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세상은 참 시끄럽다. 전쟁은 지도를 바꾸고, 뉴스는 매일 새로운 참상을 전한다. 총과 미사일이 멈추지 않는 동안, 평화는 그저 낭만적인 단어로 밀려난 듯하다. 그렇다고 다음 표현이 맞는 표현이 될 수 있을까?
평화는 끝물이다.
평화에 끝물이라는 게 있을 수 있겠지만, 지금 우리에게 그런 생각이 생산적일까? 역사는 언제나 파괴의 뒤편에서 재건을 시작했고, 인류는 끝이라 믿는 순간마다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왔다. 한쪽의 기준에서의 끝이 다른 시각에서는 새로운 시작이 된 사례는 너무 많다.
그렇다면 묻고 싶다. AI가 세상을 재편하고, 인간의 역할이 불안해진 지금, UX라는 사용자 경험의 시대란 정말로 끝물일까?
AI가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고, 영상을 뚝딱 만들어낸다. 기계는 빠르고, 싸고, 정확하다. 그래서 사람들은 점점 불안해진다.
이제 인간의 역할은 뭘까?
이 질문은 단순한 생계의 문제를 넘어, ‘존재의 이유’를 묻는 철학이기도 하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이 질문이야말로 UX 분야가 늘 다루어온 핵심 주제 중 하나다. UXer는 늘, 무엇이 사람에게 어떤 의미일지 고민해 온 역할이다.
기계가 효율을 만든다면, UXer는 그 효율이 인간에게 어떤 감정을 남기는지까지도 고민하는 시각이다. AI가 기능을 구현한다면, UXer는 그 기능이 어떻게 사람의 삶에 스며드는지를 설계해야 한다. AI가 꽤 많은 대부분의 일을 ‘할 수’ 있게 되었지만, ‘왜 해야 하는가’를 결정하는 일은 여전히 인간의 몫이다.
결국 UXer는 그 ‘왜’를 설계하는 사람들이다. 자동화가 능사는 아니기다. 우리는 디지털 시대에도 의도적으로 불편한 아날로그를 찾기도 한다. 거기에 감성이 있다는 식으로 표현하는데 이것은 한편으론 포장이기도, 또한 현상을 그대로 보여주는 단편이기도 하다.
역할의 소멸이 아닌 역할의 재정의로, 마치 애벌레가 고치가 되어 나비가 되는 과도기에 놓인 이것도 저것도 아닌 상태는 아닐까. 낙관도 비관도 무의미한 시기인 셈이다.
AI 시대가 오면 일자리가 사라진다고들 한다. 물론 벌써 벌어지고 있는 실제상황이다. 그리고 UXer 또한 예외는 아닐 것이다.
하지만 ‘일자리’와 ‘일의 가치’는 다른 문제다. 일자리는 구조의 문제지만, 일의 가치는 의미의 문제다. 기계는 역할을 ‘대체’할 수 있어도, 가치를 ‘정의’할 수는 없다. 먼 미래에, 그럴 수는 있겠지만 아직까진 아득해 보인다.
UX는 단순히 직업이 아니라 관점이자 자세다. 사람을 중심에 두는 사고방식, 즉, 기술의 방향을 인간 쪽으로 되돌리는 힘이다. AI가 도구를 설계한다면, UX는 그 도구를 인간이 ‘느낄 수 있게’ 만든다. 따라서 UX는 대체되는 일이 아니라, 새로운 시대를 해석하는 언어로 진화할 것이다. 그럴 수밖에 없다.
‘끝물’이라는 말은 종종 비아냥처럼 들린다. 유행이 지나고, 시대가 끝났다는 뜻. 하지만 본래 ‘끝물’은 가장 진하고, 깊고, 농도가 짙은 순간을 뜻하기도 한다. 계절의 끝에서 피어나는 꽃, 노을의 가장 붉은 순간. 모두 끝물이지만, 동시에 절정이기도 하다.
UX도 그렇다. 한 시대의 UX는 완성되어 가지만, 다음 시대의 UX는 막 피어나고 있다. 화려한 인터페이스의 시대가 저물면, 이제는 ‘보이지 않는 인터페이스’의 시대가 열리는 중일 것이다. UIless, 감정 기반, 맥락 중심의 경험—이 모든 것이 바로 다음 끝물의 향이다. 그러니까 같은 현상에 대한 해석은 끝이라는 단어보다는 시작이라는 단어에 방점이 찍히는 것이 맞지 않을까.
UXer는 시대의 끝에서 다시 시작하는 이들이 될 것이다. 비록 그 이름이 UX를 벗어날 순 있을지라도 말이다. 기술의 한계를 관찰하고, 사람의 마음을 번역하며, 보이지 않는 불편 속에서 가능성을 찾아내는 누군가의 관점과 시각은 여전히 필요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끝물이 아니다. UX, 이제 끝물? 아니다. 평화가 총성 속에서도 꺼지지 않듯, UX도 자동화 속에서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이때야말로, 진짜 UX의 시대가 열라는 지도 모른다. 마치 특정 전문분야의 사람들만이 향유하던 지식이나 문화가 대중화가 되듯, UX가 대중에게 당연한 상식이 된 시대가 오지 말란 법도 없지 않은가?
끝은 시작의 다른 이름이다. UX의 끝물이라 불리는 지금, 그 안에서 새로운 빛이 피어오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