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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람은 우주니까 Aug 13. 2019

#어르신들의 가치 있는 내공

나이가 듦에 가치가 있길 바라며

 사회적 메시지를 담은, 혹은 예술적인 미가 흐르는 웹툰, 영화, 전시 등을 좋아하지만 한편으로는 통쾌한 액션이 가미된 작품에 홀린 듯 따라가기도 합니다. 예를 들자면 영화 <매트릭스>는 제 인생영화 중 하나이고 만화 <용비불패>는 제 온몸에 전율을 일으켰을 정도입니다.


 요새는 웹툰을 통해 액션을 많이 경험합니다. 영화나 전시, 연극 등의 예술장르는 어느 정도 돈이 들어 상황에 따라서는 못 보는 경우가 많지만 만화는, 적어도 웹툰은 돈 들이지 않고 손쉽게 찾아볼 수 있어 좋습니다.


 액션물에는 전통적인 무협도 있고 이를 현대적으로 각색하거나, 현대식 무술, 격투를 가미해 풀어낸 작품이 많습니다. 그 중에서 권투, 주짓수 등의 현대무술은 잠시 논외로 하면, 은근히 신기한 공통점이 무협 장르에서 드러납니다. 바로 강력한 노인들이 몸소 활약한다는 사실입니다.


 사회적으로 나이듦은 곧 쇠약을 의미하곤 합니다. 노인은 사회적 약자로 분류되고 실제로 홀로 사는 노인들은 매우 덥거나 추운 날에 혹은 불이 나는 등의 재해상황에서 대처를 하지 못하고 어이없게 세상을 떠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무협에서만큼은 수련만 꾸준히 한다면 나이가 들면서 내공은 더욱 고강해지고 젊은이들은 엄두도 못내는 온갖 고급 초식을 운용할 수 있습니다. 무협에서는 다양한 무공 종류가 있고 그 무공을 지키고 발전시키는 문파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보통 그 문파를 책임지는 문주는 나이 든 사람들입니다.



 문득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무협이라는 장르는, 나이가 들어가면서 '무용'하다는 인식에 휩싸인 노인들과 그 인생을, 내공이라는 개념으로 승화한 결과물이 아닐까. 인생경험이 풍부해 충분히 개인으로서도, 사회 일원으로서도 역할을 맡을 수 있으나 몸과 정신이 쇠약해졌다는 이유로 짐짝 취급을 받고 사회 한 켠으로 밀려나는 노인들의 모습이, 너무도 부당해서 만들어진 장르 아닐까. 적어도 그 속에서만큼은 노인들의 인생경험이 엄청난 내공으로 바뀌어 젊은이들보다 훨씬 화려하게 삶을 살도록, 노인에게 가장 자유롭고 가장 낭만적일 수 있는 세계를 설계한 결과가 아닐까.


 물론 대단한 노인들이 있지만 무협은 대부분 무공을 배우며 성장해 나가는 젊은 사람을 주인공으로 둡니다. 그리고 그 성장기가 무협을 읽는 많은 사람들의 피를 끓게 합니다. 허나 성장에는 거의 대부분 자신을 가르치는 나이 든 스승이 관여하고 주인공은 청출어람하며 더 큰 무대로 나아갑니다. 결국 누가 주인공이든, 지혜롭고 강한 사람은 노인들인 거죠. 이쯤 되면 '성장기'라는 요소는 노인의 인생경험을 은근히 강조하는 무협장르가, 흥행하도록 구성한 레퍼토리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터무늬 없을 수 있지만 해봅니다.




 젊은 층에도 꼰대가 있고 벽창호가 있듯, 노인들 중에서도 그러한 사람이 물론 있습니다. 나이가 들면 보수적으로 변해간다는 어느 정도의 세대효과가 있겠지만 그들이 모든 안 좋은 행태를 보이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런 모습과 함께, 약하고 무언가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노인을 향한 인식은 안타깝게도, 부정적인 방향으로 각인되곤 합니다. 그리고 부정적인 것들은 보통 개인의 인식에서 밀려나기에 노인이라는 존재 역시도 아마 사회의 인식에서 자연스레 멀어졌을 겁니다.


 그분들이 선택한 삶일 수도 있지만, 기술이 발전하는 사회에서 그들은 기술과 멀어지기도 합니다. 패스트푸드점의 키오스크를 잘 활용할 수 없는 노인이 카운터에서도 도움을 받지 못해 음식을 먹지 못하는 일도 비일비재합니다. 사회의 중심에서 멀어졌다 해도 분명 노인들이 겪는 이 문제는 '당연'해서는 안 됩니다. 이는 기술 트렌드를 따라갈 수 없고 복잡한 기술을 활용하기 어렵다는, 능력의 문제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보다는, 선택이 존중되는 문제입니다. 우린 원하는 선택을 하면서 삶을 꾸려나가고 그 속에서 가치를 얻습니다. 선택할 자유가 빼앗겼을 때 느껴지는 감정은 지극히 파괴적입니다. 물론 원하는 모든 선택을 소화할 수 있는 사람은 극히 드뭅니다. 그래서 실상 의미 있는 건 실현가능한 작은 선택입니다.


 삶의 가치를 작은 선택들이 만들어가지만, 적어도 그분들의 선택은 기술장벽에 의해 무너지고 있습니다. 물론 기술이 만악이라기보단, 사회적 인식, 제도의 미비 등이 함께 작용하면서 남은 삶에 최소한의 가치를 마련해 줄 수많은 작은 선택들이 스러지고 있죠. 전 이걸 당연하듯 팔짱 끼고 바라보는 사회를 경계합니다. 결국 노인이 많아지는 사회에서 그들이 느낄 가치가 줄어드는 건, 사회 전체가 나눌 수 있는 가치가 줄어드는 것 같아서요. 좀 추상적이긴 하네요.


 비록 무협지에서처럼 아주 고강하고 든든한 존재감을 뽐내지는 못하더라도 당신들이 살고 싶은 삶을 온전히 살아가며 얻는 가치 정도는 지켜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가치에 귀 기울일 수 있는, 무협지에서보다 더 의미 있고 영향력 있는 사회가, 세계가 모습을 드러내면 좋겠습니다.


짧은 생각이었습니다 :)


                                                                                                                                                                    W_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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