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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그렇게 살 필요는 없다란 말

by UX민수 ㅡ 변민수

누군가의 위로처럼 들릴 때도 있지만, 이 말은 동시에 나의 열정을 무디게 만드는 마법의 주문이기도 하다. 대부분의 경우, 이 말은 옳다. 세상은 평균으로 흘러가고, 사람은 그 평균 안에서 안전하게 산다. 다들 그렇게 살지 않아도 되니까. 너무 애쓰지 않아도, 너무 깊이 빠지지 않아도, 충분히 괜찮게 살아갈 수 있다.


하지만 나는 문득, 그 “대체로 옳은 말”이 나에겐 틀릴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나는 언제나 그 ‘대체로’에 속하지 않았으니까. 태어날 때부터 특별했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살다 보면 어떤 면에서든, 누구나 한 번쯤은 극소수적인 존재가 된다. 그게 나에겐 조금 더 자주 찾아왔을 뿐이다. 그러니 비단 내 이야기도 아니다.




뾰족함을 둥글게 만드는 조언


어떤 취미에 깊이 빠져들거나, 한 화두를 붙잡고 며칠 밤을 새워보는 사람이라면 안다. 세상은 그런 몰입을 ‘과하다’고 부른다는 걸. 하지만 그런 말은 쉬이 나의 ‘집중’과 ‘깊이’를 향한 방향을 꺾어놓는다. 내 안의 뾰족한 면이 조금씩 닳아 없어지는 것이다.


나는 그 뾰족함을 지키고 싶었다. 그것이 나의 고유한 반응이고, 나를 움직이게 하는 내면의 추진력이었으니까. 세상은 평균을 향해 나아가지만, 세상의 변화는 언제나 극소수의 예외로부터 시작된다. 언젠가부터는 그것을 지킬 능력을 소유할 수 있었다. 그때부터 나는 그런 나를 소중히 가꿔가고 있다. 그리고 모두가 그랬으면 하는 바다.



‘특수해질 필요도 있다’는 선언


덕업일치(德業一致)라는 말이 진부할 정도로 트렌드 이상으로 생존의 한 방식이 되었다. 취미가 업이 되는 시대, 몰입은 더 이상 괴벽이 아니라 경쟁력이기도 하다. 평균에 맞추는 대신, 나의 특수성을 더 깊게 갈아 세공할 필요가 있는 이유다.


그렇기에 “꼭 그렇게 살 필요는 없다”는 말은 나의 둥근 면에는 통하겠지만, 나의 뾰족한 면에는 해롭다. 내 안의 어떤 부분은 그렇게 살아야만 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내가 남들과 다른 속도로, 다른 방식으로, 다른 감정으로 반응한다면 그것은 결함이 아니라 정체성이다. 그리고 그 정체성은 ‘특수해질 필요’가 있는 영역이다.



대체로 듣되, 예외를 기억하라


우리는 종종 평균의 말로 자신을 재단한다. ‘보통은 그렇다’, ‘다들 그렇게 산다’는 말속에서 위로를 받는다. 그러나 그 위로가 나의 가능성을 깎아내리고 있다면, 그건 더 이상 위로가 아니다. 그러니 이 말은 이렇게 바꿔야 한다.


대체로는 그렇게 살 필요가 없지만, 네가 가진 어떤 면은 그렇게 살아야만 한다.


삶은 둥근 부분과 뾰족한 부분이 공존하는 다면체다. 그중 어느 면을 무디게 하고, 어느 면을 갈아 세울지는 스스로 선택해야 한다. 결국, ‘꼭 그렇게 살 필요는 없다’는 말조차, 나의 뾰족함을 찾기 위한 기준선으로 사용해야 한다.




나는 대체로 평범하지만, 동시에 극소수다. 모두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 사실을 인정하는 순간, 삶은 조금 덜 흐릿해진다. 세상의 조언 대부분은 평균을 위한 말이다. 하지만 나의 어느 한 부분은 결코 평균으로 존재할 수 없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내 안의 그 예외를 향해 묻는다.


나는 정말, 그렇게 살 필요가 없을까?


어쩌면, 나는 그렇게 살아야만 하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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