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은 실패와 ◯◯의 합작품
카카오톡은 불과 6일 만에 스스로 대규모 UX 개편을 철회했다. 기획상의 문제도 있었겠지만, 그보다 변화를 집행하는 ‘방식’에 더 큰 문제가 있었다고 본다. CPO 책임론은 급기야 ‘영포티 혐오’ 논란으로까지 번졌다. 사용자 선택권, 맥락, 경험 계약을 조금이라도 존중하는 방식이었다면 결과는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물론 사후적 가정에 지나치게 기대는 것은 무의미하다.
생활 인프라급 ‘공적 일용품’에 가까운 서비스를 운영하면서도 사용자의 익숙함(제이콥의 법칙)을 거스른 것이 이번 역풍의 본질이다. 이 사례는 UX 교과서에 실릴 만한 전형으로 남을 것이다.
철회라는 결정은 겉보기에는 백기를 든 것 같지만, 내부적으로는 잠정적 실패를 인정하고 한 발 물러선 전략적 후퇴였을 수도 있다. 집행자의 입장에서 보면 ‘아직 성공 중인 실패’였을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UX 측면에서 본다면, 사용자 반응과 시장 지표는 이를 명백한 실패에 가깝게 만들었다.
그 증거는 시가총액의 급락이다. 불과 6일 사이 약 3조 원이 증발했다. 이는 과거 페이스북의 인스타그램 인수액(약 1조 원)의 3배 수준이다. 시장 전체의 변동성을 감안하더라도, ‘사용자 경험’보다 ‘체류 시간’을 우선한 비용은 즉각 수치로 환산돼 나타났다.
물론 카카오 역시 변화의 필요성을 모르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플랫폼의 ‘올드해짐’을 타개하고 광고 생태계를 확장하려는 시도는 방향 자체로만 보면 전략적으로 타당했다. 문제는 방향이 아니라 실행 방식이었다.
우리는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말을 잘 안다. 그리고 그 말엔 또 하나의 진실이 숨어 있다. 실패에도 ‘아버지’가 있다.
카카오톡의 이번 개편은 UX 관점에서 분명 실패였다. 그러나 문제의 전부가 실패 그 자체에 있진 않다. 진짜 공백은, 그 실패 위에 무엇을 어떻게 뿌려야 했는가라는 대목에서 드러난다. 일주일 만에 번복 가능성을 언급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사전에 정교한 시나리오가 충분했는지 의문이 남는다. 게다가 그 사이 시장은 3조 원이라는 거대한 숫자로 반응했다.
그 빈자리의 정체는 이제 분명하다. 실패를 성공으로 잇게 하는 또 다른 존재, 바로 ‘전략(戰略)’이다. 이 공백의 실체를 더 명확히 하기 위해, 시대를 초월해 전략의 본질을 통찰했던 이들의 언어를 빌려 카카오톡의 선택을 다시 들여다보자.
이번 사건을 단순히 “전략 부재”로만 규정하기보다는, 카카오톡이 변화와 혁신이라는 분명한 전략 방향을 갖고 있었으나, 사용자의 실제 맥락과 기대를 깊이 반영하지 못한 관점상의 한계와, 그 변화를 원활히 수행하며 충격을 완화할 실행·리스크 관리 절차의 부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고 보는 것이 더 적합하다. 즉, 전략의 취지는 있었으나 불완전했고, 실행 측면에서 구체성·단계성·리스크 관리가 미흡했다는 점이 이번 실패의 핵심 원인이다.
“전략은 차별화된 활동들을 선택하는 것이며, 또한 하지 않을 것을 선택하는 일이기도 하다.”
— 마이클 포터
카카오톡은 ‘하지 말아야 할 것’을 끝내 고르지 못했다. 전 국민 대상 일괄 적용은 용기만으론 택하기 어려운, 낙관을 전제로 한 베팅이다. 덩치와 사용자 풀의 규모를 감안하면 ‘익숙함(제이콥의 법칙)’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선택은, 곧 메시징 본질의 훼손이라는 사용자 피드백으로 되돌아왔다. 전략이란 곧 무엇을 내려놓을지의 기술인데, 카카오톡은 본질을 내려놓고 욕심을 한 번에 밀어 넣었다.
다만 이 결정을 ‘무모함’ 한 단어로 덮을 수만은 없다. 국민 인프라급 서비스에선 대규모 A/B나 듀얼 트랙 운영이 현실적으로 매우 비싸고 복잡하다. 기술·정책·고객 응대의 총비용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그래서 “한 방에 승부”라는 선택이 내부에서 힘을 얻었을 가능성은 높다. 문제는 선택이 아니라, 그 선택을 지탱할 시나리오·백업플랜·롤백 가이드가 얕았다는 점이다.
“전략이란 기업의 장기적인 목적과 목표, 그리고 그 목표들을 달성하기 위해 행동과 자원을 배분하는 과정이다.”
— 앨프리드 챈들러
이번 자원 배분은 단기 KPI와 장기 신뢰 자본(Trust Capital) 사이의 균형을 잃었다. 숏폼 노출·광고 재고 확대·UI 전환 등 가시적 지표에 자원이 쏠리면서, 장기 충성도를 지탱하는 신뢰 자산이 침식됐다. 불과 6일 만에 3조 원이 날아간 건 우발이라기보다 구조적 균열의 신호였다.
물론 어느 조직이든 단기 실적 압박과 미래 투자의 균형은 어렵다. 특히 ‘국민 인프라’ 수준의 플랫폼은 작은 개편도 시장 전체에 파급력이 크다. 그래서 이번 일을 전략의 부재가 아니라 전략적 우선순위의 균형 실패로 보는 해석 역시 충분히 설득력 있다.
“전략은 계획만이 아니라, 패턴이며, 위치이고, 관점이다.”
— 헨리 민츠버그
민츠버그의 5P(Plan·Ploy·Pattern·Position·Perspective) 중 카카오톡이 놓친 것은 마지막 ‘관점(Perspective)’이었다. 관점은 조직이 세상을 읽는 공통의 나침반으로, 정체성과 사용자 맥락을 잇는다. 이번 개편은 내부적으로도 관점 정렬의 흔들림이 있었던 듯하고, 외부에 비친 방향도 일관되지 못했다. 전략을 시간 속에서 패턴으로 숙성시키는 대신, 단 한 번의 일괄 개편으로 해결하려 한 계획 과신이 치명타가 됐다.
그럼에도 ‘콘텐츠 플랫폼 전환’이라는 큰 그림 자체는 시대 흐름에 부합한다. 문제는 올바른 방향을 올바른 속도로, 올바른 관점에서 실행하지 못했다는 데 있다.
“전략적 경쟁우위는 학습 속도와 적응력에서 나온다”
— 게리 하멜
변곡점(숏폼 전환)을 제한된 파일럿·점진적 학습 없이 전면 적용했다. 내부적으로 크고 작은 실험이 있었겠지만, 뚜껑이 열리자 사회적 파장·연령별 맥락·가정 내 사용 환경 같은 현실 변수가 충분히 시뮬레이션되지 않았음이 드러났다. 학습 없는 실험은 실험이 아니라 사고다.
덧붙이면, 카카오는 톡보드·비즈보드·카카오뷰 등으로 콘텐츠 확장을 꾸준히 시도해 왔다. 내부 지표상 근거는 있었을 수 있다. 다만 그 학습이 전략적 학습이 아닌 전술적 반복에 머물렀고, 대규모 전환의 사회적 리스크 모델링까지 확장되지 못했다는 점이 본질이다.
“나쁜 전략은 목표만 장황하고, 정책과 실행은 빈약하다. 가치에 대해 중얼거리지만, 명확한 문제 진단도, 방향을 제시하는 정책도, 일관된 행동 계획도 만들어내지 못한다.”
— 리처드 루멜트
‘콘텐츠 플랫폼 전환’은 목표였지만, 그 목표를 현실로 만드는 진단·가이드 정책·일관된 액션이 비어 있었다. 낙관을 전제로 “잘 될 것”을 믿는 순간, 전략은 빈껍데기가 된다.
다만 비전 자체는 공허하지 않았다. 숏폼 전환은 글로벌 공통 과제이고, 카톡 이너피드의 콘텐츠 허브화는 회사의 오랜 숙원이기도 했다. 문제는 좋은 그림을 현실화하는 단계와 정책이 빠져 있었다는 점, 즉 루멜트가 말한 ‘나쁜 전략’의 전형에 가까웠다는 사실이다.
이번 사건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실패가 있었다’는 단순한 사실이 아니라, 그 실패의 성격이다. 혁신 과정에서의 실패는 보통 실험과 학습을 전제로 한다. 작게 시작하고, 반응을 살피고, 피드백을 반영해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 방식이다. 이런 실패는 자산이 된다.
하지만 이번 카카오톡의 경우는 달랐다. 대규모 공개라는 방식 자체에서 비롯된 구조적 실패였다. 이 실패는 학습의 재료가 아니라 곧장 시장의 손실과 신뢰의 균열로 이어졌다. 그래서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말이 이 상황엔 적용되지 않는다. 어머니 역할을 하기엔 실패의 토대가 마련되지 않았던 셈이다.
그렇다면 원인은 무엇일까. 단순히 ‘전략이 없었다’고 말하긴 어렵다. 실제로 콘텐츠 플랫폼 전환이라는 전략적 방향은 존재했다. 그러나 사용자 맥락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 관점의 결여, 그리고 변화를 흡수하고 리스크를 관리할 실행 체계의 부재가 더 근본적인 문제였다. 즉, 불완전한 전략과 미흡한 실행이 결합한 결과였다. 전략은 있었지만, 제대로 기능하지 못했던 것이다.
결국 여기서 드러난 진짜 빈칸은 전략 그 자체가 아니라, 전략을 설계하고 책임질 ‘전략가’의 부재였다고 나는 생각한다. 혹은 그가 재기능을 하지 못한 것. 단기 KPI와 장기 신뢰 자산, 제품 전략과 사용자 경험 전략, 실험과 리스크 완화를 모두 아우를 수 있는 ‘전략의 주체’가 명확하지 않았다.
이 지점에서 떠오르는 자리가 바로 CXO(Chief Experience Officer)다. CXO는 제품·비즈니스·브랜드·사용자 경험을 통합적으로 바라보며, 조직의 전략을 ‘경험’이라는 렌즈로 정렬하는 역할을 한다. 무엇을 할지뿐 아니라 무엇을 하지 않을지, 어떤 순서로 실행할지를 정하고, 장기적 신뢰 자본을 지키는 전략적 안전장치를 만든다.
국내 기업 다수가 아직 제품 중심주의에 머물러 있고, CXO라는 역할 자체가 드문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이번 사건은 오히려 그런 ‘CXO 부재’의 시대적 공백을 여실히 드러낸 사건이라고 보고 싶다. 전략은 있었으나, 그것을 현실에 정렬시키고 리스크를 관리할 ‘전략가의 자리’가 없었기에, 실패는 학습으로 승화될 기회를 얻지 못했다.
실패는 어머니고, 전략은 아버지다. 성공은 둘의 합작품일 때만 태어난다. 그리고 CXO의 자리는, 바로 그 ‘아버지의 빈자리’에서 시작된다. 3부에서는 이 전략가의 역할을 조직 구조, 의사결정, 신뢰/피로/관용 KPI와 함께 구체적으로 살펴볼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