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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람은 우주니까 Aug 24. 2019

날개를 접는 법을 배우자

현실적인 제약은 필연적이다

 추상적으로는 역량이나 잠재력을, 구체적으로는 기획이나 아이디어를 이야기할 때 날개라는 표현을 자주 쓰는 편입니다. 작게 달려 있던 날개가 경험을 거치면서 조금씩 자라서 펴지는 이미지가 역량이 커지는 과정과 어울리기 때문이에요. 제 날개는 2017년 UX분야를 처음 알게된 후, 학교에서 다양한 프로젝트를 하면서 자라기 시작했습니다.


 간단한 게임을 만드는 입문 코딩수업, 웹페이지를 제작하는 웹프로그래밍 수업, 데이터를 시각화해보는 디자인 수업, 디지털 선물교환 연구를 진행했던 연구 수업, 사회문제를 찾아 해결해보는 기획 수업 등에서 다양한 영역의 프로젝트를 경험했고 한 학기가 지날 때마다 제 날개는 끝 모르게 자라 있었습니다.


 특히 학교 수업에서는 제약이 적어서 좋았어요. 물론 과제를 제출해야 하는 기간이 있었지만, 실제 작동을 하는 프로토타입을 만들 필요까지는 없었기 때문에 시간적으로도, 금전적으로도 크게 부담이 되지는 않았습니다. 이러한 환경 덕분에 고민을 더 깊게 해볼 수 있었고 아이디어를 더 넓게 구상해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이 모든 경험은 적어도 학부 수준에서는 제 역량을 최고조로 끌어올렸고 무엇보다 제게 잠재력이 있을 수도 있다는, 사실 기반(?)의 자신감을 선사했습니다.



날개를 펴는 데만 집중할 수 없다


 빛 2. (https://brunch.co.kr/@uxsentiment/6)에서 언급했던 스타트업에 다니면서부터는, 불어오는 바람에 때문에라도 이 날개가 끝없이 뻗어나갈 수는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습니다. 현업에서는 매출을 위해서 정해진 기간까지 프로젝트를 최대한 맞춰야 하고 그 과정에서도 들어가는 비용을 효율적으로 책정해야 합니다. 한 프로젝트에 투입되는 인력도 생각보다 더 빡빡하거나 중간에 갑자기 그 인력들이 조정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 모든 바람은 온실 속에서 큰 흔들림 없이 자라던 제 날개를 거세게 뒤흔들었습니다.


 비교적 시간을 충분히 갖고 생각하던 제 버릇은, 스타트업의 빠른 업무속도에서는 뒤처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분명 깊은 고민은 충분히 의미가 있고 이를 존중해주는 곳도 당연히 있겠지만 저는 일단 빠르게 고민하고 결단을 내리는 연습을 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속도만 빠르면 안 되고 그 과정에서 프로젝트와 관련된 온갖 요인을 고려해 기획을 조정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다시 말해 제 날개를 한껏 다 펴고 쭉 날아오르려는 버릇보다는 바람에 맞서 떠있을 수 있는 정도까지 적절히 날개를 접는 방법을 터득해야 했습니다.


 가장 먼저 했던 일은 바람을 읽는 일이었습니다. 그 글에서 내부의 바람은 회사 안의 조직문화와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동학, 외부의 바람은 트랜드와 업계동향이라고 적었어요. 업무를 다루는 조직문화가 어떤지에 따라서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방식이 달라지는데 그 방식이 어느 정도는 해당 업계의 관행을 따라가더라고요. 가령 어떤 프로젝트를 띄울 때 기획팀이 유관부서들과 내용 공유를 얼마나 하는지, 디자인과 개발로 넘어가는 과정이 단선적인지 뭐 그런 내용들이죠. 그리고 그에 따라서 제가 날개를 얼마나, 어떻게 접어야 하는지도 달라집니다.


 제가 가장 먼저 경험했던 업무방식은, 각자도생이었습니다. 공유는 결과물이 마련됐을 때, 다음 업무를 진행할 부서에만 했습니다. 사실 저는 그 공유과정을 경험해보지는 못했어요. 원칙이 그랬다는 거고 제가 있을 동안은 업무가 다른 부서로 넘어가질 못했거든요. 그와 별개로 태스크포스(TF)를 운영해서 새로운 프로젝트 거리를 찾아보려는 회사의 시도가 있긴 했어요. TF에는 부서 관련 없이 인력이 투입됐는데 안타깝게도 모두의 열의가 다 비슷한 수준이 아니었기 때문에 결국 잘 돌아가지는 못했죠.


 이 각자도생이 얼핏 생각해보면, 학교 프로젝트처럼 일정 시간 동안 집중해서 최대한 아이디어를 발산할 수 있는 방식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분명한 차이가 있었습니다. 학교에서는 주기적으로 발표도 하면서 주변과 공유를 많이 했고 피드백을 받았어요. 사실 제 날개는 제가 온전히 다 못 보니까 다른 사람들의 피드백을 통해서 제대로 키워가는 거고 학교에서는 그게 가능했죠. 


 그런데 현업에서의 각자도생은 자칫 잘못하면 우물 안 개구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물론 팀에 다른 인원들이 있지만 모두 같은 기획에 참여하면서 시야가 같이 좁아질 위험도 있으니까요. 그때 프로젝트를 다른 방향에서 볼 수 있는 사람이 없다면? 제약사항을 충분하게 고려하지 못해서 아예 못 날 정도로 날개를 접어버려야 하는 상황도 생겼습니다.



날개도 잘 접는 과정이 있을 거야!


 지금 경험하는 방식은 훨씬 더 체계적이에요. 파트에서도 맡은 일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자주 공유하고 유관부서와 프로젝트 진행에 관해서 꾸준히 의견을 나누면서 앞으로의 프로젝트에 투여할 수 있는 자원이 얼마나 되는지 확인하는 과정이 자리잡혀 있어요. 그래서인지 제 눈에도 기획을 할 때 어떤 고려를 하면서 어떻게 소통해야 하는지가 명확하게 들어옵니다. 처음에 어디까지 날개를 펼 수 있고 어떤 과정을 거쳐서 잘 접을지 고민하기에 너무 좋은 업무방식입니다.


 안개 낀 외길만 보고 따라가다가 예상치도 못한 난관을 만나서 이리저리 흔들릴 때는 큰 그림을 못 그리고 긴장하면서 코앞밖에 볼 수가 없어요. 반대로 가야할 길이 비교적 분명히 보이면 거시적인 안목에서 근거를 찾고 생각을 개진하는 데 자원을 더 쓸 수 있습니다. 잘은 모르겠지만 그래서 조금 과감하게, 날개를 접지 않고 나아갈 수 있는 방향을 고민할 여유도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앞으로는 한 번씩 날개를 접어보면서 어떻게 하면 잘 접을 수 있을지 알아갈 계획입니다! 상황마다 다르겠지만 초기 아이디어를 최대한 끝까지 끌어갈 수 있는 방법도 생각해보고(이게 꼭 바람직하다는 생각은 아니긴 합니다) 그 아이디어를 원래의 기획의도나 목적에 맞는 선에서 효과적으로 바꾸는 방향도 경험해보고 싶어요. 언젠가는 날개라는 표현을 생각하면서 쓸 필요도 없이 자연스럽게 이 모든 과정이 이뤄지면 좋겠어요.




 많은 인턴들이 자신의 아이디어를 이끌어가지 못하는 현업 상황 때문에 좌절합니다. 인턴마다 다르긴 하겠지만 사전경험이 있거나 무엇보다 실력에 자신이 있어서 자기 생각에 자부심을 가질 만한 사람들도 많겠죠. 그런 사람들은 처음에는 피드백을 받으면서 아이디어를 수정할 때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습니다. 비판을 수용하는 자세는 매우 중요하지만 매번 초연하게 피드백을 받기는 어려우니, 많은 인턴들의 좌절이 이해가 됩니다.


 저도 처음에는 씁쓸함과 슬픔을 경험했어요. 근데 거기에 빠지다보면 얻어갈 수 있는 게 없더라고요! 제가 부정적인 감정에 휩싸이는 순간 생각이 다 그 감정에 전염돼서 머리가 백지가 돼버려요. 그래서 저는 피드백을 받으면서 아이디어를 조정하는 상황에서는 피드백 핵심에 집중했어요. 받아적으면서 제게 주시는 피드백이 어떤 의미인지 되묻고 그 본질을 정리했어요. 그럼 적어도 감정에 지나치게 휩쓸리지 않은 상태에서 판단을 할 수 있고 그 연습이 계속 되면 피드백을 받는 순간에도 의연해집니다. 물론 따로 제 시간을 가지면서 제가 느꼈던 감정에 집중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피드백이 너무 인신공격에 가깝거나 그 태도가 지나치게 기분이 나빴다면 그건 이야기를 나눠봐야 하니까요.


 지금 돌아보면 제 성장에 중요했던 피드백은, 날개를 잘 접도록 현실적인 관점을 제시해준 피드백이에요. 이상은 중요하지만 한 걸음에 다다를 순 없잖아요? 그곳에 가기 위해 어떤 방향으로 얼마나 걸어야 할지 생각하는 과정이 결국 현실을 보면서 날개를 잘 접어가는 과정인 것 같아요. 나중에 생각이 어떻게 바뀔지 모르겠지만 잘 접은 만큼 추진력을 모아두는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습니다.


                                                                                                                                                                    W_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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