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험’을 설계 원리·조직 언어·실행 시스템으로 끌어올리는 전략의 조타수
모든 성공에는 실패라는 어머니가 있다. 그러나 그 실패를 성공으로 바꾸기 위해서는 반드시 ‘아버지’도 필요하다. ‘전략(戰略)’이 바로 이 역할을 맡는다. 제품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기술과 시장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변화의 방향을 정하고, 실행의 단계를 설계하며, 사용자 경험이라는 복잡한 생태계를 하나로 묶는 ‘전략적 조타수’가 필요하다.
과거에는 CTO·CMO·CPO가 전략의 축을 맡아도 충분했다. 하지만 사용자가 제품을 경험으로 소비하는 오늘, 그 사이를 잇는 전략적 조타수가 필요하다. CXO(Chief Experience Officer)가 바로 그 빈칸을 메우는 역할이다.
CXO는 제품을 넘어 브랜드–서비스–사용자 여정 전체를 하나의 전략적 경험으로 설계하고 조율하는 리더다. 어떻게 보면 너무 광범위한 권한과 책임을 부여받은 지나친 중책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한동안 주변부에 머물렀던 이 역할을, 최근 여러 사건을 계기로 다시 조명할 필요가 있다.
CXO라는 개념은 새롭지 않다. 해외에서는 이미 존재해 왔고, 일부 기업은 사용자 경험을 경영의 핵심 축으로 삼아 CXO 조직을 성장시켜 왔다. 그러나 오랫동안 기업 전략의 중심은 기술(Tech)과 마케팅(Marketing) 그리고 제품(Product)에 있었다. 그리하여 CTO(Chief Technology Officer), CMO(Chief Marketing Officer), CPO(Chief Product Officer)가 상황에 따라 전략의 주축을 이루며, CXO는 ‘있을 수도 있는 역할’ 정도로 취급되는 경우가 많았다고 생각한다. 다소 권한과 책임이 중첩된다고 여길 수 있기 때문이다.
이유는 단순하다. 과거에는 제품 중심주의(Product-centric) 전략만으로도 충분히 성과를 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기능이 우수한 제품, 가격 경쟁력 있는 서비스, 명확한 시장 진입 전략이 곧 기업의 성공 방정식이었다. 하지만 사용자 경험이 브랜드의 핵심이 되고, 제품과 서비스가 얽혀 하나의 ‘여정’으로 소비되는 오늘날, 이 방정식은 더 이상 완전하지 않다. 그 사이, 전략과 경험 사이에 커다란 빈틈이 생겼다. 카카오톡이 하나의 예를 보여줬다.
그런데 바로 이러한 연유로 인해서 UX 조직이 신설되고 운영된다. 그럼 왜 CXO가 필요할까? 대부분의 UX 조직은 큰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즉, 내부에서 충분히 미연에 방지할 수 있었을 문제도 끝내 막지 못하면 외부에서 누수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카카오톡의 경우에도 정황상 이런 요인도 무시할 수 없어 보인다. 이때 UX 분야에도 C레벨이 있다면 어떻게 될까? 그는 C레벨 중에서 가장 최후까지 고객의 입장을 헤아리고 때론 반대의 주장도 펼쳐야 하는 고약한 일을 자처해야 하는 입장일 것이다. 실무자의 조사나 예측이 단순히 과업이 아니라 업무에 반영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돕는 UX 우군의 장수인 셈이다.
이번 사태를 이해하려면 CPO와 CXO의 역할 차이를 명확히 구분할 필요가 있다. 두 직책은 이름과 업무범위 흡사해 혼동하기 쉽지만, 조직의 관점과 우선순위, 책임의 폭에서 본질적으로 다르게 설정된다.
CPO는 제품 자체의 전략, 기능, 로드맵을 총괄한다. CPO는 핵심적인 제품의 기능 설계와 시장 진입 전략을 담당하며, 제품을 성공시키기 위한 방향을 설정한다. 제조사라면 가격 경쟁력 등도 중요할 것이다. 중요한 것은 그 안에 전략과 로드맵 등이 포함이 되어 있다한들, CPO의 시야는 다분히 제품 중심으로 제한될 수밖에 없다. 즉, 사용자 경험이 아니라 제품의 성공에 집중하는 역할을 하게 된단 것이다.
우리는 어떤 제품을 만들고 있는가?
반면, CXO는 전체 사용자 경험을 관리하는 책임을 지고 있다. CXO는 제품뿐만 아니라, 사용자와의 접점을 모두 관리하며, 브랜드와의 감정적 연결을 설계한다. 즉, 제품 외에도 서비스 전반에 걸쳐 사용자의 총체적인 여정을 책임진다. CXO는 제품과 사용자 사이의 감정적 교감을 만들어내고, 그 경험의 일관성을 유지하는 역할을 한다.
우리는 어떤 경험을 제공하고 있는가?
카카오톡의 경우 이 두 가지 후자의 역할을 결과적으로 소홀히 한 격이 되었고, 그 결과 전략적 리더십은 공백이 있는 것처럼 귀결이 났다. 6일 천하가 그러한 모습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CPO가 아니라, CXO가 중심이 되어야 했다는 점에서 이번 사건은 더욱 비판적이고, 전략적 실패로 귀결될 수밖에 없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CPO는 ‘제품의 성공’, CXO는 ‘경험의 성공’
CXO가 단순히 ‘경험을 총괄하는 직책’에 머무르지 않는 이유는, 오늘날 기업이 직면한 근본적인 변화가 사용자의 감각과 행동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좋은 제품, 공격적인 마케팅, 유통망 확보만으로도 충분히 시장을 지배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의 사용자는 제품을 ‘소유’하기보다 ‘경험’으로 소비하며, 브랜드와의 관계를 감정적·문화적 차원에서 형성한다. CXO는 이러한 변화의 맥락에서 세 가지 전략적 축을 통해 기업의 성패를 좌우하는 역할을 한다. 그래서 어렵고 쉽사리 새로 재편하기 까다로운 C레벨인 것도 맞다.
오늘날 브랜드 충성도(Brand Loyalty)는 더 이상 단순히 가격이나 기능의 우위만으로 얻어지지 않는다. 사용자는 제품을 구매하는 순간만이 아니라, 사용 전–사용 중–사용 후의 전체 경험을 종합적으로 평가한다. CXO는 이 전체 여정을 설계하고, 브랜드와 사용자의 감정적 연결을 경험으로 전환하여 장기적으로 신뢰를 축적한다.
예를 들어, 애플(Apple)은 새로운 기능을 대대적으로 홍보하기 이전에, 사용자가 그것을 ‘어떻게 느낄 것인가’에 집중한다. 기기 간 연결의 매끄러움, 포장지를 뜯는 촉감, 초기 세팅 과정에서 느껴지는 ‘기분 좋은 긴장감’까지—모든 것이 경험으로 설계되어 있다. 이러한 정교한 경험 설계는 사용자가 단순한 소비자가 아니라, 브랜드의 팬(fan)으로 진화하게 만드는 결정적 계기가 된다.
반대로, 뛰어난 기술력을 갖추고도 경험 설계에 실패해 브랜드 충성도를 잃은 사례도 많다. 노키아(Nokia)나 블랙베리(BlackBerry)는 한때 시장 지배자였지만, 사용자 경험에서 경쟁자에게 뒤처지며 급격히 몰락했다. 이들의 기술은 혁신적이었지만, ‘감각적인 경험’을 만들어내는 데 실패했고, 이는 충성도의 급격한 이탈로 이어졌다.
CXO는 감성 마케팅 담당이 아니다. 신뢰 자본(Trust Capital)을 조직의 설계 원리로 끌어올리는 사람이다. 브랜드와 사용자의 관계를 구조적으로 설계하고, 그것을 조직 전반의 전략으로 정렬하는 사람이다. 신뢰 자본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지만, CXO의 역할이 있을 때 비로소 조직은 그것을 장기적으로 쌓아갈 수 있다.
CPO가 제품 기능을 정의한다면, CXO는 사용자가 브랜드와 맺는 ‘전체 관계’를 설계한다. 제품을 처음 접하는 입문 단계부터, 정기적 사용·문제 해결·친구와의 공유·피로감 해소 등 사용자가 경험하는 시간의 흐름 전체를 하나의 내러티브로 설계하는 것이다.
이 지점에서 CXO는 부서 간 단절을 연결하고, 조직의 시야를 ‘기능(Function)’에서 ‘경험의 흐름(Experience Flow)’으로 전환시킨다. 예를 들어, 마케팅 팀은 광고 문구와 캠페인에 집중하고, 제품 팀은 UI 및 기능에 집중하며, 고객 지원 팀은 문제 해결에 집중한다. 각자 자신의 역할은 충실하지만, 사용자 입장에서는 이 모든 접점이 하나의 여정으로 이어져야 한다. CXO는 바로 이 ‘보이지 않는 실’을 꿰매는 사람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넷플릭스(Netflix)다. 넷플릭스는 단순히 ‘좋은 콘텐츠를 제공하는 서비스’가 아니다. 사용자가 넷플릭스 앱을 켜는 순간부터 콘텐츠를 고르고, 시청하고, 잠시 중단하고, 나중에 다시 돌아오는 전 과정을 하나의 매끄러운 흐름으로 설계했다. 추천 알고리즘, 로딩 애니메이션, 자동 재생, 다음 화로의 자연스러운 전환 등은 기술적 요소이지만, 이 모두가 ‘사용자가 머무는 경험’을 설계하는 전략적 선택이다. 결과적으로 넷플릭스는 콘텐츠 수보다 ‘시청 경험’으로 차별화에 성공했고, 이는 경쟁자들이 가장 따라잡기 어려운 무기가 되었다.
CXO는 바로 이러한 사용자 여정의 ‘감독’이다. 기능과 기능 사이의 틈, 부서와 부서 사이의 단절, 기술과 감정 사이의 균열을 메우며, 사용자가 기억하는 경험의 내러티브를 짜는 사람이다.
기술과 시장은 빠르게 움직이지만, 사용자의 습관과 인지 구조는 그렇게 빨리 변하지 않는다. CXO는 이 간극을 정확히 읽고, 변화의 속도를 조율하며 사용자 경험의 일관성을 유지한다. 많은 기업들이 이 지점을 간과해 대규모 업데이트나 전략 전환에서 사용자 반발에 직면한다. 좋은 전략도 ‘잘못된 타이밍’과 ‘잘못된 방식’으로 실행되면 실패로 귀결된다.
대표적인 실패 사례로 자주 언급되는 것이 구글 웨이브(Google Wave)다. 당시로서는 혁신적인 협업 도구였지만, 사용자들의 협업 습관과 사회적 맥락을 충분히 고려하지 못한 채 급격하게 변화를 밀어붙였다. 결과는 조기 서비스 종료였다. 반면 페이스북(Facebook)은 대규모 UI 개편도 지역·연령·세그먼트별 점진 노출과 안내, 신·구 UI 공존 기간을 두어 인지 부하를 낮춘다. 바로 이 조율 능력 또한 CXO의 역할이 될 수 있다.
CXO는 변화의 ‘방향’을 제시하는 사람이라기보다, 변화의 ‘속도와 맥락’을 조율하는 조타수다. 전략적 결정이 사용자 관성과 부딪히지 않도록 균형을 잡아주는 것이 CXO의 중요한 책무다. 좋은 전략도 나쁜 타이밍·방식으로 실행되면 실패한다. CXO는 속도·순서·완충을 설계해 전략의 ‘착륙’을 책임진다.
CXO의 역할이 다시 중요해지는 이유는 단순히 ‘조직에 새로운 직책이 필요해서’가 아니다. 지금 기업 환경은 전략의 초점이 제품(Product)에서 경험(Experience)으로 이동하고 있으며, 이 전환은 CXO 없이는 제대로 이루어질 수 없다. 이 변화는 크게 세 가지 흐름으로 정리할 수 있다.
예전에는 ‘좋은 제품’을 만들면 사용자가 따라왔다. 하지만 이제는 좋은 경험이 곧 브랜드의 정체성이다. 예를 들어, 스타벅스는 커피 맛만으로 경쟁하지 않는다. 매장 분위기, 주문 경험, 이름을 불러주는 문화, 앱 결제의 편리함 등이 모두 브랜드 경험을 구성한다. 제품이 아닌 ‘경험 전체’가 경쟁력이 된다. 때문에 CXO는 없어도 CX 조직을 신설해 유사한 역할을 도모하기도 한다.
현대 조직은 점점 세분화되어 있지만, 사용자 여정은 부서를 가리지 않는 영역이다. 하지만 쉽지 않다. 기능 단위로 나뉜 조직은 종종 ‘내 일만 잘하면 된다’는 식의 사일로(Silo) 구조를 만들기 때문이다. 무엇이 잘못되었다기보다도 둘 다 의미를 가지다 보니 문제가 상충된다. CXO는 이 경계를 허물고, 조직 전체를 경험 중심으로 재정렬하는 ‘통합 설계자’의 역할을 수행한다. 말로만 수평적 통섭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그것을 일임하는 역할인 것이다.
기술과 시장은 초단위로 바뀌지만, 사용자들은 이미 다채로운 피로감(Fatigue)에 시달리고 있다. 새로운 기능이나 UI가 등장할 때마다 학습해야 하고, 적응해야 하며, 다시 관계를 맺어야 한다. 하루가 멀다 하고 새로운 AI 모델이 끊임없이 발표되는 요즘을 떠올리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이때 CXO는 이 가속과 피로 사이의 균형을 잡는 역할을 맡는다.
위에서 언급한 이 세 가지 변화는 기존의 CTO·CMO·CPO 중심의 제품 전략만으로는 해결이 어렵다. CXO는 전략과 경험 사이의 ‘통역자(Translator)’이자 ‘설계자(Architect)’로서, 기존 전략이 놓치고 있는 빈칸을 메운다.
CXO는 단순한 직책이 아니다. “우리는 어떤 경험을 제공하며, 그것을 어떻게 전략적으로 설계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조직 전체에 던지는 거울이다. CXO를 마치 만능 해결사처럼 제시할 필요는 없다. 다만 CXO의 존재는 전략과 경험 사이의 균열을 다시 성찰할 수 있는 계기가 된다.
시작은 거창할 필요가 없다. 경험 헌장(Experience Charter), 크로스 펑셔널 워룸(마케팅·제품·CS·데이터 합동), 신뢰·피로·관용 KPI 도입만으로도 CXO 방식은 작동하기 시작한다. 직함보다 중요한 건 경험을 전략의 언어로 바꾸는 사람이다.
경험이 곧 경쟁력이 되는 시대, 보이지 않는 틈을 읽고 메우는 통찰력과 실행력이야말로 기업의 성패를 가른다. CXO는 정답이 아니라, 앞으로 던져야 할 질문의 출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