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Xer가 갖춰야 할 올바른 ‘호흡’이란
UXer가 갖춰야 할 올바른 ‘호흡’이란
UXer는 왜 ‘디자이너(?)’라고 불리는지, UX 분야와 디자인(d) 전공 사이의 관계는 무엇인지, 디자인(d/D)에 대한 개념 구분이 실무에 어떤 의미를 갖는지 한 번 알아보자.
UX를 처음 접하는 이들이 가장 많이 헷갈려하는 부분 중 하나는 ‘디자인(?)’이라는 단어의 폭넓은 사용일 것이다. 특히 ‘UX 디자이너’라는 명칭을 접했을 때, 대개 자연스럽게 비주얼 중심의 시각디자인, 즉 디자인(d)을 먼저 떠올리곤 한다. 하지만 실제 UX 실무에서 말하는 ‘디자인’은 훨씬 더 넓은 의미, 즉 디자인(D)을 가리키기도 한다. 그러니 문맥에 따라 헷갈리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결론은 말한 사람에게 그 책임이 있단 것이다.
디자인(d)은 협의의 개념으로, 시각화나 그래픽, 꾸미기, 치장 등 미적인 요소 중심의 작업을 말한다. 반면 디자인(D)은 문제를 정의하고, 그것에 대한 해결책을 구상하고, 그 대안을 실제로 설계하는 보다 포괄적이고 이성적인 개념이다. 알파벳 표기는 의미의 구분을 위한 것이 이 모든 전체집합을 그냥 ‘디자인’이라고 한다. 그러니 ‘어떤 것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에 대한 기획과 전략을 포함한 모든 행위가 여기에 해당한다.
UXer가 ‘디자이너(?)’로 (에둘러) 불리는 이유는 디자인(d)도 일부 포함하지만, 바로 이 디자인(D)의 정의와 맞닿아 있기 때문으로 이해해야 한다. UXer는 단지 겉모습을 꾸미는 사람이 아니라 문제를 해결하고 설계하는 사람, 즉 디자이너(D)에 더 가깝다. (더 가까운 거지 GUI가 UX가 아니라고 할 순 또한 없다.)
UX 분야에서 자주 접하게 되는 편견 중 하나는, 디자인(d) 전공이 아니면 UXer가 되기 어렵다는 고정관념이다. 나는 이 주장에 절반은 동의하고 절반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물론 디자인(d)을 기반으로 한 GUI 디자인, 비주얼 커뮤니케이션, 그래픽 디자인 등이 주된 업무인 경우, 시각디자인 전공 경험은 분명 도움이 된다.
하지만 UX는 원론적으로 다학제적인 융합 분야다. 사용자의 문제를 이해하고 정의하기 위해서는 심리학, 인류학, 통계, 공학 등 다양한 배경이 필요한데, 실제로도 다양한 전공 출신의 UXer들이 현업에서 일하고 있다. 디자인(d)이 전부가 아닌 것이다.
실제로 제가 함께 일했던 동료들 중에는 시각디자인은 물론이고 산업공학, 경영학, 심리학, 심지어 회계학 전공자까지 있었다. 그들은 각자의 백그라운드를 기반으로 리서치, 데이터 분석, 전략 수립, 정보구조 설계 등에서 강점을 발휘했고, 협업의 시너지를 만들어냈다. 즉, 디자인(d) 비전공자라고 해서 UXer로서 자격이 부족한 것이 아니라, 어떤 포지션인지와 더불어 어떤 문제를 어떤 방식으로 접근하는가가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물론 비중으로 따지자면 시각화 능력을 원하는 자리가 더 많을 뿐, 결코 일반론이 될 순 없겠다.)
이러한 이유로 나는 ‘UX 디자이너(?)’라는 모호한 표현보다는 ‘UXer’라는 말을 즐겨 사용한다. 혹자는 이 표현이 ‘UX 디자이너’를 격하시킨 의미가 내포되었다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것은 공론화된 이야기도 아닐뿐더러 적어도 UXer라고 하면 지금까지 논의해 온 편견은 발생하지 않는다.
솔직히 말하면, 나 역시도 UXer라는 표현이 그리 온전하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UXer는 그저 UX 업무를 수행하는 사람을 지칭하는 보다 가치중립적인 용어이기에 다소 마지못해 사용하는 측면도 있다. 직무상 세부 역할이 리서처이든, IA 설계자이든, 콘텐츠 전략가이든 모두를 포괄할 수 있는 표현이며, 디자인(d)의 전공 유무에 따른 구분이나 한계를 암시하지도 않는다. 굳이 말하자면, 용어 사용에 대한 당사자로서 나름 책임감의 표현인 셈이다. (그러니 동종업계인으로서 용어를 남발하는 것을 보고 있자면 무책임하단 생각 밖엔 들지 않는다.)
단어 하나가 암시하는 뉘앙스는 의외로 크고, 준비생 입장에서는 그 단어에서 받는 첫인상이 커리어 방향성을 오도할 수도 있다. 때문에 ‘UX 디자이너’라는 말을 디자인(d)으로 이해해, GUI 디자인 위주로 이해하고 Figma 툴 사용 능력이나 시각화된 포트폴리오 구성에만 몰입하는 경우 또한 종종 본다.
이미 언급한 것처럼 이는 절대 틀린 것은 아니나 정확히 맞는 것도 아니라는 게 핵심이다. 무엇보다 UX는 툴을 얼마나 잘 다루느냐보다 사용자 문제에 대한 ‘이해력과 통찰력’이 더 중요한 분야다. 따라서 용어를 정교하게 이해하고 사용하는 태도 자체가, 이미 UXer로서의 성숙도를 보여주는 하나의 기준이 된다고 생각한다.
결국 내가 생각하는 본받을만한 UXer란, 디자인(D)을 대하는 태도를 갖춘 사람이라고 볼 수 있겠다. 디자인(d)이 필요 없다는 게 아니다. 문제를 정의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과정에 기꺼이 몰입하고, 그 과정에서 다양한 시각을 수용하며 논리적으로 설득해 낼 수 있는 사람임을 뜻하는 것이다.
이것은 디자이너(d)의 경우에도 해당되기 때문이다. 그들은 시각화도 중요하지만 주어진 문제를 어떻게 시각적으로 ‘해결’할지를 고민하는 사람이라는 마인드셋을 가져야 한다. 방법이 다를 뿐 모두 ‘문제해결사’다. 단순히 시각적으로 예쁜 무언가를 만드는 사람이 아니라, ‘왜’ 만들었는지를 설명할 수 있는 사람, 그리고 그 이유가 사용자와 제품, 비즈니스에 모두 설득력 있게 연결되는 사람인 것이다.
UXer는 ‘무엇을 만들지’보다 ‘왜 만들지’를 먼저 고민하는 사람이어야 하며, 이러한 태도는 디자인(d)의 스킬이 아니라 디자인(D)의 사고에서 비롯된다. 그렇기에 디자인(?)이라는 단어 하나에도, 그것이 지칭하는 개념의 깊이와 방향성을 분별해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철저해서 손해 볼 게 뭐가 있을까?
UXer는 태생적으로 ‘디자이너(d)’로 좁혀 정의할 수 없는 개념이다. 디자인(d)이라고 해서 단순한 치장과 꾸밈으로 바라보는 태도에서 벗어나야 하고, 오히려 문제 정의자이자 해결사로서의 ‘디자이너(D)’가 되어야 옳다. 그 지점에서 UX와 디자인(d)은 보다 강하게 연결되고, 그 연결 고리를 ‘UX 디자이너(d/D)’가 아닌 ‘UXer’라는 용어로 풀어내는 것이 현명한 접근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디자인(d) 전공 여부로 갈등하거나 주저할 필요 없이, 내가 디자인(D)의 마인드를 가지고 있는지를 스스로에게 물어보는 것이 더 중요하다. 원론적으로 들리겠지만 마인드셋 없이는 아무런 차이도 만들 수 없기 때문이다. 그것이 진짜 UXer로서의 시작이라고 나는 믿는다. 이 책의 가장 중요한 출발점이었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