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말 대잔치
[알고리즘의 늪]
데이터 수집은 알게모르게 모든 곳에서, 모든 순간 이뤄지고 있다. 식탁에서 둘러앉아 누나들이랑 얘기하던 내용의 화제에 관련된 영상들이나 글이 소셜 미디어에서 노출되는 것처럼 말이다. 괜히 그 화제에 대해 생각하여 의식적으로 관련 컨텐츠에 과민반응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 정도는 아닐지라도, 데이터는 생각보다 전방위적으로 수집되고 알고리즘에 적용된다.
알고리즘은 '개인화'라는 명목 하에 한 개인의 입맛에 맞춘 컨텐츠를 전달해준다는 이점도 가지고 있지만, 개인의 편향을 가중시킨다는 잠식적인 이면을 가지고 있다. 또한, 알고리즘에는 개인의 취향뿐만 아니라, '소셜 미디어'의 사업적 이득을 위해 개인의 참여(engagement)를 늘리고자 어떻게든 플랫폼 체류 시간을 늘리려고 한다.
체류 시간을 늘리는 방법은 다양하다. 흥미로운 컨텐츠를 제공하는 것이 주축일텐데, 이 흥미라는 건 긍정적인 의미를 담고있지만은 않다. 자극적인 컨텐츠를 표시하거나, 죽음의 소용돌이처럼 전혀 생산적이지 않은 내용을 반복적으로 보여주는 것처럼 말이다.
[분노는 누굴 위한 힘인가?]
몇 주 전, 소셜 미디어나 영상 플랫폼의 컨텐츠에 일희일비하는 나를 발견했다. 자세히 말하자면, 컨텐츠 자체보다, 그 컨텐츠에 대해 얘기하는 사람들의 의견에 대해 때론 분노하고, 때론 환멸을 느끼며, 때론 기뻐하는 나 자신을 보게 됐다. 그 순간 나는 생각했다. '나 뭐하고 있는거지?'
젠더 갈등, 세대 갈등, 회사 조직 내 갈등 등 자극적인 내용들이 판을 친다. 그러한 화제의 담론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분법적으로 나눈 후 상대방에 대한 적개심을 쌓아나간다. 그리고 그러한 영상들을 다시 찾아보고, 다시 분노를 누적시킨다. 분노를 계속해서 쌓고, 쌓고, 또 쌓는다. 그렇게 축적된 분노는 내면에 자리잡은 채로 끝나거나, 아니면 온라인에서 발견된 적대적 상대방에게 분노를 해소하기 위한 폭언을 일삼는다.
[알고리즘은 그걸 배우고, 소셜 미디어에서는 그게 돈이 되며, 크리에이터는 거기에 귀속된다.]
알고리즘은 그러한 분노의 패턴을 배우고, 더욱 노출시키기 시작한다. 개인은 그러한 뉴스에 노출되는 빈도는 더욱 늘어간다. 더욱 안타까운 점은, 그러한 자극적인 컨텐츠들이 사회 전체를 도발하고 있다는 점이다. '참여도'가 돈이 되는 플랫폼에서, 크리에이터들은 (특히 생업인 경우) 그러한 컨텐츠를 생산하도록 반강제적인 강요를 받을 수밖에 없다.
[우리는 분노의 굴레에 갇힌다.]
그렇게 사방에서 문제만 제기하고, 분노만 쌓여나간다. 분노를 조장하는 컨텐츠는 재생산되고, 알고리즘이 유통한다. 서로에 대한 적개심은 날로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지만, 사회에서는 그렇지 않은 듯 가면을 쓰며 살아가는 사람들도 많아지고 있는 것 같다. 문제를 해결할 생산적인 논의는 지속되기 어렵고, 그러한 논의를 주도해줘야 할 사람들 자체가 없는 상황인 것으로 보인다.
지금 진행되고 있는 사회적 담론들이 쓸데 없는 이야기들이 아닌 경우가 많다. 현재 사회에서 빠르게 풀어나가야 할 숙제들이다. 하지만 문제의 본질에 대한 해결은 뒷전으로 한 채, 그저 '왜 발끈하심 ㅋ? 찔려서 그러는 거 아님ㅋ?'라고 서로 농락하며 단순한 진영싸움으로 번져나가고 있는 것이 큰 문제다.
이러한 분노의 굴레에 갇히면 다른 컨텐츠들에 대한 해석도 편향적으로 변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해석에서 그치는 것뿐만 아니라, 이데올로기적인 것으로 변질시켜 선동하는 경우도 잦다. 그렇게 사람들은 확증편향적 사고가 강화되며, 극단적으로 변하기 시작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럼, 플랫폼 문제인가?]
온전히 플랫폼 문제라고 탓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돈은 중립적이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 플랫폼도 비슷한 기준이 적용된다고 생각한다. (물론 의도적으로 알고리즘을 도발적으로 만든 몇몇 소셜 미디어 같은 경우엔 큰 잘못이 있다.) 그 플랫폼을 폐쇄시킨다고 해서, 사회의 문제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그렇기에 사실 이러한 문제를 간단하게 뚝딱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한데, 이 변화란 것은 장기적인 관점이 필요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컨텐츠에 쉽게 전염되는 큰 이유 중 하나는, 개인의 차원에서의 가치관과 정신적 건강함이 부재하여 생기는 경우가 많다고 생각한다.
어떻게 옳고 그른지, 본인이 어떤 것을 지향하는지에 대한 심사숙고가 부재한 채, 그저 '나에게 당장 이득 되는 것'만이 기준이 되면 모든 내러티브가 분노로 변질될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한다. 내가 속한 진영에서 큰 잘못을 하더라도, 이 진영이 무너지면 나의 '이득'과 '존재 이유'도 무너지기 때문에, 자정 작용따윈 일어나지 않는다. 사회의 모두가 그런 생각이라면, 그저 진영 논리만 남아서 옳고 그름따윈 사라진 채, 그저 진영의 승리와 패배만 남아 분노의 전쟁이 시작되는 것 같다.
[그럼 나부터!]
거시적인 방법으로 쉽게 해결하면 얼마나 좋으리련만. 하지만 가장 직관적이고 쉬운 방법은 단계적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나의 행동과 생활 습관부터 바꿀 필요가 크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한다. 분노로 가득차있는 댓글창으로부터 멀어지고, 최대한 건강한 사고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부터 시작하고자 한다. 의도적으로 자극적인 컨텐츠를 생산하는 채널들을 걸러내고, 긍정적인 사고를 만드는 컨텐츠로 나를 둘러싸고 있다.
불평과 불만은 전염된다. 문제 제기를 위해 단발적으로 이뤄지는 것은 상관없지만, 그저 문제에만 집중하여 그 다음으로 나서지 않으면 그것이 또 다른 문제를 낳으며 연쇄적인 작용을 일으킨다. 나는 그 반대의 케이스도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건강하고, 긍정적이고, 생산적인 사고는 다른 사람들이 건강한 담론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이끌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여태 나도 도파민과 아드레날린에 찌들어 살았기에 나에게도 쉽지 않은 과제일 것임을 안다. 하지만 작은 노력들이 쌓여 감정만으로 동요되어 야만적인 싸움을 지양하고, 모두가 행복한 삶을 바라볼 수 있도록 하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