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제목 비하인드 스토리 ②
이 책은 처음부터 ‘거창한 이론서’는커녕, 그저 달을 바라보며 길을 잃은 이들에게 로켓에 대해 들려줄 요량의 커리어 가이드북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 개도 안 되는 리뷰 중에는 “커리어 가이드북에 불과하다”는 식의 평이 있으니 웃플 뿐이었다.
그 말인 즉, 표지나 서문은 물론 표지조차도 훑어보지 않은 채, 단정적으로 한 줄 던지기에 급급했단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허탈함도 잠시 꾼들의 소행 같다 추론하며 추스렸지만 아쉬운 문화의 그늘이었다.
책을 쓸 당시는 물론 지금까지 나는 인하우스 UXer로서, 회사 내부의 프로젝트나 과정을 자유롭게 공개할 수 없는 위치에 있어 왔다. 그래서라도 ‘무엇을 보여줄 수 있는가’보다 ‘어떻게 안내할 수 있을까’를 더 고민해야만 했다. 취준생을 자극할 구체적 사례의 기록이 불가하다면, 그것이 독자에게 다른 방식으로 닿을 수 있도록 구조와 구성부터 달리 취해야 했다. 어찌 보면 태생적으로 상업성이 결여된 출발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결국 이 책은 내부 현장을 낱낱이 해부하는 보고서가 아니라, 오히려 조직 바깥에서 겪은 생각과 감정을 구조화해 나가는 기록이 되었다. 바로 그동안 꾸준히 이어온 멘토링 활동이 사실상 구성의 중추를 이루게 된다. 그렇게 나는, 한 사람의 UXer로서 ‘보여줄 수 없는 거리’를 인정하면서도 ‘공감할 수 있는 거리’를 만들어내기 위한 어렵고 고된 집필을 감행하게 된다.
회사원으로서 책을 쓴다는 것은, 사실 훨씬 까다로운 일이다. 개인의 경험을 나누되, 조직의 보안을 침해하지 않아야 하며, 사적인 서술이 공적인 메시지로 오해되지 않도록 세심히 조율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보여주지 못하는 것들 사이에서 ‘어떤 방식으로 닿을 것인가’를 계속해서 고민했다. 결국 멘토로서의 경험과 솔직함에 늘 기댈 수밖에 없었다.
우선 출판계약 전에는 겸업금지 관련 우려의 이슈를 모조리 없애기 위해, HR 공식 절차는 물론 임원 결재까지 받은 후 계약을 진행하기도 했다. 그렇다고 무조건 숨기기만 할 수는 없었기에, 출판사와 독자, 그리고 회사의 입장이 충돌하지 않는 교집합을 찾는 것이 중요했다.
결국 나는 구체적인 장면을 나열하는 대신, 독자가 자신의 경험을 투사할 수 있게 챕터를 퍼소나화 하였다. 이것도 양날의 검인 것이 누군가에게는 단비 같은 이야기였지만, 내가 필요한 이야기가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면 결국 책이 지닌 경제적 가치를 제 살 깎아 먹는 격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UXer 답게 책을 구성하는 것을 택했다.
솔직히 말하면, 지금의 책 제목에는 아쉬움이 많다. 잘 지은 제목은 모름지기 독자의 언어로 말을 걸어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책을 내고 나서야 더 깊이 깨닫게 된다. 제목은 단지 책의 간판이 아니라, 저자의 태도이자 책임이라는 사실을.
나는 처음부터 현재의 제목이 과연 독자에게 닿을 수 있을까를 의심했다. 책의 내용은 ‘길잡이’에 가깝지만, 제목은 다소 선언문처럼 들릴 여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말했다시피 그들이 기대할 얘기는 실릴 수가 없었기에. 겉과 속이 다르게 다가가진 않을까 걱정이 들었다. 하지만 책이란 언제나 완벽한 조건 속에서 세상에 나오지 않는다. 여러 현실적인 제약과 맥락 속에서, 조용히 타협하며 최선의 형태를 찾는 과정이기도 했다.
그래서 지금의 제목은 내 선택이자 동시에 내 한계였다. 그것이 잘못이라기보다, 당시의 나로서 감당할 수밖에 없었던 균형점인 셈이다. 그 결과 지금의 제목은 나의 의도를 전부 담지는 못했지만, 내용을 통해서만큼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과 연결되고자 했던 의지’를 많이 담고자 노력했다. 그리고 그 아쉬움 덕분에, 다음에는 꼭 독자의 언어로 피어나는 제목을 붙여주겠노라 다짐도 할 수 있었다.
이 책은 그런 점에서 완벽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 불완전함 속에서 나는 저자로서의 역할을 배웠다. 문장을 쓸 때마다 어디까지 보여줄 수 있을지를 조율했고, 어떤 표현이 가장 진실한 연결을 만들지 고민했다. ‘보여주는 것’보다 ‘닿는 것’을 택했고, 그 선택이 나를 조금 더 나답게 정리해 주었다고 생각한다.
이제 나는 타인의 기대나 제약의 틀 속이 아니라, 내 바람이 담긴 언어로써 못다 한 이야기를 전하고 싶다. 그래서 내가 바라고 밀었던 그 이름을 이제서라도 꺼내보기로 했다.
출간된 책은 어쩌면 ‘이 시작을 위한 예행연습’이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예행연습이 끝났다면 이제는 무대 위로 과감히 올라설 차례다. 그래서, 나는 다시 쓴다. 이제는, 방향을 되돌려 조금이나마 선물 같은 이름으로 빛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