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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람은 우주니까 Jul 13. 2019

바람을 읽자

스타트업 인턴기 _ 모두가 흔들리는, 그곳의 아슬아슬함

 스타트업. 누군가에겐 아이디어를 실현할 발전소이지만 다른 누군가에겐 뭐라도 해야 하니 그냥 일단 오고 보는, 체념 아닌 체념의 배설구가 되기도 하는 곳. 2018년 여름, 처음으로 스타트업에서 인턴생활을 해보았습니다. 누가 있든, 무엇을 하든, 그곳은 흔들리고 있었어요. 약 한 달 남짓한 기간 동안 흔들리는 다른 사람들을 보았고 읽었습니다. 그리고 매우 탄탄하다고 생각했던 저도 함께 흔들려, 저 자신을 새로이 읽기도 했습니다. 견고한 기반이 없는 공간에서, 모두가 아슬아슬하게 흔들리는 경험은 참 미묘했습니다. 그리고 이해했어요. 외부에서, 그리고 내부에서 불어닥치는 바람을 읽는 중요성을.



 시작은 굉장히 우연했습니다. 때는 바야흐로 2018년 7월. 미친 여름 더위가 올 거라는 걸 아직 직감하지 못하고 있을 때였어요. 이번 방학기간만큼은 한량으로 지내자는 굳센 마음으로 나는 인디게임을 찾아서 해보고 다양한 영화를 감상하고 취향에 맞는 음악을 찾아 나서는 등의 즐거운 생활을 하고 있었죠. 그러던 중 버릇처럼 들어가 보던 경력개발센터 홈페이지에서 인턴 구인공고를 하나 발견했습니다. 그걸 보고선 또 흥미가 생겼어요. 이 흥미가 작동한 순간, 저는 이미 인턴을 시작한 것과 다름없었던 것 같아요.


 사용자들의 애플리케이션 제작 진입장벽을 낮춰주는 목적을 갖고 여러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회사였어요. 회사의 목표를 보고 나니 이 회사가 궁금해졌습니다. 그동안 기획을 하면서 제가 가능성을 점쳐보던 미래를 이 회사는 실현해보려고 했기 때문이에요. 바로 1인 1앱 시대.


굳이 사람들이 앱을 필요로 하지 않을 수 있지만 만약 앱 제작이 매우 쉬워진다면? 


 분야에 따라서는 앱을 만들어볼 사람들이 없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여행만 해도 같이 간 사람들의 모든 경험을 예쁘게, 차곡차곡 모아서 정리하면 충분히 앱의 가치가 생기지 않을까 고민해보기도 했구요. 여하튼 그러한 미래를 현실로 불러오려는 이 회사가 궁금해졌습니다.


 그래서 바로 메일을 보냈어요. 이미 근무하고 계시던 인턴 분이 문의를 받으셨는데 얼떨결에 대표님과 약속이 잡혔어요. 그것도 바로 다음 날. 정말 가볍게 갔던 기억이 나요. 딱히 인턴면접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았고 그저 회사의 큰 그림이 궁금했을 뿐이거든요. 물론 세부적인 운영계획이, 그리고 만약 알 수 있다면 진행하고 있는 프로젝트를 알고 싶기도 했는데 음... 그건 안 알려줄 것 같았어요 :)


 그런데 충분히 다 알려주셨어요! 들으면서 끄덕끄덕 생각을 정리하는데 으레 거대한 역사의 흐름이 그러하듯 제가 거스를 새도 없이 이야기의 흐름은 인턴채용으로 자연스레(?) 이어졌더랍니다. 자리를 마련해주시겠다고. 물론 안 될 수도 있으니 이해는 해달라고. 아마 그래서 다 알려주신 것 같기도 하네요. 한량 생활을 청산할 생각이 딱히 없었던 저는 자리가 나지 않아도 매우 충분히 이해할 준비가 돼 있었는데 제 자리는 아주 평화롭게 마련됐고... 그렇게 신사업기획 인턴으로 근무하게 됐어요!


 자세히 밝힐 수는 없지만 첫 출근을 해서 회사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고 어떤 기획을 하고 있는지 들었습니다. 곧바로 제가 참여하는 기획이 시작됐어요. 역시 스타트업이라서 그런지 들어온 사람에게 자율이 주어지는구나! 신기했지만 마냥 좋아할 수만은 없었어요. 자율적으로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건, 다시 말해 그 무언가가 온전히 제 책임이라는 뜻이니까요.  뭐 그래도 저는 틀에 박힌 게 더 싫었기 때문에 책임 정도는 가볍게 지고 기획을 시작했습니다.



불어닥치는 바람 속에서.


 기획을 하면서 가장 뼈저리게 느낀 사실은 스타트업이라는 조직이 천차만별이라는 점. 다른 스타트업은 듣기로는 굉장히 탄탄한 콘크리트 기반에 서서 도약을 준비하는데 제가 있던 곳은 모래가 꽤나 섞여있는지 지반이 흔들거리는 느낌을 받았어요. 일단은 일 문제가 있었습니다. 회사가 유지하던 컨셉을 수정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면서부터였는데 자세히 밝힐 순 없지만 앱을 출시하는 문제 때문이었어요. 어플리케이션 시장과 관련된 문제였죠. 근본적으로, 앱 제작 장벽을 낮추자는 기존 목표를 돌아볼 정도로 심각했습니다.


 트랜드의 변화, 업계관행의 동향. 이런 종류가 바로 외부에서 불어닥치는 바람이었습니다. 그 회사가 읽을 수 없었을지 그때의 저한테 여쭤보셨다면... 조심스럽지만 조금은 예상할 수 있었다고 답했을 거예요. 저보다 경력이 많으신 분들도 계셨고 어플리케이션과 관련해서는 빠삭하신 분들도 많았으니까요. 갑자기 정부의 정책이 바뀌어서 걸린 제동도 아니었고(정책도 기간을 두고 바꾸죠) 그 분야의 사람들이라면 으레 알고 있는 정보가 발목을 잡은 모양새라서 미리 고민했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물론 말은 쉽죠. 자금도 그렇고 운영하는 문제도 그렇고 더 신경 쓸 부분이 여느 스타트업에나 다 있잖아요? 그래도 그때는 분명 그 고민이 핵심적이라고 생각해서 왜 대비하지 않았을까 궁금했어요.


그때 우리는 이 나무보다 더 기울었던 것도 같아요.  ⓒMahkeo


 근데 그곳이 이 문제에 미리 대처하기 어려운 환경이라는 생각을 점점 하게 됐습니다. 바로 내부의 바람, 조직문화와 사람들 때문이었습니다. 누군가에겐 아이디어 발전소, 다른 누군가에겐 체념의 배설구. 맨 처음에 적어놓은 스타트업에 관한 두서없는 단상이었는데 안타깝게도 후자인 경우가 꽤 있었습니다. 근거 없이 이렇게 누군가를 탓하는 듯한 말을 쓰면 안 되니 조금 더 구체적으로 적자면 후자의 사람들이 문제가 아니라 생각이 다른 사람들이 조화를 이루지 못해서 문제였습니다.


 으레 운영진은 열의가 있습니다. 직접 사업 아이디어를 냈던 사람들이기도 하고 그 아이디어를 통해 본인의 꿈을 실현하고자 하는 분들이니 한편으로는 당연합니다. 저희 회사 운영진도 비슷했습니다. 그렇지만 그에 공감하는 사람들만 와서 일할 수는 없습니다. 내가 일단 경력이라도 좀 쌓으려고. 혹은 돈은 벌어서 생활을 해야 하니까. 실제로 이밖에도 다양한 이유들로 조직에 참여하는 분들이 계셨습니다. 이직을 꾸준히 고민하는 분도 당연히 계셨죠. 


 운영진은 태스크포스를 꾸리거나 기획 회의를 할 때 디자인이나 사업부서 등 다른 부서원을 참여시키고 싶어 했습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일할 사람은 적고 할 일의 총량은 정해져 있는 상황에서 시간을 더 내는 건 누군가에게는 분명 부담이었어요.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았고 모두가 기획에 참여하는 문화가 없는 곳에서는 아무리 좋아 보이는 협업문화라고 해도 맞지 않는 옷일 뿐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수평적인 문화라고 해도 어차피 결정권자는 따로 있을 수밖에 없고 그 결정에 크나큰 기여를 하기에 부담을 느끼는 사람은 그저 의욕만 떨어지고 시간만 뺏겨서 스트레스에 허덕이는 악순환이 발생하고 있었어요.


보스는 아니었지만 과연 리더였을까? 리더가 되기는 너무 어려워요...


 너무 나쁜 말로 써놓은 건 아닐지 걱정이 돼서 황급히 조금 수습을 하자면(?) 운영진은 좋은 분들이었습니다. 인턴 기간 끝난 후에도 연락 계속하기도 할 정도로. 그리고 그분들도 모두의 열의가 본인들과 같지 않다는 사실도 어느 정도는 알고 계셨어요. 알면서도 바꾸기 위해 나름의 노력을 하셨지만 선한 의지로만 모든 걸 이룰 수는 없죠. 이쯤이면 생각이 나는 게 첫 글이네요(https://brunch.co.kr/@uxsentiment/7). 인턴이 배울 때 사람을 봐야 한다고 했는데 사실 운영진도 구성원을 알아가야 하니까 비슷하게 적용된다고 생각해요. 이 주제로는 운영진과 이야기를 안 나눠봤지만 과연 그분들은 다른 구성원을 얼마나 읽으려고 했을지 문득 궁금해집니다. 만약 더 잘 읽었으면 원하는 문화를 만들 수 있었을까요? 리더는 역시 어렵나 봐요.



바람, 맞아도 돼!


 읽어야 합니다. 내외부의 바람은 (아마도 우리 인턴 힘으로는 조절할 수 없겠지만) 예상해봐야 해요. 인턴활동에서 얻어가야 할 아주 중요한 결실 중 하나는 자신의 성향과 역량, 관심사가 지금 체험하고 있는 업무분야, 회사와 맞는지 판단하는 작업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판단에는 폭풍이 될지도 모르는 온갖 바람이 고려돼야 한다고, 이제는 생각해요. 이곳은 비전이 뚜렷해 쉴 새 없이 바뀌는 흐름에도 버틸 수 있는 곳일까? 이곳의 수평적인 문화는 내가 역량을 발휘하는 데 도움을 주는 문화일까? 뭐 이런 고민들.


"바람은 계산하는 것이 아니라 극복하는 것이다"??


 영화 <최종병기 활>의 대사입니다. 크 좀 멋있는 대사라고 생각했어요. 근데 안타깝지만 우린 신궁이 아니에요. 아마 신궁도 처음에는 바람을 맞아봤을 걸요? 다 맞아보고 어떻게든 계산이라는 걸 해보면서 활을 열심히 쏴봤겠죠. 그러다 어느 경지가 되니 깨달은 겁니다! 그냥 극복하고자 하면 된다. 마치 고수가 될수록 노하우가 오히려 간단해지는 느낌! 어떻게 하면 바람을 예측해 활을 당길지 물어보는 질문에 저런 선문답이 가능한 것도 사전단계가 있어서 아닐까요?


 저는 우리가 인턴이기 때문에 더 과감하게 바람도 맞아보고 이렇게 저렇게 읽어보는 시도도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인턴이라는 직책이 원래 그러라는 자리고! 그렇게 하더라도 특별히 다른 구성원보다 더 흔들리거나 하지도 않으니까요. 제가 일하던 곳에서는 모두가 비슷하게 흔들렸어요. 되게 아슬아슬했습니다. 발 디딜 틈 없는 벼랑에서 불어닥치는 칼바람을 버티는 모양새. 여기저기 부딪히면서 경험하던 저도, 그곳에서 버티던 동료들도 대체로 손에 땀을 쥐고 위태롭게 걷고 있었던 것 같아요.


 흔들림 속에서 몇 가지 깨달은 게 있어요. 


이 길은 나의 생각과는 다르고 맞지 않았다. 

내 역량을 최대한 이끌 수 있는 환경이 아니었다.

기대만큼 즐거움을 느끼지도 않았다. 


 아까도 말했지만 회사든, 누구든 탓을 하는 글이 아닙니다 :) 제가 경험이 적어서 인턴생활 이전에 미리 판단하지 못한 부분도 있었고 직접 가야만 얻을 수 있는 깨달음도 있었으니까요. 저는 바로 이런 피드백이 인턴을 하면서 얻을 수 있는 되게 소중한 결실이라고 생각해요!


 제가 겪은 게 역경이라서 이야기가 좀 치우친 듯합니다. 물론 바람은 순풍일 수도 있어요. 그걸 읽어서 내가 더 수월하게 나아갈 수도 있겠죠. 순풍이든 역풍이든 다 같이 조금씩, 천천히 경험하고 생각해보면 좋겠어요. 저 바람은 이 업계를 쓰러뜨리고 내가 좋아하는 분야를 무너뜨리려나? 안 무너질 수 있는 비전과 계획이라는 건 존재할까? 그곳 내부의 바람은 모두를 각자의 지향으로 밀어주고 있나?


결과적으로 그 속에서 나는?

 

 생각해보면서 마칩니다 :)


                                                                                                                                           <2018.08.22> W_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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