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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람은 우주니까 Aug 04. 2019

#사회가 녹아 있는 표현

사회를 걸러내는 우리만의 표현은 갖기 어려워...

 '열심히'라는 말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매사에 빈둥대고 싶어서는 아니고 저 표현이 지나치게 사회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는 생각을 하거든요. 무슨 말이냐면, 내가 열심히 했다고 말할 때 그 '열심히'가 온전히 내 개념이 될 수 없다는 뜻입니다. 다시 또 이게 무슨 말이냐면, 내가 열심히 했다고 말할 때 다른 사람들의 (집합적인) 판단이 내 판단과 너무도 다를 수 있다는 뜻이죠.



"에이, 그게 무슨 열심히 한 거냐?"


 친한 사이에서는 장난스럽게도 하는 말입니다. 저는 이런 말을 들으면, 저한테 직접 하는 소리가 아니더라도 기분이 묘해집니다. 왜냐면, '내' 열심히는 인정받지 못하고 사회 구성원이 통상적으로 인정할 수 있는 수준의 열심히만 받아들여진다는 의미로 들리거든요. 물론 이건 비단 '열심히'에만 국한되는 이야기는 아닐 겁니다.


 열심히 했다는 공통된 기준이 만약 있다면 무엇일까요? 열심히 했다고 인정 받는 상황을 보면 일단 결과가 좋거나, 그렇지 못하다고 해도 적어도 그 과정에서 노력이 드러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결과가 좋다는 건 또 무슨 뜻일까요? 아주 가볍게 말하면, 결과적으로 좋은 현상이 발생하는 겁니다. 공통적으로 성적이 올라가고 사업이 성장하고 버는 돈이 많아지고, 이런 것들이죠. 


 애매한 부분이 보입니다. 결국 그 '좋은' 현상이라는 건, 이 모든 걸 바라보는 사람의 입장에 따라 달라질 수 있고 그 현상이 나타나지 않으면 그 과정은 눈밖으로 나가버리는 상황이 발생합니다. 그리고 그런 주관적 판단은 대체로 많은 사회 구성원이 동의하는 기준으로 수렴합니다. 다른 사람들이 거의 끄덕거릴 수 있는 기준에 맞춰 보게 되는 거죠. 그런 주관성 때문에 지표를 객관화하고 그 지표에 맞게 개인의 성과를 판단하는 절차도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차라리 낫습니다. 열심히 했다, 안했다 표현보다는 목표로 정해놓은 성과를 달성했다, 못했다 표현이 그나마 납득이 됩니다. 물론 현실적인 목표설정이 됐다는 가정이 필요하겠지만요.


 성과를 달성하지 못했어도, 과정에서 투여한 노력이 드러나면 열심히 했다는 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바라보는 사람이 과정을 매순간 볼 수도 없고 보지도 않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때로는 그걸 보여줄 기회가 없기도 하죠. 중간중간 이러한 과정을 거쳐 이만큼 노력했다는 걸 증명할 여지가 없을 만큼 상황이 빠르게 돌아가기도 하니까요. 어쩔 수 없이 이 모든 결과는 또다시 개인적인 '열심히'를 지워버리게 됩니다. 나는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지만 눈에 띄지 않았고 가시적인 결과도 보이지 않으니 저들이 공통적으로 갖고 있는 '열심히' 개념과 거리가 멀어질 수 있습니다.


 이 사회적인 성격의 열심히 했다, 안 했다는 말을 저는 그래서 꼭 염두에 둘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지나치게 개인의 노력과 행태를 사회적으로 일원화하는 개념으로 들리니까요. 그런 표현을 들을 때도 나름의 구체적인 번역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의 모든 노력을 그 한 단어로 환원하지 말고, 그리고 (어렵겠지만) 그 표현에 감정적으로 반응하지 말고 도대체 저 말이 내 어떤 행동을 가리키는지 살펴보는 거죠.


 그렇게 번역하는 게 낫다고 말하는 이유는, '열심히'라는 표현은 차라리 내가 나를 돌아보고 내 성장을 판단할 때 쓰이는 게 더 효과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전 프로젝트에서 지나치게 수동적으로 과제 분담을 받았는데 이번에는 조사도 미리 해보고 나름의 고민을 해서 과제를 능동적으로 설정했다면 저는 제가 열심히 했다는 판단을 할 겁니다. 부족한 점을 인지하고 극복하려고 노력했으니까요. 이 역시도 개인적인 판단이지만 어디까지나 제 행동에 국한된 판단이니 대체로 별다른 문제가 없습니다. 판단에 어려움을 유발하는 수많은 병리적, 상황적 요인은 일단 배제하고 말하자면요.


 여기까지 와보면, 사실 '열심히'라는 표현이 필요가 없습니다. 어차피 내 성장에 주로 쓸 표현이라면 내 성향에 맞는 표현이 더 좋죠. 저는 대신 '재미있게'라는 표현을 사용합니다. 지금까지 제 행동을 돌아보면, 제가 재밌게 무언가를 했을 때 항상 그 '열심히'가 나왔습니다. 노력을 엄청 투여했거나 결과가 좋았던 일에는 모두 제가 재밌게 즐겼던 모습이 있었습니다. 누군가가 열심히 했냐고 물어보면 그래서 저는 "재밌게 했어!"라고 선문답처럼 답을 합니다.



사회의 영향을 잘 걸러 받는 개인!


 이런 표현들을 마주할 때마다 개인과 사회의 관계를 생각해봅니다. 자연스레 사회는 구조적으로 개인에 영향을 미쳐왔고 또 개인은 나름의 사회화를 거치며 사회적 영향력에 대응해 왔습니다. 그렇지만 이 쌍방향의 영향에 균형점이 있을까요? 사회가 이 정도 이상은 개입하면 안 되고, 개인이 사회에 이 정도로 영향을 미치려고 하면 안 되는, 그런 지점이 있을까요?


 아무래도 개인이 사회에 영향을 미치는 데 한계를 설정하는 건 조심하지 않으면 독재를 연상하게 합니다. 개인의 행동이 모여 사회의 일부를 바꾸는 과정은 사회의 안정성을 해치는 문제(국가전복, 범죄 등)를 일으키지 않는다면 딱히 막을 이유가 없다는 게 원칙적으로 받아들여집니다. 법과 제도의 테두리 안이라면 개인이 사회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든 보통 허용이 된다는 거겠죠.


 반면 사회가 지나치게 개입하면, 반발이 생깁니다. 그 사회가 어떤 체제 하에서 작동하는지에 따라 다르겠지만 사회의 핵심가치를 짓누르거나 인간적인 삶을 건드리면 화약고가 터지곤 했습니다. 혁명들의 존재는 사회가 개인에게 영향을 미칠 때 균형점이 특히 필요하다는 사실을 얼핏 시사합니다. 아무래도 이렇게 존재를 건 행동으로서의 혁명이 거의 유일하게 눈에 띄는, 개인의 사회를 향한 영향력이니 힘의 비대칭이 보이기도 합니다.


 사회에 영향을 주는 일은 어렵고 사회로부터 영향을 받는 과정은 우리가 어렸을 때부터 자연스럽게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다시 말해 사회가 녹아든 개념과 표현들을 우리는 어느 정도는 쓸 수밖에 없고 그 표현이 지나치게 억압적이고 피해를 준다고 해도 의식적으로 생각해보기 전에는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걸러낼 체가 필요합니다. 사회를 능동적으로 바라보고 부정적일지도 모를 영향력을 자신에 맞게 걸러서 받을 수 있는 사고방식과 인지가 중요합니다. 물론 그건 너무 어렵긴 합니다. 우리의 사고방식, 삶의 양식에 자연스럽게 반영된 사회라서 떼어내기가 어렵죠. 근데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저는 체가 꼭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나도 모르는 새 부정적인 영향을 받는 건 너무 억울하기도 하니까요.




 제가 '열심히'를 '재밌게'로 치환한 과정을 너무 거창하게 적은 것도 같습니다. 물론 사회가 반드시 우리의 적은 아닙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적이 될 가능성이 없지는 않지만요. 우리에게 많은 걸 주는 것도 사회잖아요. 어쨌든 그 사회를 살아가면서 우리는 많은 걸 합니다. 돈도 벌고 연애도 하고 무언가를 배우기도 하죠. 그렇게 살아가면서 이따금, 주변의 뭔가가 잘못됐다고 생각하거나 부담스럽거나 기분이 나쁠 때 한 번쯤 멈춰서서 보면 좋을 듯합니다. 그게 나 혹은 내 주변의 개인들의 문제 때문인지, 아니면 그걸 넘어 사회적인 압력이 잘못 작용하고 있는 건지.


짧은 생각이었습니다 :)


                                                                                                                                                                    W_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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