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가 필요했던 역변의 흑역사
* 브런치에서 이 글은 안 띄워 주겠지?
드림카카오 초콜릿을 고를 때 사람들은 저마다의 취향이 있다. 56%, 72%, 82%… 누군가는 부드럽고 달콤한 맛을 선호하고, 또 어떤 이는 쌉싸름한 강한 풍미를 즐긴다. 카카오 함량이 높아질수록 폴리페놀 등 건강 기능 성분은 풍부해지지만, 동시에 어떤 사람에게는 쓰고 부담스러운 맛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제조사들은 소비자의 취향과 건강 상태에 따라 다양한 함량의 제품을 선보인다. 시장은 ‘선택의 폭’을 전제로 한다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느 날, 이 초콜릿 회사가 이렇게 선언했다고 가정을 해보자.
앞으로는 100% 카카오만 팝니다.
가장 건강에 좋으니까요!
(공정 효율도 유리해지지)
선의의 결정일 수는 있지만, 결과는 순탄치 않을 것이다. 대다수 소비자는 놀라고, 일부는 불쾌해하며, 많은 이들은 그 변화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을 것이다. 건강에 좋은 건 사실일지 몰라도, 그 ‘좋음’은 소비자의 맥락과 취향을 무시한 채 일방적으로 주어진 것이기에 충돌을 피할 수 없다. (물론 세상엔 테슬라 같은 기업과 커뮤니티 또한 공존한다.)
2025년 9월 카카오톡 UX 대개편은 이 상상과 닮아 있었다. 56%나 72%와 같은 단계적 실험도 없이, ‘전 라인업 100%’를 하루아침에 들이민 역변이었다. 그리고 사용자는 그 ‘쓴맛’을 곧바로 체감했다.
가장 중요한 점은 그래, 드림카카오는 그냥 안 먹거나 다른 걸 사 먹으면 그만이라지만 이 카카오는 그게 내 맘 같지 않다는 데에 있다. 이것이 역풍을 더욱 부채질했을 것이다. 그렇게 ‘카카오 드림’은 6일 천하에 그치고 만다.
개편 직후의 SNS와 커뮤니티는 모두가 알다시피 들끓었다. “왜 굳이 바꿔?”, “돌려놔라”, “이게 무슨 카톡이냐”, “바뀐지도 몰랐는데 뭐가 문제죠?” 등 다채로운 의견은 대체로 불만이었다. 이 폭발은 10대부터 중장년층에 이르기까지 전 세대를 아우른 격렬한 반응으로 이어졌다. 순식간에 ‘국민 메신저’의 정체성이 흔들리는 듯한 분위기였다.
흡사 싸이월드가 생각났다. 유저풀 네트워크와 분명한 데이터 자산이 있지만 바꿔도 문제 안 바꿔도 문제. 페이스북이 인스타그램처럼 바꾸지 않고 인스타그램을 접수해 버린 것을 생각해 보면, 인스타그램의 그 무엇을 어떤 식으로 탐해야 했을지 분명 여러 수가 있었겠지만, 어쩌면 가장 악수를 둔 셈이 되고야 말았다.
심지어 앱스토어에서는 별점은 높아도 그 내용은 냉소적인 모습도 관찰되었다. 아니나 다를까 노출 구조 때문에 별 다섯 개와 함께 조소 섞인 의견을 남기는 리뷰가 잇달았다. 양대 스토어에서 압도적인 1점 세례와 냉소적 5점이 공존하는 아이러니가 벌어졌다.
문제는 롤백을 선언해도 이 같은 평판까지 함께 Ctrl+z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슈뢰딩거의 고양이는 상자 안에서 중첩된 상태를 유지하다 관찰 순간에 결과가 정해진다. 그러나 이번 업데이트는 달랐다. 롤백을 하든 안 하든, 이미 쏟아진 1점 폭탄은 지워지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화의 필요성 자체는 누구도 부정할 수 없었다. 카카오톡은 10년 넘게 한국 사회에서 ‘국민 메신저’로 군림해 왔지만, 플랫폼 생태계의 경쟁 구도는 급격히 변하고 있었다.
틱톡의 등장과 숏폼 콘텐츠의 폭발적 확산은 단순한 트렌드가 아니라 거대한 구조적 전환이었다. 젊은 세대의 주된 커뮤니케이션 채널은 이미 메신저가 아닌 영상 플랫폼으로 이동하고 있었고, 카카오톡은 이런 흐름 속에서 점점 ‘올드해지고 있다’는 이미지를 피할 수 없었다.
그 증거 중 하나가 바로 체류시간의 감소였다. 인스타그램은 메시징과 스토리를 결합해 플랫폼 체류시간을 극대화했지만, 카카오톡은 틱톡과 X(구 트위터)보다도 밀리는 추세였다. 중국의 위챗은 이미 슈퍼앱으로 진화했고, 라인 역시 커머스와 콘텐츠를 통해 생태계를 확장했다. 물론 카카오톡에도 많은 기능들이 붙어 슈퍼앱이라 불려도 손색없는 상태이긴 하다.
그럼에도 단순 메시징만을 주력으로 경쟁력을 유지하기 어려운 시대에 접어든 것은 분명했다. 그러니 “콘텐츠 플랫폼으로의 전환”이라는 비전 자체는 전부터 타당했다. 문제는 결국 “어떻게 바꾸느냐”였을 것이다. 즉, 사용자와의 커뮤니케이션과 교감이 가장 주요한 이슈 아니었을까?
이제 본격적으로 질문을 던져보자. 만약 카카오톡이 끝까지 개편을 철회하지 않았다면, 이번 변화에는 어떤 ‘의미’가 있었을까? 정말로 ‘실패라 단정 짓기엔 아까운’ 지점이 있었을까?
이를 위해 당시 옹호론자들이나 내부에서 기대했을 법한 7가지 가설을 세우고, 각각을 검증·반박해 보자. 즉, 의미가 있었다면 어디에 있었고, 그럼에도 왜 결국 실패로 귀결될 수밖에 없었는가를 따져보는 것이다.
의미/기대
프로필 업데이트·게시물을 타임라인 형태로 보여주면 사용자 상호작용이 늘고, 체류시간도 상승할 것
검증/반박
제이콥의 법칙 위배
사용자는 ‘연락처형 목록’이라는 오랜 패턴을 기대. 따라서 기본 진입점의 피드화는 핵심 과업(대화 시작) 전 기존 대비 인지 비용을 미세하게 올림. 또한 이 비용을 떠나 메신저 정체성에 대한 강한 도전
프라이버시/정서 이슈
프로필 변화의 강제 노출은 ‘나의 의도를 떠나 드러나버림’이라는 정서 유발. 즉, 메신저라는 사적 공간성의 훼손
HCI > 후방 오류 회복성 미흡
인스타그램이 덜 익숙한 SNS Novices에겐 피드에서의 직관적인 더블탭 ‘좋아요’에 Reverse Action이 없어 취소(Undo) 불가. 상대와의 관계에 따라 당황스러운 사회적 리스크 발생 가능 (인스타그램의 장점뿐만 아니라 단점까지도 가져온 셈)
결론/해석
“부장님 골프사진 보기 싫어요” 정도의 잡음은 내부에서 충분히 대응했을 수 있었을 이슈 같은데, 어떤 고객을 확보하고 있는지에 대한 메타인지 부족. 그러니 소셜 그래프 활성화의 ‘이익’보다 신뢰·맥락 훼손의 ‘비용’ 누수를 그나마 롤백이 조금이라도 막은 격.
의미/기대
오픈채팅 진입 전 숏폼을 노출하면 콘텐츠 소비가 늘고 광고 재고 증가
검증/반박
세대·보호 이슈
숏폼은 가정과 저연령 맥락에서 민감. [숏폼]의 좌상단 노출은 이러한 가정 내 갈등·차단 니즈를 촉발. 범국민적 서비스 위상에 대한 내부의 과소평가 혹은 성긴 사용자 모델링의 아쉬운 결과
브랜드 정체성
카카오스토리와의 중복 포지션 문제. “메신저의 강점”을 깎아 “어정쩡한 SNS”로 리포지션
결론/해석
콘텐츠 전환의 문지방을 낮추려다 핵심 과업의 문지방을 높여 총효용을 잃고 사용자의 회피 행동을 유발. [숏폼]을 품기 위해 [오픈채팅]이 분리돼 이용당한 인상
의미/기대
체류시간이 늘면 eCPM·노출·매출이 긍정적으로 오를 것
검증/반박
체류의 질(quality of time)적 관점
억지 체류는 부정 감정을 상승시켜 회피·차단·알림 끄기를 유발 가능하며, 표면적인 DAU 유지 속 비가시적 이탈이 누적될 가능
장기적인 광고 생태계 신뢰성
사용자가 광고주를 향한 역(逆)감정을 키우면, 브랜드 세이프티 이슈가 붉어져 단가가 오히려 하락도 가능
결론/해석
양(量)적 중심의 KPI는 신뢰 비용을 반영하지 못할 수 있으며, 숏-터미즘(단기주의)의 역풍도 우려. 사실 이 가설이 유효하기만 했어도 역풍을 상쇄할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지만 사실상 물거품. 혹은 롤백 전까지 데이터를 모아 반전을 꾀할지도 모름
의미/기대
폴더링/요약/수정/통화녹음 등은 실용적 기능이다. 코어 가치가 강화
검증/반박
기능의 선의 ≠ 맥락의 선의
좋은 기능도 배치·기본값·동선이 나쁘면 좋지 않음 (좀 억지로 피츠/힉스의 법칙 운운도 가능)
경험의 상쇄
생산성 기능은 점진 릴리스로 충분히 호응을 얻을 수 있었음. 피드·숏폼 강제와 결합되며 ‘좋은 기능’이 ‘나쁜 경험’ 속에 묻힘
결론/해석
기능 자체는 유익하지만, 개편 패키지의 일부로 묶이면서 긍정 효과가 상쇄
의미/기대
인스타 스토리·네이버 개편처럼, 습관은 바뀐다. 시간이 지나면 적응
검증/반박
피크-엔드 법칙
첫 충격(피크)과 회사 대응(엔드)이 기억을 결정. 강제적 업데이트와 역풍에 의한 철회는 악영향이 클 것
계약과 브랜드 신뢰 이슈
‘메신저=사적 공간’이라는 사용자와의 암묵 계약을 깬 셈. 강제성으로 인해 습관 변경이 아닌 관계 훼손
결론/해석
낯섦에 시간이 약이 될 순 있어도, 배신감은 치유 불가. 물론 롤백 전까지 사용자 옹호 입장이 늘어날 수 있는 변수는 존재. 하지만 별점에서 볼 수 있듯 득 보단 실이 더 컸던 일주일로 보임
의미/기대
광고 수익 확대와 사용자 체류시간 방어는 기업의 존폐가 걸린 한 마디로 선택 아닌 필수
검증/반박
경험 계약 우선 (제이콥의 법칙)
광고는 경험 계약 위에 세워짐. 계약이 깨진 순간 광고는 침입이 됨
옵트인·듀얼 트랙
선택권(옵트인)과 이중 트랙 UI만 있었어도 반발은 완충됐을 것. 전면 강제로 우로보로스의 뱀이 된 격
결론/해석
수익은 엄연한 현실이지만, 이 현실을 위해 사용자와의 경험적 계약을 깨는 것이 장기적으로 옳은가 엄중한 저울질도 비즈니스 이슈로 대해야 했음. 물론 이미 맺어버린 광고 계약을 깰 순 없었을 것. 결국 사용자에게 피해가 돌아가기 쉬운 구도. 설령 기업가치 3조 증발을 비즈니스 측면의 투자비용이었다 주장(?)한들 이 또한 막대한 주주가치 훼손이니 어불성설
의미/기대
절체절명의 전략적 선택에 대해 충성고객들은 불편보다는 기대감에 손을 들어줄 것
검증/반박
속도는 ‘판단의 질’을 대체 불가
스타트업의 속도는 작은 표본-빠른 학습-잦은 롤백이 전제. 이번은 큰 표본-느린 학습-뒤늦은 롤백으로 애자일과는 전혀 다른 종류의 실패 (만약 제조업이라면 있을 수 없거나 엄청난 손해가 기정사실화된 사고)
대기업 리스크 매니지먼트의 부재
그렇다고 대기업의 조직력과 관료주의로 인한 안전망도 보여주지 못한 어정쩡함
결론/해석
사회적 관용 이전에 충분한 검증을 통해 다른 의사결정의 가능성을 모두 타진한 흔적이 솔직히 보이질 않음. 되려 영포티까지 운운해 가며 감 떨어진 형국에 대한 개탄의 여론이 더 우세. 오히려 대기업다운 조심성과 보수성으로 사용자 경험을 숙성시켜 줄 시간을 벌었어야 했던 게 아닌가 하는 아쉬움
이번 사태에서 더 뼈아픈 대목은, 사용자들이 격렬하게 반발하면서도 정작 뚜렷한 ‘대안 메신저’가 부재했다는 점은 아닐까. 반사이익의 징후는 보였지만 위협적인 사용자 대체 움직임으로 번지기엔 역부족이었다. 불만은 폭발했지만, 이탈은 일어나기 힘들었다. 10년 넘게 한국 사회의 생활 인프라로 뿌리내린 카카오톡의 네트워크 효과는, 역설적으로 사용자들에게 ‘선택지 없음’이라는 현실을 들이밀었다. (물론 내가 아는 토스는 추석이 끝날 즈음 발 빠르게 ‘토스 메신저’라며 깜짝 선물을 선보여줄 그런 이들이지만서도)
만약 이 타이밍에 빠른 판단력과 기민한 실행력을 갖춘 스타트업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혼란은 곧 기회이고, 거대 플랫폼의 균열은 신생 주자의 레버리지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이번엔 그런 움직임조차 뚜렷이 감지되지 않았다. 마치 거대한 성벽이 흔들리는데도, 그 틈을 파고들려는 도전자의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SKT 사태 때도 이탈자가 많지 않았던 것을 생각하면 생활밀착형이라는 것이 가진 비즈니스 파워를 새삼 실감하게 된다. (괘씸죄의 원인이지만 스타트업 같은 기업 입장에선 그림의 떡)
이것은 이번 사태만의 문제가 아니다. 디지털 인프라가 한 기업에 과도하게 집중되고, 실질적 대안이 부재한 시장 구조가 반복된다면, 유사한 사건은 언제든 다시 벌어질 수 있다. 혁신의 속도는 빨라졌지만, 혁신을 수용하고 대체할 수 있는 생태계는 너무 느리다. 그러면서 사용자란 부지런하면서도 게으르다는 속설을 또다시 체감한다. 그 모든 사실들이 이번 사건의 여운을 더욱 짙게 만든다.
흥미롭게도, 증권가의 시선은 사용자와 조금 다르다고 한다. 표면적으로는 ‘6일 천하’의 완패처럼 보였지만, 일부 애널리스트들은 “이번 UX 개편이 단기적으로는 잡음은 만들었지만, 장기적으로는 체류시간 및 광고 수익 증대의 기회를 마련했다”는 점에 주목한다. 일리도 있다.
일각에서는 “4분기까지 시간을 벌며 사용자를 서서히 ‘익숙하게 만드는 전략’ 일 수도 있다”는 해석도 나온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단, 문제는 이게 과연 전략이었을지는 미지수) 실제로 글로벌 플랫폼 기업들은 사용자의 초기 반발을 뚫고 새로운 UX를 안착시킨 전례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증권가는 카카오가 이번에도 ‘시간이 해결해 줄 것’이라는 낙관적 시나리오에 베팅하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사용자 입장은 결코 이와 같을 수 없다. 국민 메신저로서 카카오톡의 위치는 단순한 플랫폼을 넘어 일상적 질서와 신뢰의 문제를 떼려야 뗄 수 없다. 한 번 무너진 신뢰와 감정의 균열이 과연 시간만으로 메워질 수 있을까? 돈은 벌 수 있을지언정 잠재적 위기를 조금 미래로 유보하는 것은 아닐까? 이는 단순한 UI 적응의 문제가 아니라, 사용자와 기업 사이의 ‘암묵적 계약’이 흔들렸는가의 문제다. 카카오톡이 인스타그램을 탐했다 해도 아직 메신저 계의 틱톡의 자리가 공석인 한 끝난 게 아니다.
UX 관점에서는 단기적 주가나 4분기 실적은 부분적 현상에 지나지 않는다. 승부는 이제 ‘시간’을 주제로 제2라운드로 무대를 옮긴 것 같다. 사용자가 익숙해질 때까지 시간을 주었을 때, 그 미래엔 무엇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까? 다가올 새로운 라운드의 승자는 과연 사용자일까, 아니면 카카오톡일까? 승부 아닌 승부는 이제부터다.
여담으로, 어떤 뉴스에서 UI를 사용자 환경(아마 User Invironment?)으로 표현했던데... 신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