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이너(D)의 영원한 숙명을 대하는 법
안녕하세요 멘토님! 저는 이제 막 UXer로 취업을 준비하고 있는 25살 대학생입니다. 학부 때는 심리학을 전공했지만 사용자 경험이라는 개념에 큰 매력을 느껴 진로를 바꾸게 되었어요.
요즘은 Figma 등 툴도 다루고, 프로젝트도 열심히 하면서 정말 이 길이 저랑 잘 맞는다고 느끼고 있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큰 고민이 있어요. 바로 부모님께 제가 하려는 일을 설명하는 게 너무 어렵다는 점입니다.
“그게 웹디자인(?)이야? 그래픽 디자이너(d)랑 뭐가 다른 건데?”, “그걸로 먹고살 수는 있어?” 같은 질문이 돌아올 때마다 대답을 못 하고 입을 다물게 돼요. 제가 설명을 못 해서 그런 걸까요? 아니면 아직 한국 사회에서 UXer라는 직업이 생소한 걸까요?
멘토님은 혹시 가족이나 지인들에게 이 직무를 어떻게 소개하셨는지 궁금합니다. UX라는 분야의 일을 비전공자나 어른들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하는 좋은 방법이 있을까요? 괜히 걱정을 키우지 않으면서도, 제가 진지하게 준비하고 있다는 걸 잘 전달하고 싶어요.
➥ 저 역시도 처음 이 길을 걷기 시작했을 때 비슷한 경험을 했습니다. 아직 한국 사회에서는 UX라는 단어가 아직도 다소 낯설고, 기존의 그래픽이나 웹디자인(?)과 같은 직군과 구분이 명확하지 않게 받아들여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멘티님의 고민은 충분히 자연스럽고, 오히려 그만큼 이 분야가 새롭고 진지하다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부모님 세대에게 ‘UX 디자이너(?)’라는 말을 한 번에 이해시키는 건 쉽지 않습니다. 보통은 ‘디자인(d)’이라는 말에 시각적 결과물, 즉 보이는 아름다움을 떠올리시지만, UX 디자이너(D)는 ‘보이는 것’보다 ‘사용하는 경험’을 설계하는 직업입니다. 물론 이러한 서론부터 까는 것 자체도 부담스럽죠.
가장 쉬운 예로, TV 리모컨을 처음 써보는 사람이 어떤 버튼이 어떤 기능인지 금방 알아채야 한다면, 그게 바로 UX 설계가 잘 된 결과일 겁니다. 마트의 셀프계산대에서 당황하지 않도록 만드는 것도, 병원 키오스크가 노인분들에게 너무 어렵지 않도록 설계하는 것도 다 UXer의 몫이죠.
이런 일상의 사례를 기반으로 설명하면 ‘아, 그런 것도 사람이 설계하는 거구나’ 하시며 고개를 끄덕이시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어쩔 수 없이 사례를 위주로 설명을 해야만 그나마 승산(?)이 있었던 것 같아요.
사실 이건 디자이너(D)에게는 거의 숙명이라고 봐야 합니다. 저는 중학교 때부터 지금까지 계속 이 짐을 짊어져 온 것 같습니다. 매 순간 “지금 뭘 하고 있는 거니?”라는 질문에 똑 부러지게 대답하지 못했던 기억이 한가득이에요. 결과적으로 보여줄 것이 없다 보니, 꾸중이나 오해를 감수해야 하는 순간들이 많았고요. 어쩌면 그 답답함과 억울함이 멘토링을 하게 되는 큰 동력이 된 것도 같네요.
특히 부모님께서 경험하신 직업이 진출 루트나 평가 기준이 명확한 구조였다면, 이 일을 설명하기는 더더욱 어렵습니다. UX는 준비과정도, 채용의 방식도, 업무의 정의도 명확하지 않은 부분이 많기 때문입니다. 실력보다는 운이 작용하는 듯 보이기도 하고, 작은 회사를 여러 군데 다니는 것처럼 보여 괜한 불안감을 키우게 되기도 합니다. 게다가 유명한 롤모델이 있는 것도 아니고, 눈에 띄는 성과물이 금방 나오는 분야도 아니다 보니, ‘비전’을 말해보려 해도 큰 설득력을 얻기 어렵죠.
이럴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비전'을 설파하기보다는 '내가 이 일을 얼마나 진지하게 준비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멘티님처럼 심리학이라는 학문적 기반에서 출발하여, 현재 Figma 등 실무 도구를 익히고 있고, 프로젝트도 성실히 수행하고 있다는 건 분명 강력한 준비과정입니다.
결국 핵심은, 이런 실질적인 증거들을 통해 설명과 전달 보다도 어찌 보면 '안심'을 시켜드리는 것이 관건 아닐까 생각합니다.
단순히 “요즘 뜨는 직업이라 하고 싶다”는 말보다, “내가 가진 전공을 UX에 어떻게 녹이고 있는지”, “이 일을 위해 어떤 프로젝트를 하고 있는지”, “현업에서 어떤 사람들이 일하고 있는지” 등을 차분히 이야기했더니, 조금씩 신뢰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부모님이 단번에 이해하고 응원해 주시는 건 아닙니다. 사실 이건 한 번에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는 걸 받아들이는 게 먼저입니다. 사내에서도 비슷한 경험을 합니다. UX라는 직무가 아무리 중요하다 해도, 그 가치를 잘 알아도 막상 일을 하다 보면 망각할 때가 많습니다. 회사에서는 부모님 같은 임원분들을 똑같이 설득해야 할지도 모르는 일이라면, 이것은 정말 숙명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과정을 애써 ‘즐기기로’ 했습니다. 답답하고 억울한 순간들이 생기더라도, 그 감정 자체가 나만의 성장통이라는 걸 인정하면서 말이에요. ‘설명할 수 없는 일을 설명해 나가는 능력’은 UX 직무에 필수인 커뮤니케이션 능력과도 맞닿아 있습니다. 수십, 수백 가지 방법으로 설명할 줄 아는 사람이 되는 게 오히려 낫겠단 결론도 얻었죠. 그 모든 과정이 내 UX 근육을 단련시키는 훈련이라고 생각하면 조금은 견딜만해지기도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언젠가 멘토가 되어 멘토링을 할 것을 꼭 추천합니다.
이 글을 읽는 모든 분들께도 공통으로 당부드리고 싶은 말이 있다면, ‘이해받지 못하는 경험’은 UX라는 직무를 택한 이들이라면 누구나 겪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혼자만 답답해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 그것이 단지 취업을 준비하는 지금의 문제만이 아니라 앞으로도 반복될 수 있는 구조적인 숙명이라는 점을 받아들이시길 바랍니다.
하지만 그만큼 UX라는 일은 ‘보이지 않는 것을 설명하고, 납득시키고, 개선하는’ 힘이 필요한 일입니다. 그렇게 보면, 지금 이 상황조차 UXer로서의 역량을 기르는 훈련일 수 있습니다. 이 일을 통해 사람과 세상을 연결하고 싶다는 마음이 있다면, 지금의 답답함도 언젠가 누군가에게 깊이 공감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될 겁니다.
부모님을 설득하기 위해 애쓰는 멘티님의 모습, 저는 이미 UXer로서 중요한 태도를 갖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마음이 흔들리지 않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