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의 상처는 나의 잘못이 아니에요
안녕하세요. 저는 IT 스타트업에서 1년 차 프로덕트 디자이너로 일하고 있는 28살입니다. 첫 직장이라 기대도 크고 열심히 배우겠다는 마음이 컸는데, 입사 초반부터 사수 분과의 관계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어 고민 끝에 글을 남깁니다.
업무적으로 제가 놓친 부분이나 미숙한 점에 대해 피드백을 주시는 건 당연하다고 생각하지만, 종종 비꼬는 말투나 무시하는 듯한 언행을 마주할 때마다 점점 자신감이 떨어지고 있어요. 질문을 드려도 “그걸 왜 몰라?”라는 식의 반응이 돌아오다 보니, 점점 물어보는 것도 무서워지고, 결국 혼자 끙끙 앓게 됩니다.
조직 내에 또 다른 UXer가 없는 구조라서 더욱 외롭고, 버텨야 할지 이직을 고려해야 할지 고민도 깊어지고 있어요. 멘토님도 혹시 커리어 초반에 사수와의 갈등이나 어려운 관계를 겪은 적이 있으셨나요? 그럴 때 어떻게 상황을 풀어나가셨는지, 혹은 어떻게 마음을 다잡으셨는지 조언을 듣고 싶습니다.
➥ 멘티님의 질문을 읽으면서, 첫 직장에서의 기대와 현실 사이의 간극, 특히 팀 내에서 유일한 주니어 UXer로서의 외로움이 절실히 느껴졌습니다. 첫 직장이라는 건 누구에게나 소중한 출발점이지만, 함께 일하는 사람에 따라 그 기억의 빛깔은 너무도 달라질 수 있습니다. 사수와의 관계에서 생기는 문제는 단순한 성격 차이를 넘어, 성장 기회를 가로막는 심리적 장벽이 되곤 하죠. 멘티님이 지금 겪고 있는 좌절감은 당연한 감정이며, 충분히 공감됩니다.
저 역시 커리어 초반에 유사한 경험을 한 적이 있습니다. 의욕적으로 질문했지만 돌아오는 건 차가운 말투와 ‘그걸 왜 모르냐’는 듯한 반응이었고, 점차 질문 자체가 두려워졌던 시기였죠. 사실 제가 일을 너무 못해서 그런 것도 맞기 때문에 상대방을 이해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니 더 비참했죠.
이럴 땐 인간의 뇌가 이 모든 환경을 자연스레 ‘위협’으로 인식해 방어 모드에 들어가게 됩니다. 그래서 질문을 멈추고 혼자 끙끙 앓게 되는 겁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건, 이 반응을 통해 '멘티님의 문제가 아님'을 인식하는 겁니다. 단순히 실력이 부족하거나 눈치가 없어서 이런 상황이 벌어진 게 아니라, 건강하지 않은 커뮤니케이션 방식에 반복적으로 노출됐기 때문에 생긴 자연스러운 결과란 것이죠.
이러한 관계가 오래되면 번아웃이 올 수도 있습니다. 일보다 관계로 인해 소진되는 에너지가 실은 어마어마합니다. 어쩌면 혼자 끙끙 앓는 것은 그만큼 에너지를 아껴보려는 본능적 자구책일 수 있어요.
저는 이런 상황에서 가장 중요한 건 '나 자신을 지키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선 사수의 피드백에서 '내용'과 '형식'을 구분해 받아들이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내용적으로 유의미한 피드백이라면 받아들이고 개선하면 됩니다. 물론 말이 쉽지 어렵죠. 용기도 많이 많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비꼬는 말투나 무시하는 언행은 내용과 무관하게 '관계의 방식'에 관한 문제입니다. 이럴 경우, 그대로 받아들이지 말고 감정을 분리시키는 것이 중요합니다. “저 피드백은 맞는 말일 수도 있겠지만, 전달 방식은 적절하지 않다”는 식의 내부 대화가 필요하죠.
이런 방식이 반복되면 스스로에 대한 신뢰를 유지할 수 있게 되고, 최소한 관계에서 감정적으로 휘둘리지 않게 됩니다. 물론 이렇게 말을 전하고 있는 저 역시 이걸 알지만 몹시 실천하는 것을 어려워하는 스타일이긴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5번 중에 1번이라도, 10번 중에 1번이라도 이렇게 넘길 수 있다면 그게 어딘가요?
조직에 다른 주니어 UXer가 없다면 더욱 힘드실 텐데요, 저는 이럴수록 외부의 도움을 구하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정확히는 도움을 구한다기보다는 나의 숨통을 틔워준다랄까요?
내부에 공식적인 피드백 루트(예: 주간 회고, 피드백 노션 문서 등)가 있다면 그것을 활용해 보세요. 비공식적으로라도 타 팀의 동료나 동료 개발자와의 협업 경험 속에서 “요즘 이런 피드백이 반복되는데, 내가 어떻게 다르게 접근하면 좋을까?”라고 의견을 묻는 것도 좋은 전략입니다.
이런 방식으로 멘티님의 커뮤니케이션 패턴에 대한 '객관화'가 가능해지고, 때로는 뜻밖의 지지를 얻을 수도 있습니다. 또 잘 맞는 분이 계시면 그로 인해서 심리적 에너지도 얻을 수 있습니다. 저 또한 그런 외부의 소소한 코멘트한 줄에서 큰 위안을 얻었던 적이 많았습니다. 물론 근본적인 문제해결이 아니기에 일시적이었긴 하지만요.
이직은 무조건적인 회피라고 생각하지 않지만, 어떤 경우에는 '성장을 위한 전략적 선택'이 될 수 있습니다. 다만 이직의 시점은 단순히 감정의 피로가 아니라, 실제로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소진되었을 때 판단하는 것이 좋습니다.
예컨대, 사수 외에 배울 수 있는 다른 채널도 없고, 업무 자체에서도 의미를 찾기 어려우며, 매일이 감정적 소진으로 이어진다면, 저는 멘티님이 스스로를 보호하는 차원에서 다른 기회를 모색해 보는 것도 충분히 정당하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현재의 경험이 어떤 조직문화에서는 오히려 귀한 학습 경험이 될 수 있다는 점도 고려해 보시면 좋겠습니다. '좋은 팀문화'가 무엇인지, '건강한 피드백'이 어떤 것인지에 대한 안목을 갖게 되는 계기가 되니까요.
그리고 이건 여담인데,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들이 오가다 보면 저절로 조직문화도 변화합니다. 극단적으로 사수분께서 이동을 하거나 이직을 하는 일이 생길 수도 있고, 내부에서 갑자기 다른 부서나 프로젝트로 발령이 날 수도 있습니다. 이런 외부적 요인에 의해서 본의 아니게 일이 해소될 수도 있기 때문에 무조건적인 이직을 마음에 품진 않으셨음 합니다. 왜냐하면 취업이 어려운 시기인 만큼 내 커리어를 잘 지킬 필요도 있으니까요.
저는 멘티님이 지금 이 상황을 통해 ‘어떤 UXer가 되고 싶은가’에 대한 윤곽을 스스로 그려나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만큼 성찰적이기 때문에 고민도 깊은 것이고요. “나는 훗날 어떤 사수가 되고 싶은가?”, “같은 말을 하더라도 어떻게 말하면 후배가 무너지지 않을 수 있을까?”라는 질문은 멘티님의 성장을 더욱 단단하게 만들어 줄 겁니다. 결국 우리가 함께 일하는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가가 더 긴 커리어에서 중요한 자산이 되더라고요.
현재 상황이 버겁고 힘들겠지만, 그것이 곧 멘티님의 실력이나 가능성을 말해주는 것은 아닙니다. 관계에 상처받았다고 자신감까지 꺾이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여전히 멘티님은 배우고 성장하고 싶은 의지가 충만한, 아주 괜찮은 UXer임을 잊지 마세요. 언제든 방향을 바꿀 수 있고, 더 나은 조직과 더 좋은 사수를 만날 수도 있습니다. 그때를 위해, 지금의 경험을 '내 안의 매뉴얼'로 잘 저장해 두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