나 창작의 여정을 나누는 협업자일 수도 있다. 결국은 나라는 존재를 더 명확하게 드러나게 해주는, 거울 같고도 질문 같은 존재. 어떤 방식이든, 파트너는 늘 우리의 성향을 드러나게 하고, 때론 시험에 들게 만든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늘 이 질문이 있다. 나는 누구와 함께할 때, 더 ‘나’답다고 느끼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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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를 닮은 사람과 함께하면, 세상이 다르게 보인다. 그들은 고정된 틀을 거부하고, 관습을 뒤집으며,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새로운 것을 향한 두려움보다, 낡은 것을 반복하는 것이 더 두렵다고 말한다. 그런 사람과 함께할 때면 나도 한층 대담해진다. 두려움보다 가능성을 먼저 말하고, 익숙함 대신 도전을 택하고 싶어진다. 그 파트너는 틀을 깨는 사람이다. 나의 감각과 사고를 일깨우는 존재다.
하지만 질서를 닮은 사람과 함께하면, 마음은 달라진다. 그들은 리스크를 감수하기보단, 구조를 만들고 그것을 지켜간다. 무너질 수 없는 무언가를 지켜야 한다는 책임감이 있고, 지속 가능한 관계와 시스템을 믿는다. 그런 사람과 함께할 때면 나 역시 조심스러워지고, 오래 보게 된다. 함께 축을 세우고, 버팀목이 되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그 파트너는 틀을 지키는 사람이다. 나의 삶을 조율해 주는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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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 글을 쓰는 나는, 이 두 파트너상 사이에서 여전히 갈팡질팡하고 있다. 여러분은 어떠한가? 당신의 곁에는 지금 어떤 사람이 있는가? 혹은, 어떤 사람을 곁에 두고 싶은가? 그전에 나는 어떤 누구인가?
비즈니스에서도 마찬가지다. 어떤 동료는 시장을 뒤흔드는 아이디어를 내고, 어떤 동료는 이를 실현 가능한 구조로 만들어낸다. 한 명은 불꽃이고, 한 명은 심지다. 함께 있어야 빛이 난다. 한 명은 늘 도전의 손을 내밀고, 다른 한 명은 무너지지 않는 질서를 설계한다. 어느 한쪽만 있다면, 오래가지 못한다. 극단은 늘 금방 타오르지만, 금방 꺼진다.
창작에서도 그렇다. 어떤 파트너는 시작의 열기를 주고, 또 다른 파트너는 그것을 끝까지 끌고 갈 힘을 준다. 아이디어가 떠오르는 순간에는 후자가 답답할 수도 있고, 현실을 버텨야 하는 순간에는 전자가 위험해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둘은 언제나 함께 있어야 한다. 균형이 필요한 건, 사람보다 ‘길’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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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직 명확한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과연 어떤 파트너가 더 나에게 어울리는 사람인지, 혹은 나 자신이 어떤 성향의 파트너가 되어야 하는지. 다만 이제는 조금은 알 것 같다. 정답은 하나가 아니라, 그 둘이 ‘어떻게’ 만나는가에 있다는 것을. 반란에 반대하는 사람과, 반란에 반해버리는 사람이 서로를 이해하고, 조율하고, 균형을 이루는 과정. 그것이야말로 파트너십의 본질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이제 더 이상 “이 사람은 맞고, 저 사람은 아니야”라고 쉽게 말하지 않는다. 대신 이렇게 묻는다. 이 사람과 함께라면, 나의 부족한 면을 조금 더 잘 살아낼 수 있을까? 그리고 내가 이 사람의 부족한 면을, 한동안은 잘 감당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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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트너란 결국, 서로 다른 혁명가가 손을 잡고 하나의 여정을 함께 만들어가는 존재다. 그 여정이 아주 빠르지 않아도, 아주 대단한 결과로 귀결되지 않아도, 그 과정 속에서 내가 더 나아지고 있다는 감각. 그 감각이 지속되는 한, 그건 반란이 아니라, 반한 것이다.
그리고 그 반한 상태에서, 우리는 비로소 함께 혁명을 이룰 수 있을지도 모른다. 질서를 사랑하면서도 그 질서에 매몰되지 않고, 도전을 두려워하면서도 그 두려움을 함께 넘을 수 있다면. 그렇게 우리는, 서로를 통해 좀 더 단단하고도 유연한 사람이 되어간다.
나는 아직, 정답을 모른다. 다만 오늘도 그 사이 어딘가에서, 조용한 반란 같은 관계를 기대하며 살아간다.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