멘토링은 다소 우발적으로 시작하게 되었다. 잇다에 가입하고 다음날 멘토 승인 메일이 왔다. 그렇게 잊고 있었는데 어느 날 익명의 멘티로부터 질문이 도착했다. 첫 질문이 왔을 때의 설렘과 의아함이 아직도 생생하다. 과제에 대한 의견을 묻는 질문이었다. 내가 전해준 말이 과연 도움이 될 수 있을까? 괜히 혼란을 더 키우는 건 아닐까 걱정도 많았지만, 그보다 더 컸던 건 누군가를 도울 수 있다는 묘한 기쁨은 성취감이었다. 그렇게 시작돼 이어진 답변 행위가 어느덧 9년이라는 시간으로 이어졌다. 이후 활동은 더욱 성장해 다양하게 전개될 수 있었다.
처음에는 단순히 ‘내가 아는 것을 나누자’는 생각이었지만, 반복되는 대화 속에서 내가 멘토로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를 점점 심사숙고해야 했다. 누군가의 진로를 바꿀 수도 있는 중요한 일이라는 자각은, 이후 어떤 질문에도 절대 대충 답하지 않게 만든 원동력이 되었다. 지금 생각해 보더라도, 나에게 멘토링이 없었다면 내가 이렇게까지 UX에 깊이 생각할 기회를 가질 수 있었을까 싶다는 생각도 해본다.
질문을 읽을 때마다 나는 질문 그 자체보다는 그 뒤에 담긴 마음을 먼저 읽고자 했다. 어떤 멘티는 두서없이 긴 이야기를 늘어놓기도 하고, 어떤 멘티는 아주 짧은 문장 속에 불안과 간절함을 숨기고 있기도 했다.
나는 무엇보다 단순히 '정보'를 제공하는 멘토가 아니라, 그 사람의 상황을 진심으로 들여다보는 사람이 되고자 노력했다. 취업을 앞두고 방향을 못 잡고 있는 이, 전공 선택에 혼란스러워하는 이, 처음으로 UX 포트폴리오를 만든 후 피드백을 기다리는 이들 모두가 각자의 속도와 결을 가지고 있었다. 그 속도에 맞춰 조언을 건네기 위해 때로는 질문을 여러 번 읽고, 이전 대화나 맥락을 다시 복기하기도 했다.
특히 질문의 이면에 ‘자신감 부족’이나 ‘방향성의 흔들림’이 느껴질 때면, 내 경험에서 느꼈던 똑같은 감정을 꺼내와 전달하려 했다. 덕분에 멘티에게만 해당하는 조언이 아닌, 내게도 여전히 유효한 말들을 자주 마주할 수 있었다. 그 덕분인지 몇몇 멘티와는 깊은 신뢰도 생겼고, 단순한 1회성 조언이 아닌, 함께 성장하는 관계가 가능했던 것 같다.
UX라는 단어는 너무 흔해졌지만, 그 의미를 깊이 있게 이해하는 사람은 여전히 많지 않다. 멘토링을 해오며 가장 자주 접한 질문이 ‘UX 디자이너(?)는 정확히 무슨 일을 하나요?’라는 것이었는데, 그때마다 나는 같은 말을 반복했다. UX는 단지 예쁜 인터페이스를 만드는 일이 아니며, 특정 툴이나 스킬셋에 국한되는 일도 아니라고.
그것은 결국 '사용자 경험을 설계하는 일'이고, 그 말은 다시 말해 '사람을 이해하는 일'이다. UX를 잘하려면 도구보다 먼저 사람에 대한 관심이 있어야 하고, 관찰력과 통찰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건 ‘공감’이다. 유저의 관점에서 문제를 보고, 필요를 찾아내고, 더 나은 흐름을 설계하는 그 모든 과정은 끊임없는 감정 노동과 사고의 반복이다. 물론 원론적인 이야기다. 현실은 전쟁터다.
현업에서 마주하는 UX는 도메인에 따라 다르고, 조직 구조나 역할에 따라도 그 실체가 크게 달라진다. 그래서 나는 멘티들에게 항상 말해왔다. "UX의 정의보다, 당신이 하고 싶은 UX는 무엇인가요?"라고. 그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보고, 그 대답을 찾는 과정이 UX 커리어의 출발점이라고 믿는다.
지난 9년간 멘토링을 해오며 나 스스로에게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직무가 달라졌고, 팀이 바뀌었으며, 회사 내 위치와 역할도 다르게 정의되었다. 그 모든 변화 중에서 가장 큰 사건을 꼽자면, 단연 책을 출간한 일이다. 오랜 시간 동안 쌓아온 멘토링 경험과 생각들을 글로 묶어 하나의 결과물로 낼 수 있었다는 점에서 매우 뜻깊은 일이었다. 하지만 출간은 하나의 종착점이 아니라 또 다른 출발점이라는 걸 곧 깨달았다.
책을 냈다고 해서 내가 멘토로서 뭐라도 되는 것은 당연히 아니다. 오히려 그 이후가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이후에도 계속 글을 쓰기로 했다. 무엇보다 마음 다스리기에 집중했다. 매일 브런치에 글을 올리는 루틴을 만들고, ‘쓰기’라는 근육을 키우며 나만의 리듬을 다져나갔다.
어느 순간 스스로를 UX 크리에이터로서의 정하기에 이른다. 이제는 더 책임감 있게 콘텐츠를 만들어가고 싶다. 단순한 지식 전달이 아닌, 흥미롭고 재밌는 이야기를 통해 누군가에게 닿을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히 가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나는 지금도 매일 쓰고, 다듬고, 나아가고 있다.
올해 멘토링 여정 중에 가장 인상 깊었던 사건이 하나 있었다. 멘토링 몇 차례 했던 한 멘티가 드디어 자신도 누군가의 멘토가 되고 싶다는 의사를 명확히 밝혀온 것이다.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는 일종의 면접 아닌 면접을 했는데, 멘토가 되어도 전혀 문제 될 게 없는 내가 좋아하는 에너지를 뿜는 것이었다. 마치 씨앗을 심고 오랜 시간 물을 주며 기다리던 나무가 어느 날 작은 꽃을 피운 느낌이었다.
그 멘티는, 아니 그 멘토님은 회사에서도 좋은 성과를 내며, 일에 대한 태도도 성숙해졌으며, 후배들을 위해 조언을 아끼지 않는 모습을 보게 된다. 내가 준 작은 말 한마디가 그 사람의 내면 어딘가에서 자라나, 이제는 또 다른 누군가에게 영향을 줄 수 있다니… 그 자체로 너무 장하고, 진심으로 칭찬하고 싶은 순간이었다.
이런 경험을 통해 다시 한번 멘토링의 본질을 생각하게 됐다. 그것은 단순한 정보의 교환이 아니라, 가능성의 전염이다. 내가 받은 것을 또 다른 사람에게 전하고, 그렇게 작은 물결들이 확산되어 큰 흐름이 만들어지는 일. 나는 그 흐름의 일부가 되었다는 사실이 자랑스럽고, 앞으로도 그 연결을 더 많이 만들어가고 싶다.
시간은 어느새 9년을 꼬박 지나고 있고, 자연스럽게 다음 숫자를 생각하게 됐다. 이제는 10주년을 준비해야 할 때다. 구체적인 계획은 아직 없지만, 이 시간을 어떻게 의미 있게 기념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은 이미 시작되었다. 단순히 돌아보는 행사가 아니라, 앞으로의 방향을 제시하는 무엇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다. 작은 토크 모임일 수도 있고, 나만의 전시나 기록 프로젝트일 수도 있다.
중요한 건 '의미 있는 무언가'를 해보고 싶다는 것이다. 아마도 이 멘토링 여정이 내 삶에 남긴 가장 큰 흔적 중 하나이기 때문일 것이다. 예전처럼 10주년을 끝으로 그만두자는 식의 생각은 이제 포기다. 마음먹어봤자 어차피 다시 하는 날 여러 번 만났기에 소용없다. 계속하되 어떻게 할 것인지 나를 더 가꾸리라.
지금까지는 질문에 답해주는 사람으로 존재했다면, 앞으로는 질문을 던지는 사람으로도 사실 살아보고 싶다. 물론 Q&A 콘텐츠를 통해서 어느 정도 하고 있기도 하다. 어떤 방식이든, 나만의 방식으로 10년을 기념하고, 그 이후의 시간을 더 풍요롭게 만들어가고 싶다. 멘토링은 이제 더 이상 내가 따로 준비하지 않아도 되는 일이 되었다. 그것은 이미 나의 일상이자, 나를 설명하는 방식이 되었기 때문이다.
직장 내 역할이 바뀌고, 실무 경험이 쌓이며, 여러 프로젝트를 이끌게 된 지금도 멘토링에 임하는 태도만큼은 변하지 않았다. 나는 여전히 멘티가 처음 질문을 보내왔을 때의 긴장감과 설렘을 기억하고 있다. 반대로 얼마나 질문하기까지 힘들었을지 그 마음을 헤아리는 것부터 먼저 생각하며 읽는다.
현업에서는 물론 직무 전문성도 중요하지만, 내가 이 활동을 계속 이어갈 수 있었던 건 바로 이 ‘공감’ 덕분 같다. 또 공감이 가능한 것은 내가 그만큼 힘든 시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UX가 사용자에 대한 공감에서 출발하듯, 멘토링 또한 사람을 향한 공감에서 시작된다고 믿는다. 사실 일상생활에서는 그리 공감을 잘하지 않는 사람임에도 말이다.
한 줄의 답변이라도 그 사람에게는 인생의 방향을 바꾸는 말이 될 수 있고, 멘토링은 때때로 그렇게 강력한 도구가 된다. 그래서 나는 언제나 진심을 다해 쓰고, 전달하려 한다. 9년이라는 시간은 스스로를 돌아보게 했고, 이제는 다음 10년을 준비하게 한다. 나는 앞으로도 UX 멘토로서, UX 크리에이터로서, 그리고 한 명의 인간으로서 이 여정을 계속 이어갈 것이다. 진심은 언제나 닿을 수 있다는 순수한 믿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